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좋은 복음의 일군이 되려면 (엡 3:7~13)

  • 잡초 잡초
  • 339
  • 0

첨부 1


좋은 복음의 일군이 되려면 (엡 3:7~13)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 시작하면서

복음을 위하여 교회 공동체를 섬길 때 우리가 먼저 알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이며 하나님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초월적 영광을 체험함으로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루돌프 오토는 누미노제라고 불렀습니다. 이 누미노제의 대표적인 예가 모세의 경우입니다. 

모세는 누미노제가 있기 전, 즉 마흔의 나이에 자기 동족을 위하여 일어나 민족 해방의 영도자가 되려했을 때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 40년 뒤 미디안 광야에서의 누미노제 곧 불 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은 것을 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사건에서 모세는 “내가 누구인가?를 되묻게 되었고, 이어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서 모세는 민족의 영도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사도 바울 역시 이런 누미노제를 경험하면서 그가 변하여 복음의 일군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런 바울의 경우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2. 좋은 일군의 전제

1) 먼저 바울은 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은 복음 사역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역사하시는 대로 일군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 위한 자기의 비전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빌 2:13). 그래서 그는 남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한 후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2) 바울의 누미노제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바울의 누미노제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려고 달려가다가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을 갖은 사람입니다. 그 사건 이후 오늘 본문 8절에서처럼 자기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여기게 되었고, 대신 그리스도 예수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하신 분’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깨달음 곧 누미노제가 항상 자신은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고 찬양하는 힘이었습니다.   

모세와 바울 뿐아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겐 이런 누미노제가 다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아 따라가게 된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고 그물을 거두고 있을 때, 예수님이 다가와서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보라고 하여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히자 그는 즉시 예수님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한 것이 그에겐 누미노제입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도 인간의 약한 본성으로 배신도 하고 도망도 쳤지만 그를 결국 일평생 사로잡았던 것이 누미노제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세요. 자신에게도 누미노제가 있었던가를? 우리에게 이 누미노제가 없이 교회의 일군이 되면 우리에겐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의 하는 일들에 열매가 없습니다. 일의 성과는 모두가 인간의 것 일 뿐입니다. 그럴 때 복음의 일군은 주님의 일군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세상의 일군이 되고 맙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사역자들이 누미노제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솔로몬도 일천번제를 드리다가 누미노제를 경험하는데, 그는 문밖출입도 잘 못하는 아이라고 낮추면서 백성들을 재판할 지혜를 간구했을 때, 전무후무한 지혜와 더불어 부귀영화도 얻은 것 같이, 누미노제가 없는 분들이여 일천번제를 드리십시오. 주님을 만날 때까지 엎드리십시오. 자존심을 다 내어버리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그 때 비로소 나는 누구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깨닫게 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자신의 인생 목적도 발견케 될 것입니다. 


3. 교회는 누미노제의 공동체

그러므로 교회는 누미노제의 공동체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데서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여 합심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강림하여 또 다른 누미노제를 경험하면서 기독교회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들어가면서 먼저 물었던 것이 “너희가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란 물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누미노제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일 때 교회는 견고하며 부흥하고 세상을 이길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10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세상의 권세자들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능을 이해하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교회는 누미노제로 가득 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초월의 영광을 경험함으로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하나님 체험이 끊어지면 세상의 권세들이 교회도 업신여기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더욱 왕성하게 퍼뜨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회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꾸중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누미노제가 없이 종교생활을 영위하며 제사를 집전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성전 뜰에 장사치들이 즐비했던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누미노제는 오직 예수 안에서 가능합니다. 본문 11절에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세상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되는 것이 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만 교회는 결국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는 항상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란 말은 예수와 함께이며 곧 예수님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는 곧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등한히 하고 소홀히 다룰 때 결국 우리는 예수님과 멀어지게 되고 누미노제는 교회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의 간증에 우리 교회로 전입하여 오시기전에 수요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다가 이 성전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케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모하는 심령에 하나님은 당신의 초월적인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겸손히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는 중에 기도의 영을 얻게 되며 그것이 곧 누미노제의 체험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4. 오직 믿음으로 

이제 마지막으로 부언하고 있는 것이 12절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예수님과의 교제 그리고 누미노제는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연구도 아니요 묵상도 아니요 믿음입니다. 믿음은 신뢰하고 수용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선물을 가득 넘치게 받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이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히 11:5,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믿음을 갖고 꿈을 이루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시는 좋은 복음의 일군들이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