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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은 실패의 원인입니다 (마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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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실패의 원인입니다 (마 14:25~33)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25-33) 

옛날 어느 마을에 삼년고개가 있었습니다. 이 고개에서 넘어진 사람은 삼년밖에 못산다는 전설 때문에 삼년고개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흰 백발에 수염까지 하얀 할아버지가 삼년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넘어질까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 앞으로 토끼 한 마리가 깡충 깡충 튀어 나왔습니다. 놀란 할아버지는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나는 이제 죽었네. 나는 죽었네!” 할아버지는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한참 울던 할아버지가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보, 할멈! 나는 이제 삼년 밖에 못살아. 삼년고개에서 넘어졌소. 하필 거기서 넘어졌소. 그렇게 조심했는데 토끼란 놈 때문에 넘어지고 말았네!” 할아버지는 근심걱정에 쌓여 그만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끙끙 앓아누웠습니다. 점점 할아버지는 죽음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소문을 들은 옆집 소년이 할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 염려할 것 없습니다. 다시 가서 넘어지세요. 한번 넘어지면 3년 살게 되니 두 번 넘어지면 6년이요, 세 번 넘어지면 9년이 아닙니까?” 지혜로운 소년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3년 고개로 가서 넘어지고 또 넘어졌습니다. 한번 넘어지면 3년이니 열 번 넘어지면 30년을 산다면서 즐거이 노래하며 뒹굴고 또 뒹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은 깨끗이 나아서 오랫동안 백년해로 하며 살았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입니다. 대한민국 소년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화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싣게 된 목적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만병의 원인이 근심과 걱정과 염려이니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한 일종의 지혜담입니다. 근심, 걱정, 염려, 이런 것들은 모두 두려움에서 오는 부정적 요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 말씀의 사건도 바로 두려움이 모든 실패의 원인임을 가르치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겁쟁이가 되게 합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밤 4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It is a ghost!)고 소리쳤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Take courage! It is I. Don't be afraid!).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점잖게 차분히 하신 것이 아닙니다. 황급히 큰 소리로 하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나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 유령이 아니라 예수님임을 안 제자들은 너무 놀랐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앞서 갑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도 바다 위를 걷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오라!”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베드로가 배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베드로는 힘 있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출렁이는 파도로 향합니다. 그때 그에게 다가온 것은 두려움입니다. 파도가 일렁이는 이 바다에 빠지면 어쩌나! 그 순간 그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면서 베드로를 건져 내셨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여러분과 저에게 큰 교훈을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로 두려움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입니다(Fear is our biggest enemy). 미국이 경제공황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Franklin Roosevelt)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한 가지는 두려움 자체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고 역설하였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립니다만 신앙의 반대는 의심이 아닙니다. 신앙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제한시킵니다(Fear can limit us). 우리를 좌절시킵니다(Fear can defeat us). 우리를 실패케 하는 원입니다. 우리의 삶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목표를 성취하려 할 때 두려움은 우리의 능력을 축소시키곤 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것도 두려움입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위축시켜 불가능하게 하는 것도 두려움입니다. 결혼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두려움이요, 우리의 성장을 질식시키고 방해하는 것도 두려움입니다. 성공의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도 두려움이요, 가능성의 세계를 보지 못하도록 장님으로 만드는 것도 두려움입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도 두려움이요, 매사에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앞서게 하는 것도 두려움입니다. 

지금 베이징에서 세계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있는데 이번에도 한국 낭자들은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신앙이 좋은 낭자들이 조국의 위상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경기도중 해설자의 말이 제 가슴에 남았습니다. 양궁선수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쏘면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 각국 선수들의 실력은 거의 대동소이하답니다. 배짱이 있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주원인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파괴하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병을 두려워하고, 아픔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병을 가져오고, 아픔을 가져오고,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때문에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면 침몰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결코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두려움은 실패를 안겨 줄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요?

둘째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합니다(Keep our eyes on Jesus). 오늘 봉독한 성경의 사건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합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걷고 싶은 충동에 휩싸입니다. 걷게 해 달라는 베드로의 요청을 예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배에서 뛰어내린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향해 뛰어 갔을 것입니다. 그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파도를 보게 되자 출렁이는 파도가 두려웠습니다. 금방이라도 자기를 삼킬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때에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 간단한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합니까? 당신을 두렵게 하는 그곳으로부터 당신의 눈을 돌리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눈을 고정시키면 두려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언젠가 외줄타기 서커스 요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고공에서 안전망도 없는데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며 외줄을 타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건너가야 할 목표지점 만을 바라보고 걸으면 외줄이 신작로처럼 보인답니다. “밑을 보면 안 됩니다. 목표지점을 정해 놓고 앞만 바라봐야 합니다.” 서커스 단원의 얘기입니다.

우리의 인생 목표는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예수님만 바라보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두려움이 와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워싱턴 D. C.에 사는 바네사는 의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극심한 관절통증이 찾아왔습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몸은 극히 쇠약해져 갔습니다. 서른 살이 안 된 이 여의사는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몸도 마음도 꼬부랑 할머니처럼 축 늘어졌습니다. 바네사의 아버지도 20대 초반부터 이 병을 앓다가 4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도 같은 병에 걸려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았습니다. 가족의 병력대로라면 바네사의 앞날도 뻔했습니다. 바네사가 차에서 내려 예배당 자리에 앉는 데까지 45분이나 걸렸습니다. 남들은 2-3분이면 해치우는 일을 그토록 질질 끌어야만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바네사는 성도들이 다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였습니다. 주중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관절을 풀어야 7시에 병원에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할머니도 이 병에 걸려서 인생을 망치셨는데 나도 이 병에 걸렸으니 이제는 다 틀렸다! 보통사람 같으면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네사는 달랐습니다. 그녀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건강을 회복시키실 거야. 날마다 좋아질 거야!” 이렇게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3년이 지나도 좋아지는 아무런 징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증이 그녀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병마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10년이 지난 지금 바네사는 정상인이 되었습니다.(조엘 오스틴: 긍정의 힘에서 인용)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우리의 믿음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를 혼란케 하여 마침내 실패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의 넒은 꿈을 뛰어넘어 성공에 이르는 삶을 살게 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면 더 넓은 세계가 보입니다. 

