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받은 자의 믿음의 내용 (롬 1:17)

  • 잡초 잡초
  • 400
  • 0

첨부 1


구원받은 자의 믿음의 내용 (롬 1:17)


로마서에서는 구원의 진리를 어느 책보다 더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합 2:4의 인용인데, 여기서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 율법이나 선행 혹은 재물이나 지식, 인간의 어떤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이며 죄악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류영모 목사님이 어릴 때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 중에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를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황새 한 마리가 늪에 빠졌습니다. 두 다리가 푹 빠졌는데 어떻게 다리를 뽑나 하고 생각을 하다가 부리를 푹 박고는 부리에 힘을 주고 두 다리를 쑤욱 뽑았더니 부리가 푹 빠져 들어갑니다. 이 부리를 어떻게 뽑나 고민하다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는 부리를 쑤욱 뽑았더니 두 다리가 푹 빠져들어 갑니다. 두 다리 쑤욱 뽑으면 부리가 푹 빠지고 부리를 쑤욱 뽑으면 두 다리가 푹 빠지고 백 년 동안 계속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늪에 가면 두 다리 쑤욱 뽑으면 부리가 푹 빠지고 부리를 쑤욱 빼면 두 다리 푹 빠지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늪에 빠진 한 마리의 황새처럼 죄악의 늪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되어집니다. 이 죄악의 늪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메시지가 엡 2:8, 9 내용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설교는 믿음의 대상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믿음의 내용을 다루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 가장 잘 요약 된 것은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에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만을 정리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들입니다. 성경의 핵심 중에 핵심 구절은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멸망에 빠진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독생자의 오심이 중요한데 이 독생자의 오심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요 3:16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제가 여기서 발견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서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 상태로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롬 5:8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부적인 사랑입니다. 상대가 사랑 받을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해서 죽고 못 살던 사람들도 상대의 조건이 바뀌면 돌아서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행복합니다. 예배가 즐겁습니다. 교회생활이 천국입니다.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느냐 못 받고 있느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내가 말씀대로 좀 살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질 낮은 사람들의 사랑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제대로 사느냐 못사느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못 받느냐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죄인 된 상태에 있어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허물투성이인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그 대가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아들을 주셨다면 못 주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1937년, 미국 미시시피강을 가로지르는 긴 철교가 놓였는데, 이 철교는 중간 부분이 들려 올려 지도록 만들어져서 배가 지나가면 다리가 올려지고 배가 지나간 후에 다시 내려져 기차가 지나가도록 만들어진 다리였습니다. 이 다리를 조정하는 일을 하는 존 그라피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이 사람의 7살 난 외아들 그레그가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찾아왔습니다. 기쁨으로 존 그라피스는 아들의 손을 잡고 관망대에 올라가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렸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다리를 올려놓은 채로 관망대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계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레그가 아버지 뒤를 따라 내려오다 떨어져 기어에 왼쪽 발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기계실 창문 너머로 아들이 기어에 왼쪽 발이 걸린 채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반대쪽을 보니 700명이 탄 멤피스행 특급열차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라피스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다리를 올려 둔 채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을 살리느냐, 수백의 목숨을 살리느냐 기로에 놓였습니다. 몇 십초 동안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고, 머리의 피가 거꾸로 쏟는 것 같았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며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육중한 굉음과 함께 기어가 돌아갔고 아들은 기계 속으로 딸려 들어가면서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져 죽었습니다. 다리는 내려졌고 그 기차는 다리를 지나가는데, 존 그라피스가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니 창가에 한 여인이 화장을 고치고 있었고, 신사가 신문을 들고 읽고 있었습니다. 또 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당신들을 살리기 위하여 내 아들을 죽였다! 당신들을 살리기 위하여 내 아들을 죽였다니깐!”하고 외쳤지만 기차에 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 피맺힌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큰 사랑을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다 같이 해봅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 확신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라면 내 생활과 환경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워야 하느가?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가 미련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우리 가정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저의 집은 잠자리가 좁아서 저는 교회 성가대 의자에서 3년을 자야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혼졸 하시기도 했습니다. 군입대 후에는 더 어려운 일들이 겹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하지 못한 저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켜 보니 그 어려움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그 일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고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이해할 수 없어도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결국은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이다” 

약 1:17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실 만큼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내 삶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막 10:45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살을 찢고 피를 쏟아 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사 53:2-6에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은 우리를 대신한 고난입니다.

1978년, [신앙과 생활]이라는 기독 잡지에 실린 실화입니다. 한국동란이 한참이던 1951년 12월 24일 밤, 강원도원주 근처에 작은 마을에 만삭이 된 한 여인이 다리 위를 걸어가다 산통이 심하여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다시 난간을 잡고 일어선 여인이 다리 밑으로 내려가면서 뚝방에 서 있던 소나무 가지를 꺾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밑에 내려간 다음자갈밭에 소나무 가지를 깔고, 치마를 벗어 다시 그 위에 깐 다음에 구푸리고 앉아 사내 아기를 낳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무서운 추위를 맞은 아기는 자지러질듯이 울었습니다. 여인은 자기 겉옷을 벗어 아기를 싸고 또 속옷까지 벗어 아기에게 덮었습니다. 자기는 벌거벗은 채로 아기를 체온으로 살리려고 자갈 밭 위에 뒹굴다가 결국 추위에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새벽 4시 경, 감리교 선교사님 부부가 지프차를 타고 다리 위를 자나가다 바람결에 들여오는 가느다란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차를 멈추고 렌턴을 비추면서 다리 밑을 내려가 보니 자갈밭에 피가 뿌려져 있었고, 한 여인이 발가벗은 채로 새파랗게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시체를 뒤집어보니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옷 속에 싸인 채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부인에게 건네주고 치마로 시체를 싼 다음에 지프차에 싣고 원주 경찰서에 갔습니다. 경찰관이 “선교사님! 이 전쟁 통에 연고 없이 죽은 자가 너무 많습니다. 선교사님이 적당한 곳에 가매장하시고 전쟁이 끝난 후에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 말을 옳게 여겨 교인들을 불러다가 그 마을 내를 건너 언덕 위를 올라가 왼쪽 편,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봉분을 만들고 돌로 십자가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13년동안 이 선교사님 부부가 양육했습니다. 

