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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해 (수 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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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수 22:10~20) 


며칠 전 아주 연세가 많이 드신 어른 한 분이 오셨는데 누군가 당신한테 억울한 소리를 해서 견딜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오해, 오해란 대단히 무섭습니다. 우리는 오해받을 때 정말로 힘듭니다.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오해받는 것은 대단히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주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제가 한 번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중에 군대를 갔다 제대를 했는데 학교에 복학하기 전에 잠시 모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그 교회에 나가서 잠시 봉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여름 성경학교 학생부 지도교사를 저에게 맡겼습니다. 오랫동안 그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에게 지도교사를 맡긴 것이었습니다. 또 교회가 조그맣기 때문에 옛날 선배들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라 제가 지도교사를 맡아 여름수련회에 학생들을 이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수련회에 참가한 학생들 중에 불량기가 있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평소에 교회에 잘 나오지 않던 학생들인데 아마 여름 수련회라 나왔던 것 같습니다.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휴식시간이었는데 날이 저물어 깜깜했습니다. 연합 수련회였으므로 여러 교회 학생들이 함께 한 수련장이었는데 수련장 건물 뒤를 돌아갔을 때 우리 교회학생들이 하나같이 전부 다 손에 담뱃불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혹 피우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전부 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더 화가 났던 것은 비록 대학생이었지만 명색이 지도교사인데 저를 보고도 아무도 담배를 끄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학생이 저에게 와서 그것은 담뱃불이 아니라 모기향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모기가 많아 모기향을 부러뜨려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저는 그것을 담뱃불로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불을 붙여 하나씩 다 들고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담뱃불이었습니다. 30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장면과 그 아이들의 표정이나 모든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오해받는 것은 참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것은 참으로 쉽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부끄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땅이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도 있고 서쪽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요단강 오른쪽이 동쪽이고 왼쪽이 서쪽입니다. 오른쪽은 땅이 조금 적고 왼쪽은 넓었습니다. 오른쪽부터 왼쪽을 진격했으니 동쪽부터 먼저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 땅을 열두지파 중 두 지파 반에게 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서쪽에 가서 전쟁을 해야 했는데 이미 오른쪽에 배정받은 지파들도 같이 가서 전쟁하였습니다. 이 때 정복한 땅은 나머지 아홉 지파 반에게 배정하였고 두 지판 반은 동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쪽으로 돌아간 두 지파 반의 사람들이 요단강 옆에 큰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를 알게 된 서쪽의 아홉 지파 반의 사람들이 화가 나서 다 모여 싸우러 가려 했습니다. 

이들이 제단을 쌓은 것을 보고 전쟁을 하려고 한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제단은 제사 드리는 제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전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성전이 없습니다. 이슬람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성막이라는 제단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 외에는 제단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막이라는 제단 이외 제단을 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려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서 강 동쪽에 있는 두 지파 반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서쪽의 아홉 지파 반도 같이 멸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망하기 전에 자기들이 쳐들어가서 없애겠다고 생각하여 모였습니다. 이제 같은 동족 간에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6․25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럴 때 꼭 필요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어른입니다. 어른이 계셔야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어른이 계셔야합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평화를 지킬 어른이 필요합니다. 나라에도 그렇고 가정에도 그렇게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을 때 이 나라에 어른이 있었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른이 있으면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하든 간에 나라가 뒤집어지고 소란스럽고 서로 싸우는 일만은 없을 것입니다. 어른이 없어서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른이 계시기만 하면 평화를 지킬 수 있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어른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게 가정이 많이 깨지는 걸까요? 아무리 젊은 사람일지라도 남편이든지 아내이든지 간에 어른이 한 사람만 있으면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황혼이혼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나이만 먹었지 어른이 없어서 그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른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 간에 한 사람을 이해를 시키고 좌절을 시킵니다. 만약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달래서 평화를 지켜나갈 어른이 계셔야하고 만약 이것이 오해 때문이라면 오해를 풀어야할 어른이 계셔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임에도 불구하고 오해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금 쇠고기 문제도 어떤 사람은 사실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오해라고 하는데 설사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어른이 계시면 보듬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 아니고 오해라면 풀어나가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오해가 길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어른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어른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대단한 복입니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이 복이 있습니다. 진짜 어른인 예수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어른입니까? 이 예수가 우리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뺨을 맞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뺨도 갖다 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편하지 않습니까? 진짜 어른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일곱 번까지 할까요 라고 물었을 때 일곱 번도 대단하지만 기왕 할 바에는 일곱 번을 일흔 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자주 듣기 때문에 무감각하지만 얼마나 큰 어른이시며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십니까? 이런 어른 앞에서 싸울 수 있습니까? 예배드리러 가다 그 사람에게 잘못된 일이 생각나거든 천천히 예배를 받아도 되니 그 사람과 먼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큰 어른입니까? 정말로 화난 일이 있어서 주먹을 빼들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다시 주먹을 넣으라고 말씀하셨고, 분노에 차서 칼을 집어 들었을 때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말씀입니까?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말로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하였습니다. 저에게 두 살 적은 동생이 있었습니다. 두 살 터울이라 가끔 싸웠는데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 날 단단히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싸웠습니다. 두 살 터울이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아무래도 제가 형이라 조금 힘이 더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말리셨지만 화가 나서 동생에게 주먹으로 쳤는데 치고 나니 어머니 손을 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확실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이후로는 동생하고 치고받고 싸우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그만 그 동생은 제 곁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예수가 계시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나 더는 그보다는 여러분이 어른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작은 예수가 되십시오.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그 기도가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참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성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도록 나를 도와 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여러분, 빛이 그냥 납니까? 무엇을 태워야합니다. 만약 아무 것도 태울 것이 없다면 차라리 나를 태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입니다. 예수 노릇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 노릇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태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주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습니까? 시간을 내서 위로해주고 경제 문제라면 나도 없어도 조금 내어주는 일을 통해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내가 대신 욕을 먹고 못난 사람이 되고 내가 손해를 보고 내 돈을 쓰는 이런 사람이 작은 예수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예수가 되십시오. 어른이 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로 인해서 평화를 지켜지겠지만 사실 여러분들이 훨씬 행복합니다. 어떻게 나 때문에 싸우려고 하던 사람이 싸우지 않게 되고, 나 때문에 어떻게 전쟁하려고 했던 사람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어머니 손을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쳤기 때문에 동생이 맞았으면 제법 아팠을 텐데 어머니가 대신 맞았습니다. 얼마나 죄송한 일입니까?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날 뻔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누군지 모르지만 서쪽 사람들 중에 그런 어른이 있었습니다. 본문 1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보면 어쩌면 이 제사장 비느하스가 그런 어른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복입니다 큰 복입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소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어른이 되십시오. 일 처리도 참 잘했습니다. 대표로 보내고 대표로 갔는데 혼자만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정성이 있어야 했고 객관성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 특정부류만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잘 따르는 사람, 나와 뜻이 늘 합하던 사람, 늘 나에게 동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는 모든 지파의 대표들과 같이 갔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14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지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이 대표들이 같이 간 것이었습니다. 객관성이 있고 공정성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본래 교회가 이렇습니다. 본래 기독교 교회는 이렇게 운영해야합니다. 운영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 두 사람 뜻에 따라 판단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의논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이고 교회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초대교회에 맨 처음 교회직을 왜 세운지 아십니까? 사도들이 계셨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공정성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데 멋지게 아주 처리했습니다. 사도들은 역시 어른이었습니다. 이런 어른들이 계셔야합니다. 맛디아 라는 사도가 대신 와서 열 두 분의 사도가 계셨는데 이들은 이 소리를 듣게 되자 첫 번째 조치로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얼른 판단하였습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열 두 사도나 되는데 자기네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니라(행6:2-4)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른입니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을 때는 괜찮았지만 문제가 일어나자 말자 즉각적으로 뒤로 물러나서 우리가 할 일은 기도와 말씀 준비일 뿐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물러섰습니다. 이것이 어른입니다. 

