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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이 진 십자가 (요 19: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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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진 십자가 (요 19:23~27)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사역하셨던 이재환선교사님께서 영국 WEC 본부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을 때, 한 번은 훈련 간사님이 지하에 있는 한 방으로 데려가더랍니다. 거기에는 먼지가 자욱히 뒤덮힌 짐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습니다. ”저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자세히 가서 보세요.“ 짐 무더기 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세계 각지로 흩어져 나간 선교사님들의 짐이었습니다. 그 중에 상당한 것은 이미 선교지에서 죽은 선교사님들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랍니다. ‘이것이 선교사의 삶이구나!’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선교지로 떠나는 삶,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이 져야 할 십자가를 깊이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선교사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모든 성도는 누구나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마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힘든 일인 줄 알았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 때는 십자가의 복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고통스럽고 나를 희생시키는 것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예수님을 따르기에 져야 하는 십자가는 복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져야할 십자가를 다 주시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입니다. 십자가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저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어?” 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정치적 야망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이 독선적이었고 시기, 질투심도 대단히 강했고, 무엇보다 화가 나면 사람을 죽이려 들 정도로 성격이 불같았던 사람이라, 오죽하면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겠습니까?

한 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의 순수성을 상실했다고 하여 개같이 취급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서 가신 이유는 그 길이 지름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똑같은 사랑하는 영혼들이었기 때문에 굳이 사마리아 지방을 둘러 가실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그 때 요한은 불 같이 화를 내면서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을에 못 들어오게 한다고 하나님께 불을 쏟아 부어달라고 해서 그 마을 사람들이 전부 불 타 죽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런 성격이 있습니까?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자기를 좀 홀대한다고 불로 태워 죽이면 좋겠다. 이랬던 사람이 요한이니 예수님의 제자와 어울립니까?

여러분, ‘예수 믿으면 사람이 정말 변할 수 있을까요? 성격이 바뀔까요?’ 의심하고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시면 요한서신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요일 4:7)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12)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0) 

여러분, 이 말씀이 사마리아 사람들 위에 불을 내려 달라고 했던 요한의 설교라면 믿어지십니까? 
우뢰의 아들이라던 요한이 사랑의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이 진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이 바뀝니다. 요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내 생명으로 내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자는 사람이 바뀝니다.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23절)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러나 요한도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곁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울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좋을 리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육신의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너무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시는 어머니와 함께 요한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으나, 요한 만큼은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러워하시던 예수님께서 곁에 있던 제자 요한에게 우시는 어머니 마리아를 맡기신 것입니다.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이 그 순간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예 주님, 염려마세요. 제가 아들처럼 잘 모시겠습니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런 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시게 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한에게 십자가였습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어떤 사람 때문에, 또 어떤 일 때문에 내가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을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한 때는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 처럼, 그도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모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는 베드로 인생은 남이 자기에게 띠를 띠우고 가지가 원하지 아니하는 길로 끌고 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하여,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피하지 말아야 될 고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외면하지 말아야 될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견디어야 할 어려운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 곳에 계시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그럴 수 있고, 어떤 환경이 내게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부담스럽고 싫고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어떻게 살았을까요? 자신의 모든 야망, 꿈, 계획을 다 버려야 했습니다. 요한의 대명사인 혈기를 부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요한에겐 자아의 죽음이었습니다.