13년이 지난 후, 미국 UMC 감리교 본부에서 선교사님을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소환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14살 된 소년에게 출생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눈물 속에 자기 출생이야기를 들은 소년이 “선교사님, 우리 엄마 무덤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었고 선교사님은 “무덤 위치를 일러 주었습니다. 소년은 언덕 위를 올라가 억새풀을 헤치고 왼쪽으로 가서 엄마 무덤을 찾았습니다. 봉분은 다 허물어져 있었지만 바닥에 돌로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년은 작은 손으로 무덤 주변에 있는 억새풀을 뜯어내고, 가시를 뜯어낸 뒤 겉옷을 벗어 엄마 무덤에 덮었습니다. 그리고 바지와 속옷까지 벗어서 무덤에 덮은 뒤, 발가벗고 무덤 위에 엎드려 부들부들 떨면서 “엄마, 엄마 나를 살리려고 엄마는 옷을 다 벗어 나를 감싸주었다죠. 나를 살리려고 엄마는 얼어서 죽었다죠. 나를 낳으시던 밤에도 이렇게 추웠었나요?”하면서 통곡했습니다. 뒤에서 선교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보시다가 소년에게 외투를 벗어 주면서 “가자, 가자, 엄마도 이제 다 아실거야.”라고 감싸주자 소년은 “싫어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을 거에요. 엄마! 엄마!”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아들이 산 것입니다. 엄마의 죽음이 없었다면 아들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십자가는 내가 가진 잘못된 것과 주님이 가지신 좋은 것을  바꾸는 장소입니다. 나의 죄악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주님의 의는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로, 나의 사망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주님의 생명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로, 나의 질병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주님의 건강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로, 나의 가난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주님의 부요함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로, 나의 불행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주님의 행복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로... 십자가는 주님의 아름다운  것과 나의 추한 것을 교환하는 장소입니다.


3. 성령님의 동행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죄악으로 가득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처리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임마누엘 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사람에게 사람의 영이 있듯이 하나님의 영이 있는데 그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인간 속에 찾아오셨고 예수를 믿는 자 속에 거하시며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고전 3:16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고 그 성전 안에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다른 이름은 보혜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요 14:16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란 말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데 ‘곁에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保惠師)를 한문으로 풀이하면 ‘보호하고 은혜를 주고 가르치는 자’란 말입니다. 영어로는 ‘helper'로 그 뜻은 ‘돕는 자’로서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도우미’란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힘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창조자입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슥 4:6, 7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수많은 방해꾼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방해꾼들의 방해는 스룹바벨에게 큰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힘으로 능으로 안 되는 일이 하나님의 영으로 되어진다고 하시면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큰 산 같은 문제도 스룹바벨 앞에서는 평지가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다보니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인간의 능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아십니까? 작은 결심도 지키기 힘든 것이 인간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변화입니다. 그런데 자기 변화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어려운 자기 변화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람이 변합니다.

담배를 끊지 못해 늘 신앙생활에 당당하지 못했던 집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가족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베란다에 나가 비스듬히 기댄 채 뻐끔뻐끔 담배를 피워대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비난을 했습니다.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또 담배를 피워요. 그렇게 의지가 약해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옆으로 서서 피우잖아!”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담배 하나 제대로 끊지 못할 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한 남자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심한 알콜중독으로 수입을 몽땅 술로 마셔 버렸습니다. 그러니 집세도 못 내고 그와 가족은 생활이 말이 아닙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병원 문마다 두드려 보았으나 알코올 중독에서 놓여나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가정을 지켜오던 부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나가겠다면서 남편에게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된 남편이 부인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여보 내 힘으로 안 되지 않소. 한번만 봐 주구려.” 그래도 부인은 지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서 헤어지기를 고집했습니다.

 하는 수 없어서 남편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술 중독에서 놓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다음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집에 오니 부인이 짐을 다 꾸려서 응접실에 내 놓고 남편이 집에 들어가도 본체만체 합니다. 부인과 자식을 한꺼번에 잃게 되어 다급해지자 남편이 자기 침실에 들어가 꿇어앉아 침대를 부여잡고 “하나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외면했던 저는 죽일 놈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알코올 중독에 걸렸습니다. 이 알코올중독이 저의 가족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나의 인생은 이제 파멸입니다. 이것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올 리가 없습니다. 저를 알코올 중독에서 구해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하고, 고함을 치며 기도하는데 어느 새 그의 기도는 자기 나라의 말이 아닌 이상한 말로 바꾸어져 있었습니다. 그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방언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자 뱃속의 창자가 꼬이듯 하더니 커다란 덩어리가 속으로부터 올라오면서 한참동안 입에서 더러운 물을 토해 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속이 시원하면서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알코올중독에서 놓여난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지나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몇 시간도 견디지 못하여 술을 먹었던 그분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자 가정은 다시 웃음꽃이 피어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나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술을 매우 좋아해서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로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그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고, 결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이 세상에서 전혀 가망성이 없는 사람도 변화 시켜 놓습니다. 성령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능히 할 수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성령은 우리의 인격에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고 성령은 우리의 일에 역사하셔서 큰 산을 평지로 만드십니다. 우리의 삶에 역사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함께 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습니다. 성령님의 동행을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