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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운명을 뛰어 넘어라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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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뛰어 넘어라 (막 10:46~52)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주어진 삶의 환경에 순응하며 체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운명에 맡겨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운명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그것을 운명이라고 그럽니다.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상황'을 운명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운명에 끌려가는 삶을 살지만, 어떤 이들은 그 운명을 뛰어넘고 운명을 개척하고 운명을 거슬려 살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도 하고, 그들은 인류에 새로운 선물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무장하고 기도하면서 나아갈 때,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역사 속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운명에 절망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저는 이승복씨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승복씨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그는 올림픽 체조 선수가 되어서 비록 미국에 살지만 한국에 영예를 드높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좋은 코치를 만나서 연습을 합니다. 

어느 날 그가 코치의 허락없이 혼자 이 체조연습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떨어지게 되고 사지가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재활에 눈물을 흘리며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겨우 휠체어를 타고  그는 하버드 의대 진학에 해서 그곳에서 의학 공부를 마칩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최고 병원인 홉킨스 병원에 전문 의료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운명을 뛰어넘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뉴욕 타임즈지가 주목할 만한 백 명의 선수를 한 사람 한 사람 신문에 실었는데 백번째 되는 영광을 차지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외발 수영선수 나탈리 빅토아 라는 여자 선수입니다. 그녀는 14살 때 수영선수였는데 학교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를 만나서 큰 부상을 입습니다. 그리고 왼쪽 다리를 절단해 버립니다. 비록 다리는 절단되었지만 그녀는 수영에 대한 염원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장애인 수영대회에 나가 세계 신기록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녀는 7년이 지난 후에 정상인들과 정정당당하게 다뤄서 이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자 수영 10Km에 출전을 해서 그 많은 사람 가운데 16위로 안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1등을 한 사람과 불과 1분 22초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2시간 49초 동안 열심히 수영을 해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참 놀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의족을 찼습니다. 어떻게 의족을 차고 수영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지금도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물속에만 들어가면 왜 자꾸 가라앉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다리가 없는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당당하게 나와서 세계에서 온 선수들과 겨룰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다리 없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개척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약한 소리로 이것이 내 운명이려니 이것이 팔자소관이려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살도록 하늘이 정하시면 어떻하란 말이야. 나는 가난하게 살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야 나는 맨날 아프도록 이렇게 결정된 사람이야.”  이렇게 자신의 팔자소관 탓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운명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축복의 가나안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축복된 삶을 향해 나아간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여리고에 살고 있는 바디매오라는 사람입니다. 바디매오라는 말은 디매오의 아들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자세히 보면 바디매오의 이름 앞에 한글자가 붙습니다. 거지 바디매오입니다. 아버지가 그 사이에 어디로 가버리고 그는 아버지 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더더욱 그는 불행한 것이 시각 장애인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습니다. 여러분 앞을 보지 못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 거기다 그는 남에게 동냥이나 얻는 걸인입니다. 여러분 걸인의 삶이 어떠하겠습니까? 매일 동일한 삶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이제 동전통 하나 들고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푼 줍쇼 저에게 동냥하십시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면서 동전 하나를 구하는 그런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는거지 뭐! 스스로 자의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정해준 삶이 이건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바디매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그분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35장이 말하는 메시야 일을 행하시는데 그분이 오시니까 장님이 눈뜨게 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벙어리가 말을하게 되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수군수군 대며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것도 운 좋은 사람이나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장님이 어떻게 예수를 만나냐고 다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그분을 만나면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야돼!  그분을 만나야지 내 삶이 달라질 수 있어! 그의 마음속에 강렬한 힘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위해 예류살렘에 가는 길에 여리고를 거쳐가게 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그분이 지나간다고 할 때 소리를 지르며 그분을 불렀습니다. 결국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고 그의 인생에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너의 믿음이 너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선언해주셨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닙니다. 그는 더 이상 남에게 동냥이나 얻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장님이 아닙니다. 눈을 뜨게 되고 예수님을 당당하게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운명에 고통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내 팔자려니 이것이 내 인생이려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우리 인생에서 운명을 뛰어넘고 새로운 축복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첫째는 불타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저를 한번 따라하십시오 운명을 뛰어넘으려면 불타는 소원이 있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불타는 소원이 있어야해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시각장애인 중에 강영호 박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어린시절 중학교 때 실명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성공했고 그는 부시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부로 전 세계를 누비며 일하시는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한국에 종종 오셔서 간증하고는 하십니다.
그분이 쓴 책 제목이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열한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열한 염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디매오는 내가 예수님을 만나야돼 예수님을 만나면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 그 강렬한 소원이 있었어요 그게 뭐에요 꿈이에요 여러분에게도 꿈이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에 강렬한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어젯밤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의 밤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 마치 월드컵 2002년도 4강에 올라갈 때 그 감격을 맛보는 것 같아요. 한국의 야구팀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니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저는 어제 쿠바와의 결승 경기를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 야구팀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제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가 없어요. 너무 감사해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대한민국이 너무 멋진 나라예요. 선수들이 너무 멋져요. 

