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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악한 세상에서 (마 5: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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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세상에서 (마 5:38~42)


폭염이 기승을 부린 한 주간이었습니다. 뜨거운 폭염 속에서도 은혜 중에 고등부 수련회가 마쳤습니다. 목사님과 부장 집사님 선생님들이 목이 쉬도록 수고하셨다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까지 초등부 성경학교가 수련원에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중국 갔던 선교팀도 훌륭하게 사역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感謝狀). 요르단 선교팀도, 40도가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서 훌륭하게 사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두,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63년 전 우리 선조들이 맞으셨던 8․15光復의 기쁨이 어떠했을까? 그 날의 환호성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컸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光復이란, ‘빛이 회복되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을 光復이라 합니다. 

박완서 선생님이 쓰신 「두부」라는 산문집에, “개성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 末尾에, 개성사람들의 抗日精神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성에서는 일본상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개성사람들의 抗日精神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1전을 10등분하기 위해서 성냥 한통 사서 성냥개비를 나누는 지독한 개성아낙네들도, 일본상인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저항했다고 합니다. 자식한테 5전짜리 비누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비누 한 개가 5전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인데, 아이가 5전짜리 비누 두 장을 들고 왔습니다. 까닭을 물으니, 새로 낸 日本人商店에서 신장개업 기념으로 선심을 쓴 거였습니다. 어미가 아이에게 그 비누 두 장을 돌려주면서, 조선 사람이 파는 가게 가서 비누 한 장만 사오라고 했답니다. 1전에 치를 떠는 어미가 기꺼이 5전의 손해를 본 것입니다.

그런 개성사람들에게도 뜻밖의 8․15광복이 오자, 집집마다 먹을 갈아서 日章旗를 太極旗로 急造해서 대문에 내다 걸었다고 합니다. 日章旗가 쉽게 太極旗가 되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 중에 더러는, 오랫동안 장롱 속에 숨겨뒀음직한 태극기도 있었답니다. 흰색 공단(고급비단) 바탕에 같은 공단 천으로 사괘와 태극무늬를 박음질한 태극기도 있었답니다. 광복의 기쁨이 말할 수도 없었겠지만, 노랗게 색 바랜 태극기, 접혔던 자리가 유난히 더 노랗게 색 바랜 태극기를 우러러보면서, 먹을 갈아 日章旗를 太極旗로 급조한 국기를 내다 건 것을, 몹시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지나간 18세기, 19세기, 20세기, 그리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는, 전쟁과 침탈로 얼룩진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제 65억 지구촌 평화의 축제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을 슬로건으로 내건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되었습니다. 204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규모의 올림픽이라고 합니다.

올림픽이 개막되던 바로 그 날에,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지점인 그루지야에서는 전쟁의 포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세계강국인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아 수도를 놓고 전면전을 벌인 겁니다. 이 전쟁은, 친러 성향인 남오세티아 자치국과 친미 성향인 그루지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러시아와 미국, 서방의 싸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세기 산업화 이후의 세계역사를 보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전쟁, 정복과 독립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물줄기는, 궁극적으로는 經濟戰爭이었습니다. 

특히 언제 주로 전쟁을 일으켰는가 하면, 경제불황, 경제공황, 長期的인 經濟沈滯狀況이 회복되지 않았을 때, 세계 역사는 꼭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누리던 富, 地位—끝없는 인간의 慾求가 충족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인간들은 전쟁을 해서라도, 남의 나라를 정복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기의 욕심과 富, 명예를 꼭 되찾기 위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인류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입니다. 

명분에 가려진 전쟁 속에는, 경제라는 숨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숨겨진 경제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민족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라는 명분으로 전쟁도 불사했습니다. 21세기는 노골적으로 ‘경제전쟁’이라는 말을 씁니다. 좀 교양 있는 말로 資源外交라고 하지요. 사실은 치열한 경제전쟁입니다. 

19세기 열강들이 식민지 정책을 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이라는 식민지 확보는 경제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식민지정책이 진행될 때 선교사들이 자국의 식민정책의 첨병역할을 했습니다(식민선교, FOR, 1세계→3세계). 19세기 중 후반(1873년~), 20년 넘게 영국은 경제대불황에 허덕였습니다. 증기선의 발달로 해운수송이 활발해지고, 철도망이 확보되고,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냉장․냉동기술의 발달로 값싼 농산물이(러, 미국, 북아메리카 등에서) 대거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자, 유럽농업이 큰 타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공산품 생산의 과잉으로 재고가 늘어가면서, 장기적인 경제불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 유럽 각국은, 자국의 산업을 지키려고 관세장벽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강대국들이 원자재 공급과 새로운 시장개척을 나서면서 식민지확대정책을 폈던 것이지요. 19세기 후반은, 말 그대로 열강들의 식민지 획득 경쟁시대였습니다(불과 20년만에, 아프리카 대륙이, 바둑판처럼 분할됨). 대영제국이 이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독일의 세계정책이 이 시대에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 나라마다 군비확장을 하면서 식민정책을 펼 때, 프랑스 교육가 쿠베르탱이 국제사회에 제의한 것이 올림픽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4년에 한 번씩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았습니까?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만이라도 도시국가들 간의 전쟁을 막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스포츠교류로 국가주의로 패인 골을 매워보자는 취지였던 거지요.