미네소타에 사는 밥 휘셔(Bob Fisher)라는 사람은 구두 수선가게를 운영하면서 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구두장이 밥’(Shoe Bob)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그는 겨울 캠프단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겨울 캠프는 그에게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얼어 죽을 만큼 추위에 떨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위기는 마침내 그를 추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밥은 그의 공포를 극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소형 텐트를 구입해서 뒤뜰에 쳤습니다. 미리미리 추운 밤을 텐트에서 보내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온 밤을 텐트 속에 머물렀습니다. 겨울의 미네소타 추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죽음에 이를 정도로 얼어붙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침까지 텐트 속에서 무사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슈 밥이 그 추위를 견뎠는지 아십니까? 그는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빌 3:10의 말씀을 되뇌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밥은 그날 밤만 소형 텐트에서 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속에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하여 그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를 원한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텐트를 앞뜰로 옮겼습니다. 그의 텐트를 집이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체험하게 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집 없는 사람들 100명을 초대하여 추수감사절 파티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분이 이 일을 위해 $7,000을 후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밥의 헌신을 도왔습니다. 그 다음 해, 14일 동안 추운 텐트에서 잠을 자는 동안 $10,000의 후원금이 걷혔습니다. 이 행사를 매년 하기로 했습니다. 무주택자들을 위한 ‘야외 천막 잠자기’운동을 통해서 $5,500,000(55억원)의 기금을 모았습니다. 지금 그의 마을에서는 수 천 명이 영하의 미네소타 날씨에 37일 밤을 야외천막에 자면서 $15,000,000(150억원)을 모아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친 미네소타 사람들’(Crazy Minnesotans)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부터 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 것은, 그가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하였을 때 일어났습니다. 더 크고 넓은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을 예수님에게 고정시킬 때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눈을 예수님에게 고정시킨 후에는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move forward). 아무리 거센 파도가 출렁이어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뒤를 보거나 뒤엣 일로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미래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기독교 신앙은 과거의 일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앞에 있는 일, 이제부터 살아갈 미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은 언제나 신앙의 모험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결코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내게서 떠나간 지난 일들입니다. 과거의 일이 내 발목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보라, 새 길이 열렸도다. 새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일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결코 과거는 나의 현재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뒤에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십니다. 그리고는 “follow me!”,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에게 눈을 고정시킨 사람은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머뭇거리면 침몰하고 맙니다. 

미 중부지역에 부흥회를 갔을 때 들은 얘기입니다. 50대 중반의 여자 권사님이 대접을 했습니다. 걸걸하고 사내다운 씩씩함을 주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일어서신 보기 드문 성공자입니다. 혼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분입니다.” 담임목사님의 소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3남매를 둔 행복한 아내요, 엄마였답니다. 큰 희망을 안고 온 식구가 미국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 첫 몇 해는 밥 먹고 살기 위해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집도 사고, 아이들도 잘 적응하고 살만한 즈음에 남편이 집을 나갔습니다. 그동안 사느라 몰랐는데 늦게 이상형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변명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남편이 주관하던 가정인데 남편이 떠나고 나니 매사가 서툴렀습니다. 당장 아이들 학교생활이 문제였습니다.” 영어도 못하고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는 이 여인은 눈물을 삼키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열등감과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제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훨씬 소중한데 왜 과거에 묶여 불행을 자초합니까? 지금부터 사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지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앉아있지 말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라는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갑자기 악몽에 시달리다 깬 느낌이었답니다. 

다음날 그는 다운타운에 있는 가발가게에 가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국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통해 액세서리를 수입해서 소매상에 넘기면서 사업의 지경을 넓혀갔습니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엄마의 고생을 보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분은 교회에서 여선교회장을 하면서 봉사와 선교에 앞장섰습니다. 그 지역사회의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그늘에 있었다면 지금까지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하면서 뒤치다꺼리하며 살았을 텐데 아픔이 오히려 내 삶의 지경을 넓혀주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제게 간증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당당했습니다. 그 지역 이민사회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상담 엄마였습니다. 버림받았다는 좌절감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열등감으로 두려움에 쌓여 있었으면 아마 그녀는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폐인이 되었거나 병들어 죽음을 자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씀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의지했던 남편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두려움을 버린 것입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예기치 않던 그녀의 미래가 활짝 열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요, 신비입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는 본래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진단 후에 슬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중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몸으로 전도생활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1년 이내에 죽을 것입니다.” 의사의 진단결과를 받은 부스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불안했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다는 것이 억울했을 것입니다. 깊이 고민하던 부스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이 말은 죽음의 두려움을 없앴다는 자기 선언이었습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는 병을 이기고 84세까지 살면서 구세군을 창설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의사를 버렸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삶의 눈을 고정시킨 채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축복의 미래문을 열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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