더더욱 저는 감사할 것이 하나 더 있더라구요. 이씨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는 지금까지 이씨를 부끄럽게 생각했어요.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이 때문예요. 왜 그 우상숭배 하는 여인 이세벨 때문에 이씨를 부끄럽게 생각했는데, 이제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저도 가슴피고 다녀야겠어요. 그래뵈도 제가 평창 이씨입니다. 이승엽이 있더라구요. 이용규가 있고 이대호 선수가 있고요, 누구하나 더 있다고 하던데? 이진용도 있구요, 위기를 넘기는 이씨들이 얼마나 야구를 잘하는지! 정말 너무 자랑스러워요. 여러분, 우리 야구팀이 이렇게 9전9승 전승을 할 수 있을까요? 참 놀라워요. 저는 그 승리의 원인이 무얼까 생각해보면 바로 강렬한 소원이 있었기때문이예요. 이번엔 반드시 이겨야한다, 금메달을 따야한다 라는 염원,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상에 오를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도 강렬한 소원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소원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얼른 예배 끝나고 짜짱면이나 먹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은 너무 시시하지 않아요? 적어도 그들은 대한민국을 빛내기 위해서 참으로 세계정상에 오르기를 간절히 염원했어요.

예수님이 바디매오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너의 소원이 무어냐? 바디매오가 대답합니다. “네, 제가 보기를 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그는 소원이 분명했어요. 강렬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강렬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장애 앞에서도 비판 앞에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47절 48절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성경구절>

여기 48절에 보니까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를 꾸짖었어요. 잠잠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바디매오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칩니다.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바디매오를 구박했습니다. 꾸짖었습니다. ‘야 이놈아! 조용히 해. 입다물어.’ 참 어렵죠. 우리도 어떤 모임에 갔을 때 제가 신선한 의견을 내 놓았을 때 다른 분들이 집단적으로 저를 공격합니다. ‘입다물라고, 조용히 하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대개에는 반발하다가 수그러듭니다. ‘그래 나하나 조용히 있으면 평안한걸. 내가 떠들면 뭐해.’ 아마 바디매오도 그럴 거에요.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그래. 나는 내 운명이 바로 거지로 사는 거야. 장애인으로 사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어요.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더 크게 소리 질렀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강렬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해도 어떤 장애물도 어떤 비난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정말 불타는 소원이 있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리라 믿습니다. 자나 깨나 일을 하나 앉으나 서나 그 불타는 소원을 향해 나아간다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운명을 뛰어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타는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운명을 뛰어넘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바디매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예수님께로 가면 예수님을 만나면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지. 내가 눈을 뜰 수 있지. 내가 이제 거지 신세를 면할 수 있지. 내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예수님 앞에 가면 그분은 반드시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있을거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장애가 와도 어떤 방해가 와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하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저는 야구를 보면서 우리 한국의 김경문 감독이 너무 좋아요. 야구의 히딩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적절하게 전술을 잘 활용하고 선수를 그때 그때 너무 잘 활용해서  그 야구 강국들 미국, 일본, 쿠바를 다 침몰시키잖아요. 그런 훌륭한 감독이 어딨어요.?!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더더욱 저는 김경문 감독이 이승엽선수를 끝까지 믿어 준 것이 너무 고마워요. 이승엽 선수는 정말 국민 타자라고 별명이 붙여져 있지 않습니까? 그 대 타자 이승엽이 9번 전적을 치루는데 7번까지는 홈런 한 번 못 쳤어요. 안타도 제대로 못 쳤어요. 나가면 3진 아웃이나 당하고 배트나 휘두르다 들어오고 또 병살타나 해서 자기편이나 아웃  시키고 계속 그랬습니다. 그러니 난리 났죠. ‘저게 무슨 국민 타자냐. 저게 무슨 4번 타자냐. 끌어내려라.’ 참 이씨 많이 수난 당했습니다. 그런데 김경문 감독이 이승엽을 끝까지 믿어줬습니다. 기자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이승엽 같은 위대한 선수가 우리 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언젠가는 자기 몫을 해낼 것입니다.’ 믿어주었어요. 그를 기다려 주었어요. 그러니까 해 내잖아요. 결국 8번째, 9번째 싸움에서 홈런을 쳐서 일본에게 지고 있는데 홈런을 쳐서 두 사람이 들어오니까 결국 일본을 이길 수 있잖아요. 여러분 쿠바하고도 너무너무 어려운 시점에 초반부터 홈런을 쳐서 2점을 앞설 수 있으니까 한국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경문 감독의 이승엽 선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이승엽은 홈런으로 보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내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은 나를 외면하시지 않을거야. 나는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버려두시지 않을거야. 주님은 내 인생을 새롭게 하실거야.’ 이 믿음이 있어야 돼요. 
      
