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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것을 찾은 자의 기쁨 (눅 1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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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을 찾은 자의 기쁨 (눅 15:8~10)


지금 중국의 베이징에서는 지구촌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이 지난 8일 시작해서 오늘 저녁 9시에 폐막식을 합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이 참가하는 만큼 별의별일이 다 일어나는 곳입니다. 지난 18일 여자육상 장대높이뛰기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브라질의 선수[파비아나 무러레(27)]의 장대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장대높이뛰기 선수에게 장대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 선수의 예선 기록이 3위라고 하는데 결승전에서 주최 측의 관리소홀로 장대를 잃어버리고 한참을 찾아다니다가 주최 측에서 마련한 장대로 뛰었는데 기록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 손에 익숙하고 자기 몸을 실어서 연습했던 장대가 아닌데 기록이 잘 나올 리가 만무합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들이야 제3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이지만 선수 본인의 심정의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장대를 찾는 그 선수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 하루, 불과 그 몇 분을 위해서 4년 동안이나 피나는 훈련을 했건만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잃어버린 장대 하나지만 올림픽에 대한 그 선수의 모든 꿈이 끝나 버렸습니다. 적어도 그날 그 시간 그 선수에게 장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부였습니다. 

올림픽 기간이니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합시다. 아마 야구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를 대부분 보신 줄 압니다만 정말 극적인 역전승을 이루어서 망발을 쏟아 놓은 일본[호시노]감독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국민타자라고 불리는[이승엽]선수의 역점 두 점 홈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물론 이승엽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역할도 있습니다. 잘 던진 투수도 있고, 대타로 나와서 동점 안타를 친 선수도 있습니다. 그 선수들도 모두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가장 시원하게 우리의 가슴을 뻥 뚫어 준 선수가 이승엽 선수였고 그것이 승리의 견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승엽 선수는 그 홈런을 치기직전까지의 타율이 25타수 3안타, 1할 2푼에 그쳤습니다. 26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친 것입니다. 25번이나 타석에 나와서 겨우 3번 안타를 쳤다는 것은 팀의 4번 타자로서 명분이 없는 성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는 동안 본인은 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야구선수로서, 타자로서 중요한 타격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자신감을 잃었고, 용기도 잃었습니다. 국민타자라는 명분도 잃었습니다. 이승엽 선수는 잃어버린 타격감을, 자신감을, 기대감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홈런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끝까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찾지 못했다면 야구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좌절이 더 컸을 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용기,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크고 적은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아갑니다.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정말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잃어버려서 슬프고 우울하고 그래서 실망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삶의 전부에 버금가는 것을 잃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픔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소망해야 할 것은 잃어버린다고 그것이 곧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용기가 필요합니다. 빨리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늦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찾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단절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이든지 정신적인 것일지라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신앙적인 것이라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적인 것에 있어서만큼은 잃어버리지 말 것을 바라시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것은 빨리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특별히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간혹 처음 가졌던 믿음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첫 사랑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유리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굉장히 마음아파하시며 그 잃어버린 믿음을 찾기를 바라고 멀어진 신앙에서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본문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유의 내용을 우리가 잘 압니다만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던 여인이 마침내 도로 찾아낸다는 내용을 통해서 크게는 잃었던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적게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믿음에 관한 것들을 찾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비유입니다. 오늘 본문이 짧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가치를 기억하고 찾아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여인이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면서 그 동전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동전을 찾아내고서는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상식적으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잃어 버렸다고 난리를 치더니 그것을 찾았다고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하느라고 얼마를 썼겠습니까? 만약에 500원을 잃었다가 찾아서 잔치하는데 50만원을 썼다면 그것을 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게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상식을 넘어서 가치를 봐야합니다. 유대 남자들은 결혼을 할 때, 드라크마 열 개를 실로 꿰어서 신부에게 선물로 주는 형식이 있습니다."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나의 영원한 배필입니다. 이것은 그 사랑을 지키자는 내 사랑의 증표입니다."라는 고백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이 그 열 개 중에 하나를 빠뜨려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를 잃어버리면 나머지 남은 것들로는 불완전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남편이 자기에게 준 생명과 같은 물건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찾아야 하기에 등불을 켜고 온 집을 뒤지면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찾아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한 영혼을 이렇게 가치 있다 하시면서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잃어버린 영혼을 이렇게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가치 있다 하시는 영혼에 대해서 우리 또한 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든 없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든 말든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이 부끄럽긴 합니다만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잃어버린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아름다웠던 첫 믿음을 생각하고 그 믿음에서 떠나 있다면 그 믿음의 가치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찾아야 합니다. 왜 옛날에는 그리도 열심이던 내 믿음이 지금은 무엇입니까? 시간이 갈수록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 믿음의 가치를 생각하지 못하고 찾을 생각조차하고 있지 않다면 큰 문제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왜 잃어버렸느냐에 대한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 눅15장에는 유명한 세 가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서는 양 한 마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했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뒤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하여 스스로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크마는 자의로 집을 나가거나 스스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적인 여건 때문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인이 싫다고 드라크마가 도망을 친 것도 아니고 여인이 일부러 버린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 주변에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신앙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 교회에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위해 교회에 나왔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고 살다가 이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기 위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분쟁이 있고 사람들이 불화하고 반목하면서 시험에 들어서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며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교회를 떠납니다. 믿음을 버렸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혹은 교회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려고 하는데 신앙과는 무관하게 어쩌다가보니 단순한 인간관계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이 보기 싫기 때문에 교회에도 나오기 싫습니다. 그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앙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다른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이 오늘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반드시 찾아야합니다. 그것이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스스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잃어버린 믿음이라고, 누구 때문에 잃어버린 신앙이라고 찾지 않을 핑계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드라크마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어둡고 집도 어지러워서 어디로 굴러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환경에 미루지 않았습니다. 찾도록 찾았습니다. 만약에 이런 환경적인 일이나 이유에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영혼들을 찾을 일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잘못하고 스스로 죄 짓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데 그냥 내버려두지 왜 하나님께서 찾도록 찾으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게 아닙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어떤 죄를 지었든지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드라크마가 잃어버린 상태였으나 잊힌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인이 드라크마를 잃어버리고 바로 찾지 않았다면 아마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 잊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잊히지 않았다는 이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스스로 잊히려 해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가 죄를 범하고 간혹 하나님을 떠나서 잃어버린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향한 기대가 크신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것이 믿음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문제라면 꼭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가치의 것입니다. 잃어버린 그 열정은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기대하심에 부응하기를 바랍니다. 먼저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신앙이 있다면 찾기를 바라고 그래서 하나님께도 찾은바 되는 기쁨의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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