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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보존하라 (창 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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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생명을 보존하라 (창19:12-17)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때는 한 대낮이었습니다.(창18:1)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약하시며 이제 1년 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8:10)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넘었고, 그 아내 사라 역시 90세 넘었기 때문에 장막 어귀에서 시중들던 사라가 이를 듣고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면서 ‘이 늙은 나이에 내가 어찌 아들을 낳으랴?’ 하느냐?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 그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18:13-19) 고 말씀하시고 헤브론 마므레 아브라함의 거처를 떠나셨습니다. 

그곳을 떠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창18:20-21) 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두 천사가 소돔성에 이르게 된 때는 “날이 저물 때” 곧 밤이었습니다. 소돔성의 타락상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최적의 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돔성의 밤 문화는 온갖 형태의 음란과 방탕, 각종 사악한 죄악들이 활개치고 있었습니다. 

잠언 7:7-9에 보면, “어리석은 자, 지혜 없는 소년 하나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 나라 백성의 밤 문화를 보면, 그 죄악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찾으신 때는 태양이 작열하는 한 대낮이었는데 반해, 롯이 살고 있는 소돔성을 찾아가신 때는 온갖 죄악이 깊어가는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헤브론을 찾아가신 목적은 약속하신 축복을 재확인하며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웠음을 알려주시고자 함이었고, 롯이 살고 있는 소돔성을 찾으신 목적은 사실 소돔성의 죄악과 타락상을 직접 확인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회개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겠다는 목적으로 찾아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 성경에는 “만일 그들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내가 그들을 벌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첨부되어 있습니다.(갈대아역)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은 아브라함이 “주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라며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께서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아니 거기에서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창18:23-32)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소돔성에 의인 10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 10명을 보아서라도 그 소돔성을 용서해달라는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대로 만약 소돔성 백성 중 10명만이라도 회개했더라면 실제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이처럼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돔성은 회개하기는커녕 롯의 집을 찾아온 두 천사를 성적 쾌락거리로 삼아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패거리로 몰려가 롯의 집을 포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며 협박합니다. 

“오늘 밤에 너의 집에 온 그 남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라. 우리가 그 남자들과 섹스 좀 즐겨보자.”(Bring them out to us so that we can have sex with them. NIV) 

소돔성의 죄악이 이 지경이자 두 천사가 롯에게 소돔성에 대한 긴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온 가족들을 불러 소돔성을 떠나라고 경고합니다. 롯이 이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주어진 심판의 경고에도 새벽이 다 되도록 꾸물거리자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끌어서, 성 바깥으로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이렇게 말합니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창19:17) 

도망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은 ‘조만간 심판받아 멸망당할 세상, 조만간 없어질 세상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 등 그 어떤 것들에도 미련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들에 머무르지도 말라.’는 말씀은 ‘한시라도 틈을 주지 말고 완전히 죄악의 도성을 떠나라,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처럼 철저하게 버리고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산으로 도망치라’는 것은 소돔성이 전혀 보이지 않은 곳까지 도망치라, 죄악의 도성과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들에 머무르지도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소돔성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의인 한 명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소돔성은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한 정도로 죄악의 밤은 깊어만 갔던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만한 의인 하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롯에게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만큼 소돔성의 죄악은 치명적이었고, 뿐만 아니라 롯 역시 산으로 도망하여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소돔성의 죄악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소돔성이 얼마나 음란하고 타락으로 가득한가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음란한 행위 중 하나인 ‘동성애’(동성간의 성적 행위)와 ‘수간’(獸姦, 사람과 짐승과의 성적 행위) 등을 소돔성의 지명(地名)인 ‘소돔’(sodom)에서 파생된 ‘소도미’(sodomy)라고 합니다. 그만큼 당시 소돔성 백성들이 얼마나 깊이, 그리고 다양하게 성적으로 문란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coming out, 자신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행위)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하는 모습, 이것이 소돔의 현실이었고 오늘날 우리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소돔성에 살고 있는 롯 역시 성에 대해 타락하고 음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롯이 간청하여 자기 집에 머무르게 된 두 천사, 사람의 모습으로 자기 집에 머무르게 된 이 사람들을 자신들의 성 노리개감으로 내놓으라며 문을 깨치고 협박하자 롯이 문을 걸어 잠그고 만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창19:4-9) 

간단히 말해 자기의 처녀 딸 둘을 내줄테니 맘대로 즐기도록 하고 내 집에 들어온 손님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님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딸들의 순결과 명예를 더럽힐 수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당시 가정의 성적 문란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입니다. 성의 순결함에 대한 가치를 상실한 음란한 시대를 보여준 것입니다. 성을 얼마든지 매매할 수도 있고, 타협의 수단과 방편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롯의 두 딸들은 이미 소돔 청년과 정혼한 상태였습니다.(14절) 그럼에도 자신의 딸들을 폭도들에게 색욕거리로 내주려한 롯의 생각이나 행동은 롯 자신도 얼마나 타락하고 음란한 세대를 따라가고 있는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롯의 이같은 성에 대한 가치관은 그대로 두 딸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구원받은 롯의 두 딸은 자신의 가문을 잇도록 한다는 구실로 아버지 롯을 술에 취하게 만들어 두 딸들이 교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근친상간의 죄악을 범합니다. 그래서 두 딸들이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통해 각기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큰 딸이 자식을 낳고 ‘모압’이라고 했고, 작은 딸이 낳은 자식이 ‘벤암미’로 암몬족의 조상이었습니다. 