어느 날 백부장이 하인의 병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의 믿음이 너무 뛰어난 것을 보시고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두 소경이 예수님 앞에 나가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여러분 믿음이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거에요. 바디매오가 예수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디매오야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한 번 따라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렇습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눈 뜨게 하고 너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 너를 구원했어. ‘그 시로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곧 길에서 쫓으니라.’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불타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흔들이지 않는 믿음, 강력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인생에 환란 앞에서도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믿음은 어떻게 생길까요. 로마서에 보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어요.’ 하나님 말씀을 자꾸 들으세요. 예배에 나오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그럴 때 우리는 흔들이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운명을 뛰어넘으려면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피맺힌 절규였습니다. 그 다급한 순간에 어떻게 적당히 소리칠수가 있었겠습니까? 피맺힌 절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묻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여러분 예수님이 바디매오의 소원을 몰라서 물으셨겠어요? 그 전능하신 그 분이 바디매오가 뭘 원하는지 모르셨겠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으셨어요.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알면서 물으시는 거에요. 

왜 알면서 물으셨을까요? 바디매오 스스로 입술로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고난을 아십니다. 우리의 가난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의 질병을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입술로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직접 듣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입술로 고백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보니까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랬습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렇습니다. 이루어주기를 내게 나와서 간구해야 할지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길 원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십니다. 내게 나와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보니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셔야 합니다. 구할 때 우리는 운명을 뛰어넘고 새로운 개척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가 기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혹시 킹핀(king pin)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캐나다에 가면 나무가 많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나무를 다 잘라서 팔려면 한 100년이 걸린답니다. 100년 동안 일 안하고 나무만 팔아도 전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답니다. 그렇게 나무가 많아요. 자 그런데 나무가 많으니까 벌목을 해서 그 나무를 이제 외국에 수출도 하고 가공도 해서 팝니다. 높은 산에서 벌목을 해서 그 통나무들을 그리고 산 아래로 굴러 내립니다. 그리고 산 아래서 그것을 운반하는데 어떻게 운반하느냐? 육로로 운반하지 않습니다. 그냥 상류부터 흘러내리는 강에다가 던져 버립니다. 그럼 통나무들이 강을 타고 하류로 흘러 내려가는 거에요. 그럼 하류로 가면 제재소가 있어요. 하류에서 그것을 다 걷어서 수출도 하고 제재소에서 가공도 하고 이렇게 상품을 만드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 상류에서부터 이 통나무들이 수천 개, 수만 개가 흘러 내려가는데 이것이 강 하류를 따라 내려가다가 가끔 얽히는 일이 있습니다. 서로 뗏목처럼 얽혀가지고 자꾸 싸입니다. 위에서 자꾸 내려오는 데 흘러 내려가지 않습니다. 꽉 입구를 막아서. 그런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영어로 로그잼(log jam)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벌목공들은 이런 것 걱정하지 않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통나무 가로막은 하나를 딱 뽑아내면 다시 술술 풀려서 흘러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 통나무를 뭐라고 하느냐? 킹핀(king pin)이라고 합니다. 가장 중심에 있는 킹핀 하나만 제거하면 다른 통나무들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참 얻는 교훈이 큽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 문제 저 문제 막 얽히고 섥혀서 도대체 풀 수가 없어요. 우리 가정에 너무 문제가 많아요. 건강에 문제, 경제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바로 기도는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킹핀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얽힌 문제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그 문제는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돼요. 이것은 누구도 해결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니까 그 문제가 하나하나 다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에요. 기도는 바로 우리 인생의 킹핀과 같은 것입니다.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봤더니 제목이 그런 제목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최고의 시나리오를 남겼다.’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악의 상황은 최고의 시나리오를 남겼다.’ 그렇습니다. 사실 어제 쿠바와의 마지막 9회말 위기였습니다. 위기!! 류현진 선수가 너무 잘 던졌는데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자꾸 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볼 넷으로 나가고 이제 큰일 났습니다. 지금 3:2로 이기지만 저쪽에서 한 점이나 두 점을 추가하면 우리가 질 수도 있습니다. 9회말이니까 이제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참 큰일 났습니다. 그러니까 포수가 심판에게 항의하니까 ‘너 나가라고’ 퇴장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정대현 선수가 얼마나 잘 던졌는지 상대를 유인해서 병살타로 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치니까 두 사람 잡아내서 아웃시키니까 게임이 끝났습니다. 한국은 그 위기의 상황을 3:2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축복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최악의 상황에 있을지라도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기도한다면 최고의 축복의 상황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바디매오의 불타는 소원, 흔들리지 않는 믿음, 부르짖는 기도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감동을 받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선언하시니까 그 즉시로 바디매오의 문제가 다 해결됐습니다. 그는 이제 걸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당당한 제자가 되어서 주님을 따르는 그런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늘도 우리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아감으로써 내 삶을 바꿔가고 운명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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