189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 올림픽위원회가 구성되고, 1896년에 아테네에서 제1회 국제올림픽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금년이 제29회입니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도, 국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5대륙을 상징하는 ‘오륜기’가 만들어지던 1914년 바로 그해에, 불행하게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지 않았습니까? 국가주의, 민족주의, 북한이 대남선전용어로 쓰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것도, 세계평화나, 분단된 우리나라의 아픔에 無益하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지 않았습니까? 정치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1960년대부터, 국제사회는 국가주의로는 안 된다 것을 알고는, 정부간조직(IGO; 유엔, IMF, 유네스코)과 비정부조직(NGO; 900개 이상)을 세워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 역시 역부족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식민통치했던 日本帝國主義가 일으켰던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설(1931)도 역시, 일본의 경제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국면전환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세계경제공황의 직격탄을 받았던 독일이 군사력확장을 하면서 일으킨 전쟁입니다. 독일이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이 독일과 손을 잡고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일으킨, 대동아전쟁에 의해서 세계적인 전쟁으로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 역시, 중국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전쟁 末尾에,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원자폭탄 세례를 받으면서 백기를 들었습니다(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일본제국주의가 막을 내리면서, 우리나라도 광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지나간 19세기 20세기의 비극적인 (경제)전쟁과 수탈의 역사가, 오늘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의 끊임없는 영토야욕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세계열강들과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인류역사와 국제사회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는 세계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비국가기구인 유엔, IMF, 유네스코 등 정부간조직IGO가 만들어지고, 유럽연합 같은 지역기구나 제너럴모터스 같은 세계기업,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비정부조직NGO가 900여개나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난맥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실 때, 이스라엘은 당시 세계최강국이었던 로마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종교․사회․정치적인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대제사장 독차지).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친로마적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주의적인 처세술과 신앙으로 立身揚名한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힘과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 매우 삼가야할 나쁜 누룩 같은 위험한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반로마적이었습니다. 종교원리주의자들이었습니다(주로 서기관, 랍비). 모세의 토라(율법)를 문자적으로 지키는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편협한 민족주의, 선민주의에 근거하여 애국심을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중시했고, 異邦人들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나라가 로마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자기들의 율법적인 義를 추구하면서, 그것으로 자기 의를 자랑하던 자들입니다. 

열심당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렬한 애국주의자들입니다. 행동주의자들입니다.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원수 갚음을 정당하게 여기던 자들입니다. 친로마적인 인사나 반유대적인 인사들의 명단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들을 만나면 어디서나 테러를 감행할 수 있는, 행동파들이었습니다(가슴에 칼을 품었던 자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열심당에 속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따라다니던 사람들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묻던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세리들은 친로마적인 인사들입니다. 자국민들의 돈과 재산을 갈취해서 로마에 바치고, 자기 배를 채우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稅吏하면 곧 죄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는 7계층의 종교계급(층)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최하위계층 사람들이 바로, 稅吏들입니다. 異邦人들입니다(세리 마태, 세리장 삭개오; 창기들).

이런 다양한 계층들로 구성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은 서로 화합하거나, 융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정치적인 색깔도 다릅니다. 신앙관도 다릅니다. 모래알입니다. 기름과 물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 될 수 있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일으키셨던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하신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도 이루어졌던 하나님 나라에서는, 온 세상 나라, 열방, 민족들이 모두 다 하나가 되는 길이 있었고, 진리가 있었고, 생명이 있었습니다. 세리도 용납되고 변화되었고, 창기도 용납되고 새 사람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마태는 세리출신이 아닙니까? 여제자 중 하나였던 마리아는 창기 출신입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도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방인도 용납되었습니다. 로마 군대백부장은 예수님께 가장 크게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 땅, 수로보니게 여인도 구원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수가城의 여인도 구원받았습니다. 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보복이 없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않는 나라입니다. 惡한 자를 대적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도리어 악한 자를 사랑으로 감동시켜서, 그의 삶의 방식과 존재 가칠를 바꾸어 주는 나라입니다(손양원 목사). 속옷을 가지기 위해 나쁜 의도로 송사할 때, 겉옷까지(생존의 보루)도 내어주면서 그 악한 마음을 무력하게 만드는 나라입니다(더 가지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는 전쟁이 없는 나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할 때(당시 로마법), 십리까지도 동행해 주는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힘없는 나약한 나라가 아닙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로마 군인들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화가 나서 품고 있던 칼을 빼어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쳤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지요.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天使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가지고 있는 힘을 보복하는 데 쓰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무저항 비폭력이 힘이 없어보여도,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강한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씀은, 弱者에게만 요구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힘 있는 사람, 가진 사람, 국력이 강한 열강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福音입니다. 

더 가지기 위해서, 남을 정복하고 빼앗고,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 그런 국가와 민족, 그런 사람은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 국가의 興亡盛衰, 온 우주만물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다 칼로 망합니다. 

광복 63주년기념주일에,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민족, 우리나라, 민족주의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축복하고 살리는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를 통해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福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악한 세상에 살면서, 위협받고 사는 우리들을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 땅에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여 주옵소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능력을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증오심을 제거해 주시고, 용서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적을 형제로 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마음을 주옵소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사람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땅의 모든 힘을 가진 자들, 정당하게 쓸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폭력이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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