여러분, 누구다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간혹 대통령들도 이것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합니다. 얼른 뒤로 물러나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그리고 난 다음에 그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매나와 니골라 일곱 사람을 세웠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세운 사람의 면면입니다. 이들은 각각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치우치지 않도록 골고루 세운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사도들이 이렇게 조치하는 것을 보고 온 무리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나서지 않고 기도하고 말씀만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기분으로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모든 교우들이 기뻐하고 바깥으로는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원리,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서 바르게 운영될 때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때에 따라서는 부흥해지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혼자 또 몇 몇 사람이 하지 아니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또 내가 판단하는 것이 틀렸을지 모르고 잘못했을지 모른다는 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이것을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겸손이 있는 곳에 역사하십니다. 어느 곳이든지 그렇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인 내가, 아내인 내가 백번 잘한 것 같지만 혹 내가 잘못 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 앞에 자식이 백번 옳을지라도 그래도 혹 내가 잘못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서 겸손하려고 마음먹고 그 모습이라도 가지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충만히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서쪽의 아홉 지파 반의 사람들이 가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항의하자 동쪽에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그에 대한 해명을 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강이 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면 강 때문에 너희들과 우리는 다른 민족이고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지 몰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쌓은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서쪽에 간 사람이 얼마나 미안해했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아주 좋은 결과가 생겨났습니다. 어른 하나가 제대로 잘 해서 오해가 풀어짐은 물론이고, 오해로 인해서 더 확실하고 곤고하게 신앙도 결속도 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오해는 아주 자주 생겨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해란 절대로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이 있어서 자구 이렇게 만들어갑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얼른 실체를 보아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오해를 당했을 때, 혹시 여러분이 오해를 했을 때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옳다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판단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자리에 서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도록 만들고 평화를 이루어가도록 만들고 어떻게 하든 간에 민족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다투지 아니하도록 함께 힘써야합니다. 기도해야합니다. 하나 되는 것을 만들어나가야 되는 것이지 나서서 판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해지는 것이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설사 그 사람이 잘못 했다고 할지라도 잘못 했다고 판단하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한 내가 더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아예 그런 것은 하지 마십시오. 좋지 않게 생각하거나 판단하는 일은 어떻게 하든지 피하십시오. 우리 주님이 명령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저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좋게만 생각하십시오. 

네 번째, 다툼이 있고 불화가 있고 분열이 있을 때 여러분이 할 일은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나라 속에, 시청 광장의 촛불사이에 오시옵소서.’ 부부간에 다툼이미 있을 때 자꾸 입을 열어서 말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 우리 사이에 오시옵소서.’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나님, 우리 회사에 오시옵소서’ 예수님을 모십시오. 그러면 즉각 그 곳에 다시 평화가 시작됩니다. 신비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됨이 이루어집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합해집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평화를 위해서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하시게 되면 우리 주님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우리 주님께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작은 예수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도 가지만 너희들도 작은 예수가 되어 아들과 며느리 속에, 딸과 사위 속에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질 때 여러분들은 작은 예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들은 물론 여러분들이 먼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주셨던 그 영광을 여러분들에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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