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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을 여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라!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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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여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라! (마 16:13~20)

 
성경 잠언 16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릇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마음의 자세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슬픈 일이 있어도 마음을 기쁘게 먹는 사람은 인생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을 행복하고 복되게 살아갑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황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무릇 자기 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자세만 무너지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주위에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자세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이 긍정적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끝없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언제나 성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를 잡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기쁨과 희망으로 창조하신 존귀한 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할만큼 참으로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나를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십시오.  자신을 사랑한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가족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표현도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얼굴도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발걸음도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적극적이고 건강하게 믿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 길에 성공을 가로막는 함정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가라지와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근심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근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근심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근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염려와 근심을 다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한 생애에 근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때에라도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은 근심을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은 근심이 오면 지고 넘어지고 맙니다.

근심이라는 말은 마음이 나누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근심하면 판단의 기능을 잃게 됩니다.  근심하다 보면 무엇이 옳은지 잘 모릅니다.  근심에 빠지고 나면 결심의 기능도 나누어지고 맙니다.  근심을 자꾸하다 보면 생각도 몽롱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근심은 위장병을 일으키며 정신병도 일으키게 되고 아름다움도 망치게 됩니다.  근심은 습관의 산물입니다.  근심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근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근심은 또 다른 근심을 낳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못된 습관이 끝없는 불행을 낳고, 좋은 습관이 생각하지 못한 기적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을 나누지 말고 하나님께 붙들어 매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크게 보이면 문제는 작게 보이고, 예수님이 작게 보이면 문제는 크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심이 왔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의지해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근심을 빨리 해소할 줄 아는 나름대로의 방법과 이치를 터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끝없이 요구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인간에게 끝없는 요구를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지금 현재보다 더 아름다운 믿음을 갖도록 요구하십니다.  더 귀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더 확실한 믿음, 더 분명한 믿음, 더 큰 믿음을 소유한다고 하는 것은 확실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을 붙들지 말고 믿음을 붙잡으십시오.  눈에 보이는 환경에 붙들려서 방황하지 말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오직 한 믿음으로 변치 않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이 엉켰다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일이 뒤틀렸다고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일이 뒤틀렸지만 결국 합력하여 믿음으로 선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한 최악의 것이 닥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를 믿고 나아가는 신앙, 그것이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쉽게 조급해 하고, 쉽게 근심하고, 그래서 쉽게 지치고 넘어지는 어린아이와 같은 나약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환경에 초연해 보십시오.  그 환경을 뛰어넘어 보십시오.  무엇보다 사람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근심하게 됩니다.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넘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읽고 또 읽어보십시오.  거기에 사람을 믿으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사랑해야 하고, 위로해야 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지 결코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높은 사람, 잘 사는 사람, 인격이 좋다는 사람 중에서 주님께 칭찬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딱 한 종류의 사람이 계속해서 칭찬을 받았는데 바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크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살아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십니까?  우리 주님은 그 중심에 믿음을 보십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변화와 개혁을 위해 법을 고쳐야 한다느니,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법을 고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도를 고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법을 고치고, 조직을 고치고, 제도를 고쳐도 그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을 고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맙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사람이 달라지는 길은 무엇일까요?
사람을 살리는 길, 사람을 변화시키는 길, 사람을 개혁하는 길, 사람이 영원한 가치체계를 깨닫게 하는 길은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능합니다.  처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소속된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불같은 성령이 있었습니다. 물같은 성령이 있었습니다.  비둘기같은 성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와 하나님의 생기로 이 땅 위의 어두운 곳에, 썩어져 가는 곳에서 수많은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열정과 끝없는 신선미와 끝없는 능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을 보내면서 오는 주일에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인가를 기도하고 고민했습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오는 주일에 어떤 설교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행복하고 거룩한 고민이지만, 그래도 고민은 고민입니다.  목사인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편의 멋진 설교보다는 한편의 살아있는 설교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생명력 있는 설교, 힘있는 설교, 사람을 감화 감동시키는 설교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님께서 부족한 종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뜨겁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는 주일에 어떤 설교를 해야 할까?"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먼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설교해라!"
따뜻한 마음!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선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설교자만 아니라 성도들도 얼음장같은 마음을 가지면 아무리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은혜로운 성령의 단비가 내려도 돌짝밭 같은 굳은 마음에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얼음장같은 이 마음을 녹여 주시옵소서.  불같은 성령이여,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저마다 자기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얼음장같이 차갑습니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일평생 그렇게 차갑고 냉정한 마음을 대하며 살아야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자기 분위기를 갖는다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분위기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으로 따뜻해지려고 노력하십시오.  부드러워지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부드러운 말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고맙습니다"라는 말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고마워요, 감사해요"라는 말 한마디는 북극의 얼음도 녹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말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에도 "어이!", "이 여편네가…"라는 말들을 예사롭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고 사는 권세가 입에 있습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입은 길들일 수가 없습니다.  개나 돼지는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치도 안 되는 혀는 길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혀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입술에 파수꾼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심령이 낙심될 때마다 내 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때로는 강퍅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퍅해지려고 할수록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체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첫 사랑이라든가, 첫 데이트라든가, 하나님 안에서 누렸던 소중한 영적 체험들….  그런가 하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은 자기가 주장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일어나는 것도 내 마음이고, 주저앉는 것도 내 마음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낙심과 좌절과 넘어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털고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일어나면 해야 할 일과 달려갈 길이 보입니다.  일어나면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과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지금여기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2천년 전에 이 질문에 주어졌을 때,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이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면 헛 믿은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이 고백은 삶이 평안하고 은혜가 넘칠 때에만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내 삶이 힘들고 곤고할 때에라도 이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평안하고 좋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삶이 힘들고 곤할 때에, 시시각각으로 내 존재의 위기감을 느낄 그때에라도 당신은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이 훌륭했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평안할 때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한 밤중에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가 처량한 모습으로 야밤 도주를 할 때에 그를 시기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그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누가 봐도 이제 그의 인생은 끝났습니다.  그 마지막 절체 절명의 순간에 다윗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면…"  그리고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원수가 나에게 달려들고, 내 존재의 위기감을 느끼는 그 마지막 순간에라도 당신은 하나님이 나의 목자, 나의 산성, 나의 도우시는 분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삶이 가장 힘들고 곤고할 때에라도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신앙고백적인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매 순간마다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드리는 거룩한 영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환경 앞에서 시시각각으로 넘어지고, 자빠지는 그런 나약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본인도 힘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도 힘들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 때문에, 사람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성숙된 믿음 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입술의 열매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감사와 찬양과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주님 앞에서 신앙고백도 잘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를 향해 "베드로야, 네 인격이 참으로 귀하구나.  네 인격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라라고 하는, 죄와 슬픔과 아픔과 고난과 실패와 낙심과 죽음 가운데서 나를 구원하신 메시아라고 하는 이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는 음부의 권세가 많습니다.  사단의 권세가 많습니다.  시험의 권세가 많습니다.  그러나 음부의 권세를 무찌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구인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절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19절을 다같이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 말은 "하나님의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라"는 뜻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개인과 내 가정과 이 땅의 모든 문제에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새 역사의 새로운 터를 열리라는 꿈을 가지십시오.  나로 인해서 내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열어 가리라는 비전을 품으십시오.  이 땅의 부흥과 회복의 역사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라는 꿈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하늘의 문을 열리라!  내가 축복의 문을 열리라!  나로부터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단순히 건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왜 더러운 음식을 먹거나 술과 담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가 왜 더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다 술을 갖다 붓고, 담배로 굴뚝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다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교회입니다.  이 개개인 교회들이 거룩한 공동체, 다시 말해서 공동체 교회 모두가 연합하여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그 당시에는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낙심하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신함으로써 일평생 잊을 수 없는 배신자의 삶으로 떠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여 앉아 있는 가운데 그는 고민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데, 이 신앙이 바른 신앙이 아닌데, 뭔가 있을 텐데, 뭔가 있을 텐데…."
 
