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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에서부터 (행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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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부터 (행 1:4~8)


긴 장마와 무더위 7월을 보내고 8월을 맞이했습니다. 아직도 한 더위는 남았지만, 팔월은 먼발치에서 살포시 가을 맛을 볼 수 있는 신비로운 달입니다. 

이번 주간 고등부수련회와 초등부여름성경학교가 있습니다. 또 내일 아침은 중국단기선교팀이, 모레 아침에는 요르단단기선교팀이 각각 떠납니다. 그리고 다음주간에 있을 하계국내단기선교봉사와 장년부수련회를 끝으로 금년 여름사역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지난주간, 중등부와 청년부가 수련회와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교사들의 수고가 아름다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중등부 자녀들이 더 있다가 갔으면···). 청년들의 수고도 참 많았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교사들과 교우들께, 청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금년 봄에 오정인 장로님께서 1억이 넘는 돈을 들여서 ‘제천수련원’을 완벽하게 보수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다음 세대를 품는 어머니 마음 가지신 장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믿는다는 우리기독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요즘, 불교계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자동차 검문사건으로, 크게 마음이 상한 모양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경찰이 조계사에서 농성 중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수배자들을 검거하기 위해서, 차량검문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관계자가 검문하는 경찰관에게,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차량이라고 밝혔지만, 그렇다면 더 철저하게 검색해얀다면서 트렁크까지 열어서 검문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의견들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불교계에서는, 노골적인 불교탄압이라면서 시국법회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사견입니다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사회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아닌가? 종교계까지도 말입니다. 초임경찰관이 총무원장님의 차량을 심하게 검문했다고 해서, 그래도 우리나라불교계의 수장이신데, 道를 닦는 분이신데(불교사전까지 편찬한 학승, 경전주석의 대가, 불교개혁론자), ‘허허 웃으면서’ 차에서 내려서 어깨라도 두들겨 주면서 “자네들 참 수고가 많네 그려, 검색해야한다면 해 봐, 트렁크 열어줘”하셨더라면, “역시 조계종 총무원장님 스케일은 다르시구나.” 더 큰 어른대접 받으시지 않았겠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버릇이 없네, 종교탄압이네 하는 식의 반응은 대승불교답지 못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요즘도, 하루가 멀게 무슬림들의 자살폭탄테러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은, 宗敎原理主義者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종교의 바른 정신과 바른 신앙을 상실한 데서 오는 그릇된 종교신념에서 오는 현상들이지요(眞理보다는 자기들의 종교원리만 주장하는 자들 정말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 머무시면서 공생애 3년 동안 늘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더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使徒들과 같이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吩咐하신 말씀이 있으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 요 14,26 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행 1, 4-5).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證人이 되리라(미래명령형)”(행 1, 8).

물론 예수님은 마태복음 28, 19-20말씀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는 동일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民族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吩咐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 8말씀이나/ 마태복음 28, 19말씀은 둘 다 예수님께서 命하신 선교명령입니다. 두 말씀 모두 선교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두 본문을 읽을 때/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늘 쉽게 /看過하는 것/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8, 19절 선교명령을, 우리는 언제나 “너희는 가라. 모든 민족으로 가라” 모든 민족으로 가라. 모든 나라로 가라로만 읽습니다. 그것이 선교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선교는, 지리적인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장벽을 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래서 선교하면, 가는 것이 중요하고 /모든 나라/백성/방언들/ 구분하지 않고/ 우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유념해서 보면, 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어디로 가라시는 지? 왜, 가라시는 지?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겁니다. 어디로? 왜? 가라시는 겁니까? 예수님의 弟子 삼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하라는 겁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吩咐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함으로/입니다. 가르침을 받고, 지키는 제자를 삼기 위해서, 가서,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나라로 가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모든 민족에게로 가야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세례를 주어야 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시면서, 가르쳐 주셨던 모든 것, 吩咐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선교는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는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 8말씀을 유념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되어 내 증인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어디에서 그렇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까?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나아가서, 내 證人이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 8말씀을 습관적으로 늘 이렇게만 읽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곧 全世界로 나아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고 읽습니다. 그렇게 읽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읽으면 대단히 중요한 것, 한 가지를 看過해버리는 큰 愚를 범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 가지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가라! 모든 민족에게로」 명하신 주님께서, 왜?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그 答을, 마태복음 28, 20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온 도시와 온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복음을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약한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며 보여주신 /예수님의 복음사건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하셨습니다”(마 9, 35-38; 마 28, 20).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성령이 임하시면 제일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고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이 무슨 도시입니까? 예루살렘이 어떤 도시였기에 그렇습니까? 12 사도들이 성령이 임하자, 예수님 말씀대로 제일 먼저 어디로 갔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맛디아포함)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복음을 전파합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에 모여온 각 나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3년 동안 가르치시던 그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파하던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유대인들이 배척했던 그 예수님입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던 바로 그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전파하고, 그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누구에게 그리했습니까?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대종교지도자들 元老인 長老들, 書記官,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 산헤드린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들이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님,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예루살렘 유대교종교지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12사도들이 성령 받고, 권능을 받아서,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던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던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던 자들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이름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천지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온 땅의 主이신 예수님을/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배척하였고/ 죽이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라고 명하셨던 「예루살렘의 정체성」입니다. 그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거부하던 본부도시입니다. 바로 그 예루살렘에서부터 먼저 복음의 사건이 일어나야, 온 세상으로 복음이 퍼져가는 大 役事가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命하셨던 意味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창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실 때,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셨던 고을들이 悔改하지 아니하므로, 책망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이방인의 도시)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죄악의 都城 소돔성이 오늘까지 (망하지 않고)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 20-24).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도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고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 23, 37-39).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유대종교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때가 A. D. 70년입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온 세계를 流浪하는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령이 임하시면 사도들에게 제일 먼저 가야 한다고 명령하셨던, 「바로 그 예루살렘의 정체성󰡕입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전히,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종교의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그러나 예루살렘 거민 중, 많은 사람들이 悔改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이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悔改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니라”(행 2, 37-39).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면서,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했습니다. 이 날에 믿고 세례를 받은 자의 數가 三千이나 더하더라. 할렐루야!

회개한 그들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서로 교제했습니다/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또 믿는 자들이 다 함께 있으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純全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는데,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더라” 합니다. 아멘.

부정적이던 예루살렘의 정체성이,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그 때부터, 예루살렘 도시는, 서로 다른, 相反되는 두 가지 정체성이 共存하는 도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拒逆하는 도성이기도 했지만/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세계선교의 동력(動力)이 꿈틀거리는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유대교의 심장부인 산헤드린공회에까지 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공회원들은 사도들이 예수의 道를 전하는 것이 싫어서, 사도들을 잡아서 獄에 가두고 逼迫했지만/ 그런 중에도 믿는 자의 수가 점점 많아져서, 男子만 약 오천이나 되었다 합니다(행 4, 1-4). 사도들이 그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위하여, 凌辱 받는 일에 合當한 者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행 5, 41).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명하셨던 오늘의 그 예루살렘은 어디일까요? 부정적인 예루살렘이 변하여 「福音의 基地,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안에서도 다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먼저 복음으로 변화되어야, 세계복음화의 불길이 불타오르게 되는 것을 기대하셨던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교회도,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거듭나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나아갔던 예루살렘교회처럼 이 시대의 「복음의 基地, 예루살렘」으로 귀히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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