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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1시에 온 사람들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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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에 온 사람들 (마 20:1~16)


우리는 지금 바야흐로 21세기의 새로운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생각과 경영방식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형태 즉 전혀 다른 ‘패러다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 많이 놀고 평안히 쉬며 즐기려하는가 하는 것에 몰두해 있습니다. 

본문은 일을 조금하고도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를 보여 줍니다. 일을 늦게 시작하였으나 남보다 앞설 수 있는 원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섬김의 도’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서 마 19장 30절에 소개된 ‘격언적 말씀’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의 말씀에 나타난 주제에 해당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섬김의 자세를 바로 배우며 그것이 주는 축복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포도원에 일하러 온 사람들

본문은 천국시민에 입문한 성도들이 최종적으로 터득해야 할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이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상급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얻으러 아침에 나가서 한 일군에게 하루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또 3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도 얼마의 품삯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하고 일을 시킵니다. 이후 주인은 6시와 9시에도 노는 사람들을 만나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후 11시에 주인이 다시 장터에 나가 종일토록 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일군으로 일하게 합니다. 11시에 온 사람들은 일할 시간이 한 시간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시간은 고대 유대의 시간입니다. 3시면 우리 시간으로 9시이고, 6시면 우리 시간으로 12시입니다. 9시면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 11시면 오후 5시가 됩니다. 성경의 시간 계산법은 그 시간에다가 6시간을 더하면 됩니다. 즉 시계의 문자판 반대편의 시간을 생각하면 됩니다. 본문에 주인이 일군을 부른 시간은 이른 아침 9시, 12시, 오후3시, 오후 5시였습니다. 그러니 처음에 온 사람은 적어도 점심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10시간 이상 일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6시간 혹은 3시간, 그리고 마지막에 온 사람은 1시간 일을 한 셈입니다. 

저물어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일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말합니다. 청지기는 3시, 6시, 9시, 11시 온 모든 일군들에게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자 집주인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중 온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는데 비하여 자신들은 종일 수고하고 더위를 견딘 노역에 대하여 차별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 20:14,15)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2. 11시에 온 사람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사람들은 11시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거의 종일토록 일거리가 없어서 시장에서 놀고 있다가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둔 상황에서 부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는 노동의 가치가 거의 없는 한 시간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본문이 말씀하려는 내용의 초점은 아침에 부름 받은 일군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늦게 부름 받은 ‘11시에 온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포도의 수확 시기가 보통 9월 말경인데, 이 때에는 장마 시기가 임박하기 때문에 포도원의 일손이 매우 바쁘게 돌아갑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단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 있어도 크게 환영을 받습니다. 물론 임금은 시간에 따라서 차등을 두었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본문에 나타난 주인이 품꾼에게 주는 대우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1데나리온은 직업군인이나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됩니다. 

중국을 여행해 보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부채나 작은 악세사리 등을 팝니다. 처음에는 1달러에 1개 혹은 2개를 잘 흥정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 일정상 버스가 떠나게 되는 시간이 임박해 지면 1달러에 5개까지 팝니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려하면 10개 혹은 20개에 1달러가 됩니다. 그러면 먼저 물건을 산 사람들은 무척 비싸게 산 느낌을 갖고 괴로워합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늦게 믿고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 받아 일군으로 채용된 11시에 온 포도원의 일군과도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믿음이나 능력 혹은 사명감도 약하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에는 부족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아주 늦은 마지막 추수시간에 한 시간이라도 와서 일을 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첫째로, 능력이 있고 유능한 자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부름 받은 자를 보면 세상의 어떤 학식이나 지식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둘째로, 장래가 총망한 자를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당장은 일을 할 수 없으나 가능성과 시간을 보면서 키워서 일할 사람으로 보고 뽑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만 일해도 9시간을 일한 자보다도 더 가치 있는 그런 충분한 가치를 지닌 특별한 전문가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온 자나 늦게 온 자 모두가 꼭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아무도 써주는 사람이 없이 노는 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무능하고 아무도 써주지 않는 낙오자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람의 어떤 능력보다 겸허한 마음을 복 써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자격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부름 받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자였으며,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고백합니다. 

(딤전 1:12,1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1시 온 사람들은 축복을 받은 자요, 은혜를 입은 자요, 긍휼을 입은 자들입니다.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만약에 늦게 온 자가 교만하고 잘난 척 한다면 그 모양이 더욱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3. 성도의 자세와 축복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그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인간의 어떤 우열(優劣)이나 선후(先後) 공과(功過)와 상관없이 오직 당신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서 상급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사람은 바로 한 시간 밖에 일할 수 없는 ‘11시에 온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람을 통하여 많은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바로 영적으로 11시에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에 대하여 은혜의 축복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면 우리의 신앙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숙고해 봅시다. 

첫째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자들은 한 시간이라도 써주시는 주인에 대하여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 놀라운 구원에 동참하게 된 것을 인하여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도 감사할 뿐 아니라 특히 그 중에서도 직분을 주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행한 것보다 더 넘치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한 시간만 일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주인은 아침에 온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하였으니 너무나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침에 일찍 온 사람에 비하면 1/9을 받아야하지만 품삯을 시간으로 계산하면 다른 사람보다 9배나 받은 셈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5 달란트와 2달란트를 맡은 자들은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남기고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는데, 그 칭찬은 두절 곧 21절, 23절의 내용이 글자한자 다르지 않고 꼭 같은 축복을 내리게 됩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받은 직분이 어떤 것이든 간에 겸손과 감사함으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은 직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빌 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세상 사람들은 행운을 원합니다. 행운은 사람의 능력이나 실력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복을 기원하는 것은 대상과는 무관합니다. 

우화에 나타난 이미지를 보면, 개미는 부지런히 일 잘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근면의 상징이지만 거미는 노력하지 않고 남의 생명까지 노리는 탈취자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개미’의 시대라기보다는 ‘거미’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인터넷이라고 하는 세계로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이 인터넷의 접속 이니셜인 www(World Wide Web)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총과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축복을 받아 우리게 됩니다. 

  
결 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행한 일을 보면 미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너무나도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11시에 온 지각생 인생처럼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연약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이 가져야 할 마음의 태도입니다. 이는 늦은 출발과 작은 노력으로 많이 거두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온 자들은 불만과 불평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더욱 주인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인은 나중에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임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늦게 믿는 자에게도 더 크게 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11시에 온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입니다. 저들은 감사와 기쁨과 감격에 젖어 충성으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늦었지만 더 많은 충성으로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 천국의 삶입니다. 바른 태도는 시간과 물질을 더 큰 소득으로 안겨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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