 제게 있는 성화 엽서 중에 사도 요한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화에 그려진 사도 요한의 머리에 큰 혹이 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기도를 많이 했던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땅에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굽혀 기도하다가 생긴 혹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요한은 완전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사랑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한 사도에게는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는 영광을 누렸으며 그 체험을 기록한 것이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입니다. 십자가가 요한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이 진 십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보시는 것은 요한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구레네 시몬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때 구경 나왔던 많은 사람 중에 구레네 시몬이 하필 붙들려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갔던 불행한 일을 그가 겪었습니다. 그날 제일 재수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 날 이후 시몬도 그 가족들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가문이 달라졌습니다.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초대교회 훌륭한 지도자, 감독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던 그 일로 인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내가 져야 될 십자가는 복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억지로 맡겨진 것 처럼 느껴지는 십자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억지로 맡겨 주신 [마리아] 곧 십자가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이 내 십자가구나!’ 어떤 문제가 내 십자가구나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잠잠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복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이나 교회, 직장에서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는 없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 십자가야.” “저 문제는 내 십자가야.”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형편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려니 피할 수 없는 고생, 받아야 할 사람, 참아야 할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부담되고 싫고 답답하고 원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토미라고 하는 한 소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미는 늘 행복해 했고 성적도 뛰어났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갑자가 성적도 떨어지고, 행동이 점점 파괴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로 불렀습니다. 토미의 부모님은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학교에는 왔지만, 짜증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사람의 별거와 이혼 소송이 토미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토미의 시험 답안지 한 장을 토미 어머니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생각없이 그 시험지를 받아 보고서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그 시험 답안지를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처음부터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던 남편이 그 시험지를 받아들었습니다. 시험지 앞뒤로 빼곡이 똑같은 말만 반복해서 휘갈겨 쓴 것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토미 아버지는 울면서 그 시험지를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자녀가 십자가라고 여긴 적이 없습니까? 자녀 때문에 도무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짐스럽게 여기신 적은 없습니까? 그 십자가가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 사람은 마음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우리가 마음대로 못 살아서 문제가 아니라,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문제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십자가로 인하여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가 십자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뿐만 아니라, 나에게 지라고 주신 십자가도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과 항상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의 새로운 명소인 국가대극원에서 지난 11일 ’신이 내린 목소리’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환상적인 무대가 중국 관객들 수천 명을 단숨에 사로잡았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고성과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며 팬들을 한치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무대 속으로 빠져들게 했답니다. 조수미씨는 중국 관객들로부터 공연이 끝난 후 세 차례나 커튼콜을 받았습니다.
  
성악가 조수미씨가 이탈리아 산타세칠리아 음악원에서 유학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유학 온지 1년반 만에 핀란드콩쿠르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언론은 그녀가 최연소자이긴 하지만 가장 뛰어난 가창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너는 꼭 우승할 거야!” 하고 용기를 주었는데, 막상 그 대회에 출전했지만 그는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실망이 되어 노래를 부르고 싶지가 않아서 4개월이나 노래를 쉬었습니다. 그런데 조수미씨가 다시 노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준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수미야, 내가 너더러 언제 우승하라고 하더냐. 1등이 목표가 아니다. 너는 노래를 사랑해라. 노래는 아름다운 것이잖니.” 

어머니의 그 말 한 마디에 조수미씨는 답을 얻었습니다. “알았어요. 나는 이제부터 1등을 목표로 노래하지 않고 노래를 사랑할래요. 즐겁게 부를께요.” 그래서 열심히 노래를 즐기면서 불렀더니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억지로 지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의 삶을 살게 하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몇 년전 서울에서 세계 한인 입양인 대회라는 모임이 열렸을 때, 15개국에서 43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그 입양인 가운데 몇몇 성공 사례가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중에 미국에 입양된 스티븐모리슨씨는 미국 우주항공연구소 수석 연구원이었습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최석춘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릴 때 미국의 어느 가정에 입양되었고 훌륭하게 잘 자라서 성공한 입양아가 되었습니다. 그를 입양한 미국인 아버지도 참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늘 말했답니다. 
 
“내 생애 가장 위대한 결정은 하나님을 만난 것, 네 엄마를 만난 것, 그리고 너를 입양한 것이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했습니다. 
  
