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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자 (고전 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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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 (고전 3:18~23)


몇 년전에 영국의 신문에 한 사람이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30년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 수 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 내 머리에 기억되는 설교가 없습니다. 그러니 목사님들은 설교 준비에 시간과 전력을 다 쏟을 필요 없이 다른 일에 전력을 쏟으면 좋겠습니다. 30년 간 들어도 기억되는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 비꼬는 글이 실린 후에 목회자 설교에 대한 이런 저런 논쟁이 신문 지상에서 오갔습니다. 

이런 목회자의 설교에 대한 논쟁이 한 독실한 기독교인의 글이 신문에 실린 후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글이었습니다. ‘나는 아내랑 결혼해서 30년간 살면서 3만 2천 그릇의 밥을 먹었습니다. 아내가 해 주는 밥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도 지금 생각하니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별로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밥을 먹어서 내가 살아 있지, 그 밥을 먹지 않았으면 나는 죽었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정성껏 준비해 들려 주는 설교 말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경을 가르치면서 성경 공부를 ‘콩나물 키우기’에 비유하곤 합니다. 집에서 콩나물을 키울 때 우유 팩에 구멍을 뚫어 콩을 넣어 키웁니다. 콩나물을 키울 때 다른 것은 주는 것이 없고 단지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줍니다. 물을 주면 밑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물이 다 빠져 나오는데도 콩나물을 자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기억나는 것을 별로 없는데 들은 말씀을 통해서 신앙은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를 통해 우리들의 영혼이 말씀을 중심으로 바르게 세워지고 성장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화 작가로 유명한 이솝의 본래 신분은 노예였습니다. 그의 주인은 술을 마시면 터무니 없이 기고만장해져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솝의 주인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자기는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노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지금 한 말을 이행하지 못하면 모든 재산을 내놓겠다는 약속 문서를 받아냈습니다. 

다음 날 술에서 깬 이솝의 주인은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재산을 다 잃을 위기에 빠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끙끙 앓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앓아 눕자 이솝이 그 까닭을 물었고 주인은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솝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왔습니다. 이솝의 주인은 친구들과 함께 많은 구경꾼들을 이끌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자. 이제 약속대로 바닷물을 다 마셔보게!’ 그러자 이솝의 주인은 능청스레 말하였다. ‘그래야겠지. 그런데 여보게들, 나는 바닷물을 마신다고 했지 강물까지 마신다고 하진 않았네. 그러니 자네들은 저기 바다로 흘러 들어 오고 있는 강물을 좀 막아 주지 않으려나? 바닷물이 자꾸만 불어나고 있으니까 말이야.’ 친구들은 이 뜻밖의 반격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솝의 주인은 위기의 상황에서 겨우 탈출한 다음 이솝을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고 다시는 약속을 남발하지 않았습니다. 이솝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이솝 우화는 짧은 이야기지만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지혜를 배우게 합니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좋은 조건들을 잘 관리하고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도리어 주어진 복으로 인해 무질서하고 방종한 삶을 살아 불행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의 조건을 잘 정리하며 흩어진 부분들까지도 잘 추스려서 행복을 만들어 갑니다. 불행한 조건을 극복하고 복된 삶으로 만들어 갑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어서는 어떤 조건보다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며 부도, 권력도, 건강도, 명예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간구하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실뿐만 아니라 부와 권력과 명예까지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솔로몬에게 다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잘 다스려 인생을 복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보람 있고 행복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자신의 못마땅한 환경을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못마땅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야고보 1장 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세상 지혜, 사람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지혜를 아주 혹독하게 평가하십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헛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허깨비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 지혜는 세상의 것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판단하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불신앙의 세계입니다. 이런 세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시편 14편 1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이 없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 지혜를 향해 헛것, 허깨비라고 말합니다.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없는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자 같으나 실상은 어리석고, 미련한 자입니다. 

세상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마지막 노래는 전도서 1장 2-3절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라고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합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쫓았던 부와 명예, 권력과 즐거움이 죽음의 세계 앞에 서니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헛것, 허깨비라는 말합니다. 

세상 지혜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 자랑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를 자랑합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교만입니다. 자기 자랑에 능한 사람은 교만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합니다. 자기의 말이 수용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어김없이 시끄럽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고, 폐쇄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지혜를 멸망에 이르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사람이 비행기를 탔습니다. 조종사와 우주 과학자와 보이 스카웃 소년과 신부가 일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비행 도중에 갑자기 비행기 엔진이 고장났습니다. 비행기가 평형을 잃고 점점 내려오고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는 낙하산이 세 개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희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먼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처자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처자식에게 내가 없으면 안되니까 나부터 살아야 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재빠르게 낙하산 하나를 둘러메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제는 낙하산이 두 개 남았습니다. 곧이어 우주 과학자가 나섰습니다. ‘내 두뇌는 보통 두뇌가 아닙니다. 나는 세계적인 석학입니다. 나는 세계의 과학과 인류의 발전을 위해 결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낙하산을 둘러메고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낙하산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낙하산을 놓고 소년과 신부가 서로 마주 보았습니다. 마침내 신부가 입을 열어 ‘나는 처자식도 없고, 살만큼 살았고, 무엇이든 할만큼 했고, 또 죽으면 천당에 가게 될 것이니 그러니 애야, 내가 죽음을 택하겠다. 너는 장래가 구만리 같고 앞으로 해야 일이 많으니 네가 살아라. 어서 이 낙하산을 둘러메고 뛰어 내리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소년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신부님, 걱정마세요. 낙하산이 두 개 남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신부가 ‘무슨 소리냐? 조종사와 과학자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 내리지 않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방금 잘난척 하던 우주 과학자가 둘러메고 뛰어 내린 것은 낙하산이 아니라 내 보이 스카웃 배낭이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잘났다고, 자기는 잘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죽어도 자신은 죽으면 안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낙하산과 보이 스카웃 배낭도 구분해 보이 스카웃 가방을 둘러메고는 살겠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것입니다. 누군가 웃자고 만든 이야기지만 사람의 지혜를 비웃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를 ‘미련한 것, 헛것,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지혜의 끝은 멸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웃으십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가운데 ‘심판받는 자’라고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가만히 보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재판장이 되어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는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아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평안하게 서 계십니다. 형식적으로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재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보면 빌라도가 참 지혜로운 사람 같습니다. 자신의 총독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군중들의 여론을 재판에 반영시켰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마음을 달래며 팔레스틴 지역을 잘 다스려 로마 황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총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니 얼마나 지혜로운 판단과 처세를 한 것입니까? 세상의 지혜로 볼때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참으로 어리석은 분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한 마디만 대답하거나, 유대 지도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만 하면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고 묵묵히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처세술이 전혀 없는 어리석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지난 후에 세상적으로 지혜롭게 보였던 빌라도는 가장 저주스런 이름의 주인이 되어 있고, 가장 비겁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지혜로 볼 때에는 가장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은 수십억의 사람들이 그 분이 지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며  지혜의 왕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로 볼 때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던 빌라도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던 예수님은 가장 지혜로운 분이 되셨습니다.  참 지혜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에 있는 것입니다. 참 지혜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잠언 3장 5절에서 7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은 온갖 고생을 다한 후에 결국은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 주기 위해 바로 왕 앞에 섰습니다. 그때 바로 왕이 요셉을 향해 ‘네가 그렇게 꿈 해석을 잘한다면서?’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대답하기를 ‘왕이여 그 해석은 하나님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꿈 해몽의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니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을 높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이용해 하나님을 높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11편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지혜를 가지고 살다가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된 빌라도와 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사는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분이 되신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은혜가 성도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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