불륜과 패륜의 씨앗들인 ‘모압’과 ‘암몬’은 이들이 롯의 아들들인지, 손자들인지를 혼란케 했고, 아니면 이들이 두 딸들의 남동생인지, 자신의 아들들인지, 두 아들들은 서로 형 동생인지 아니면 사촌지간인지를 혼란케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압’은 ‘딸이 자기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식을 낳게 되었다.’는 뜻, 암몬족의 조상 ‘벤암미’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들이 붙여진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 또한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완전히 파괴시킨 최악의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같은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수간 등 음란한 범죄자들을 반드시 죽이되 불로 태워 죽여 깨끗이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레20:11-17)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 자부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둣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아울러 취하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짐승에게 가까이하여 교합하거든 너는 여자와 짐승을 죽이되 이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을 취하여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그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 죄를 당하리라. 

소돔성의 음란과 타락상과 더불어 적어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함께 지냈던 롯의 성적 가치관이 이 정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창19:1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처럼 철저하게 세상적 모든 가치관과 습성들을 버리고,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처럼,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처럼 살라, 죄악의 도성과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할 가치가 있었겠는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음에도 동틀 무렵까지 꾸물거리고 있는 롯과 그의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할 가치가 있었겠습니까?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에도 소돔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은 과연 구원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은 롯과 그의 가족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두 천사들의 거듭되는 재촉에도 지체하자 두 천사들은 강제적으로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끌어서, 성 바깥으로 안전하게 대피시켰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롯의 가족에게 강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신당부합니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하나님께서 롯에게 이같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을 창세기 19:29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창세기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는 말씀에서 ‘인자’는 히브리어 ‘헴라’인데 이는 상대방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그저 베푸시는 긍휼, 동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를 더하셨다.’는 것은 롯이 노아처럼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여러 가지 죄악에도 불구하고(창19:8)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생각하사’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린 중보기도처럼 의인 하나라도 그 성에 있었다면 롯과 그의 가족들을 강권적으로 성 밖으로 끌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을 성 밖으로 끌어내고 소돔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인자’를 베푸신 것입니다. 참으로 의인의 간구하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사도 바울 역시 아브라함과 같은 중보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치며 이렇게 중보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딤전2:1-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he remembered Abraham. NIV)는 아브라함이 소돔성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 드린 중보의 기도를 생각하셨다, 기억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소돔성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 갈 영혼들을 안타까워하며 아브라함처럼 중보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소돔성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지라도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의 가족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성도 여러분의 중보 기도를 하나님께서 ‘생각하사’, 곧 여러분의 기도를 기억하사 여러분의 가족, 친척들과 이웃의 영혼들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중보 기도가 예수 믿지 아니하여 심판 가운데 사는 여러분의 가족들과 이웃들의 영혼들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롯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 시대의 사람들이 회개하든 말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모든 사람의 죄악을 담당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은 롯의 아내는 끝내 소돔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지금까지도 사해 가까이 롯의 아내로 전해지고 있는 특정한 소금기둥이 남아있는데 이는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살아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가를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았을지라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삶이 되지 못한다면,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생명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화석(化石)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눅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 중 광야생활에서 애굽을 돌아보았던 자들은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으신 성도 여러분, 조만간 심판받아 멸망당할 세상에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신앙생활, 이웃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아브라함처럼 중보 기도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947년 7월, 영국 공군은 히틀러의 나치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 독일 공습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명 ‘고모라 작전’이었습니다. 독일 북부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한 사병이 포탄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병은 피해 없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신학자 몰트만입니다. 수학과 물리학자가 되려던 무신론자 몰트만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자신의 지난날을 회개하고 목회자,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몸으로 마음으로 전파하겠다.’는 그의 결단과 신앙생활이 오늘날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즉 세상 미련을 깨끗이 접고, 악은 그 모양이라도 철저히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아야함에도 롯과 그의 두 딸들은 소돔성에서 살던 가치관과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므로 이 땅에 돌이킬 수 없는 불륜의 씨앗을 퍼뜨리고 불행하고도 수치스러운 자손들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노아 당시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방주에 들어가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실 때에는, 그 성에서 나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들에 머무르지도 말고 산으로 도망쳐 나와야, 다시 말해 온전히 하나님 앞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모든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강권하시는 사랑과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과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받으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기도생활로 이웃들의 영혼을 구원하며, 온전히 하나님 앞에 돌아온 신앙생활로 생명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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