입양아는 양부모에게 십자가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이 십자가를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하므로 한 사람의 인생을 놀랍게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평생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 자녀를 위하여 수고하면서 삽니다. 그 때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에요.”라 할 때 그것은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수고하고 살았으면서도 “아이고 내 팔자야! 당신이 내 십자가요!” 한다면 그것은 아무 유익도 없는 헛고생이 될 뿐입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이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습니다. 사랑을 해도 보상을 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축복의 십자가가 저주의 십자가가 되고 맙니다. “내가 너를 기르고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십자가라고 여겨졌던 것이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한 때 저는 제게 많은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모두가 다 간증거리가 되고 감사의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들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선물임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 남서울은혜교회 청년부 여름 수련회 강사로 갔었습니다. 그 때 <모티베이터>라는 책을 써서 마케팅 분야의 유명 강사가 된 KTF 조서환 부사장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교회 집사님인 조서환부사장은 "쑈를 하라 쑈~" 이 한 마디를 온 국민에게 유행어로 만들어놓은 사람입니다. 샴푸와 린스를 합친 하나로삼푸, 20세의 치아를 80세까지 유지하라는 2080치약, 휴대전화 번호 이동 서비스를 창안해 내는 등, 수 없이 많은 히트 브랜드들을 만들어 냈답니다. 그리고 장애인인 그는 왼손만으로도 필드에서 87개를 치는 골프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는 23살 때 육군 소위로 임관했답니다. 그런데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쪽 손을 잃었다고 합니다. 너무 심한 고통에 기절하고 깨어나 보니 육군 통합병원이었다고 했습니다. 한 손을 잃고 수많은 파편이 여러 곳에 박혀 있어 그 아픈 중에도 사귀고 있던 22살의 여자 친구가 보고 싶었답니다. 망설이다 전화를 했더니 왔는데 나무처럼 굳은 채 자기를 보더랍니다. 그녀에게 “이래도 나를 사랑하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30분 넘게 머뭇거리다 겨우 물었답니다. 한참만에 그녀는 고개를 두 번 끄덕거렸답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손은 잃었지만, 여자 친구의 넘치는 사랑 때문에 오히려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와서 병간호를 해 주던 애인을 아버지가 나타나 끌고 가려고 했다. 저항하는 딸에게 아버지와 그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그때 딸은 “만약 아버지가 손을 잃었다면 엄마가 어떤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세요? 나는 이 남자의 전부를 사랑한 것이지, 손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조서환 부사장은 평생 이 여자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사고로 한 쪽 팔을 잃었지만 언제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아내를 최고의 마케터, 즉 모티베이터라고 부른답니다. 아내는 자신의 초라한 삶에 의미를 불어넣고 살아나겠다는 의지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조서환 집사의 아내에게 장애인이 된 애인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할 때, 놀라운 삶의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진짜 가수에게 돈 줄테니 노래하지 말라고 하면 노래를 안 할 수 있을까요? 또 진짜 농사꾼에게 돈 줄 테니 농사짓지 말라고 하면 농사를 안 지을 수 있을까요? 진짜 화가에게 돈 줄 테니 그림 그리지 말라고 하면 안 그릴 수 있을까요? 진짜 목회자에게 돈 줄 테니 목회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돈을 줄테니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 때 “아니오. 나는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십자가를 사랑할 것입니다.” 해야 합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십자가를 이처럼 귀히 여기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놀라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1956년 청년 선교사 짐엘리엇(Jim Eliott)이 중남미 에콰도르 아우카 인디언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접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섯명의 젊은 선교가가 인디언들의 창에 찔려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후 20대의 다섯 명의 순교자들의 아내들과 먼저 회심한 인디언들이 모여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 때 한 선교사의 아내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영광의 문.325p) 

“--오, 하나님. 그들이 하나님을 몰라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들은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모르오니 그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사랑의 메신저들을 보내게 하옵소서. 아우카족들에게 사나운 마음 대신에 부드러운 마음을 주옵소서. 오, 주님. 그들은 우리 남편들을 창으로 찔렀나이다. 그러나 주는 이제 그들의 마음을 당신의 사랑의 창으로 찔러 주옵소서. 당신의 말씀으로 찔러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믿고 우리의 형제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드린 지 꼭 3년이 지난 후 짐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엘리엇은 자신의 남편을 죽인 일곱 남자 중 두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그들과 함께 앉아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고, 아우카족의 마을은 복음의 능력 앞에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져야 할 십자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복된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하지 마십시다. 사랑하십시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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