그는 이 거룩한 고민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오순절 성령이 그들의 믿음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교회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생명 속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 속에 운행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시국이 어렵고, 앞날이 캄캄하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삶이 힘들고 곤고함이 파도처럼 밀려올지라도 결코 혼자서 근심하며 염려하지 마십시오.  혼자 있을 때에 사단은 내 마음에 찾아옵니다.  혼자 있을 때에 나를 찾아온 사단은 내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가라지를 뿌려놓고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이 납니까, 아니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들이 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들을 합니다.  혼자 있을 때에 염려와 근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권면합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교회 공동체에로 나아오십시오.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교회에 가서 아무도 없는 그곳에 엎드려 기도해 보십시오.  깊은 밤, 모두가 잠이 든 고요한 시간에 주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해 보십시오.  이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성령께서 주시는 큰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 계획을 세우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내 가슴에 꺼지지 않는 진리의 불을 붙이리라"는 열정을 가져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게 되면 우리가 열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묶으면 묶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당신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그 믿음의 키를 가지고 묶이면 묶일 것이요, 풀면 풀릴 것입니다.  고유가에, 한없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나라가 온통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이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거룩한 주님의 물음 앞에 드릴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이 물음 앞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구하는 자시요, 건지시는 자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으로 하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로 인하여 내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열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의 부흥과 회복의 역사는 바로 나로부터, 우리로부터, 우리 교회로부터 시작되리라는 큰 꿈과 비전을 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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