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 안에 거하라 (요 15:1~17)

  • 잡초 잡초
  • 470
  • 0

첨부 1


내 안에 거하라 (요 15:1~17)


오늘 본문 직전에 있는 말씀은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신 것은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는 뜻이며 이제는 가르침과 설명의 자리에서 행동과 실천의 자리로 옮겨가시겠다는 의미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시며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고 당신이 곧 지실 십자가와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실 만큼 다 가르치셨고 설명하실 만큼 충분히 설명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자들이 주님에 대한 믿음 안에 굳건히 머무는 것뿐인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더 이상의 가르침과 설명이 필요하지 않기에 “이제는 일어나 가자.” 하신 예수님께서 어쩌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포도밭을 지나시거나 포도나무를 보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포도나무를 비유로 이용하셔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실 말씀을 하실 기회로 삼으셨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먼저 1절을 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포도원지기로 묘사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27:3에서는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하고, 

시80:8에서는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십니다. 이 짤막한 한 마디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벌써 중요한 진리 몇 가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포도나무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농부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은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신 말씀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나는 참 포도나무”라 하신 것은 당신께 붙어있으며 열매를 맺는 사람만이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 즉 참 이스라엘 백성을 거론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종종 포도나무에 비유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주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말하기 위해서였음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렘2:21에서는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합니다. 

또 호10:1-2에서는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합니다.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어버렸고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된 거짓 이스라엘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심을 또 다시 밝히신 말씀이 “나는 참 포도나무”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요14:6의 말씀 즉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신 말씀의 뜻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신 말씀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2절의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앞부분은 경고의 말씀이며 뒷부분은 격려의 말씀입니다. 먼저 앞부분의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선택된 언약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버리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경고를 받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선지자의 탄식만 그 예로 들어 봅니다. 먼저 이사야의 탄식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5:1-7)

에스겔의 탄식도 들어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겔15:1-6)

다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열매를 맺는 참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격려의 말씀입니다: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가지를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전지한다는 말 즉 잔가지들을 정리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나무는 때를 맞춰 전지를 잘 해주어야 좋은 나무로 잘 자랍니다. 가지마다 비쭉비쭉 나오는 잔가지들을 그대로 다 내버려두면 좋은 가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각자의 욕심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좋은 사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율법을 주셔서 당신의 백성을 다듬으시며 양육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 맺는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더욱 많은 열매를 맺도록 계속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고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하시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3-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 즉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었고 그들도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제자들로 택하심을 받았으니 이제 그의 대한 믿음을 지키며 그의 말씀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4-10절 사이에서는 “안에 거한다.”는 말이 1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토록 거듭된 예수님의 말씀의 요점은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안에 거하라 하시면서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그 열매가 어떤 것일지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우리에게 맺히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7-17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당신 안에 거할 때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약속하셨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7절에서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8절에서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11절에서는 주님께서 기뻐하실 뿐 아니라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12절과 17절에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4-15절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로 여기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말씀입니까?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이렇게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이러한 열매들을 맺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요한복음 14장에서 본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가 우리 안에 계실 것이며, 그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서 열매가 맺히게 되는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이토록 큰 일들을 이루게 하는가 하면, 그 반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4-6절의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나뭇가지 같은 존재들입니다. 나뭇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힘이 없습니다. 나무줄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안에 거하고 주님께 붙어 있는 한에서 뭔가 열매를 맺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은 헛된 것뿐이라고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서부터 떨어져나가면 아무 열매 없이 그저 말라버릴 뿐이므로 불에 던져질 따름인 것입니다. 이 또한 주 안에 거하지 않고 주님께 붙어있지 않는 삶의 무가치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함”은 이토록 위대한 일을 만드는 것이고 “내 안에 거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고맙기 그지없는 말씀인데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뜻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알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말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를 우리의 유일하신 주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복음을 계속해서 믿는 것입니다. 넷째는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그리스도의 몸인 신자들의 공동체와 사랑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은 무리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주신 그의 가지들이며 새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그 안에 거하며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이사야와 에스겔의 탄식이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탄식이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예수님께서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리라” 하신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아니라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명목상으로는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인의 열매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등록교인수는 만삼천 명 정도로 집계가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그저 오천 명 선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열매 맺지 않는다는 것이 단지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도 열매 맺는 일을 형제사랑과 긴밀히 연결시키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지된 자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다듬어진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사는 모습이 세상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이 거칠고 제멋대로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 하신대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실천을 통해 우리의 사고와 판단과 언어와 행동과 생활을 순화시키며 새롭게 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이 모든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주 안에 거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열매를 맺고, 의미 있는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