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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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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고전 15:12~19)
   
 
지난 주일에 우리는 고린도전서 15:1-11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오는 4가지 확실한 증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난주일 본문에 이어서 오늘의 이 본문을 통해서 거꾸로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게 될 4가지 현상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사도바울이 간혹 가다가 이런 역설법이나 반어법을 사용하면서 기독교 복음을 강하게 이렇게 변증을 합니다. 오늘의 이 내용은 반어법을 사용해서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더라면 이러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겠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이러하다 하는 이런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맥스루카도라는 미국의 설교가이자 저술가이며 목회자인 그의 책 ‘six ours oneday’라고 하는 책에서 자기 친구 선교사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은 적이 있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강 근처에 살고 있는 어느 원주민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동네 근처에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에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방문하였더니 하루에도 몇 사람씩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작은 강이 하나 있었는데 반드시 그 강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그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들이 저 강을 건너가면 병원이 있는데 당신들의 병이 아주 깊은 병이 아니라 쉽게 치료할 수 있으니 모두 저 강을 건너가 치료를 받읍시다. 이렇게 이야기 하였더니 주민들이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저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원주민들 하는 말이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저 강물 속에는 사악한 영이 있어서 강물 속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몇 백 년 동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강물을 만질 수도 없고 강물을 건너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교사님을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도 그 강을 건너왔는데 강 속에 사악한 영이 있다니, 그래서 원주민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저 강물은 그냥 흐르는 물일뿐입니다. 아무런 해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믿지 않아서 이 선교사님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강물 속에 들어갔습니다. 물을 만지고 옷에다 뿌려도 멀쩡하니까 사람들한테 이야기 합니다. 아무런 위험이 없으니까 그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저 강 건너 가서 치료를 받읍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다시 이야기 합니다. 아니예요.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하도 못 믿으니까 이 선교사님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합니다.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 사람들에게 가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도 주민들은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할 수 없어서 선교사님이 강을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손을 들어 내가 이렇게 멀쩡하지 않느냐? 당신들이 믿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 거짓말이고 사악한 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다시 수영을 해서 마을로 건너왔습니다. 그때서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그 물속에 사악한 영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강을 건너가 치료를 받게 되어 전염병으로부터 놓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맥스루카도 목사님은 뒷부분에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살면서도 언제 내게 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람들이 그 죽음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 받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셨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절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공포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분이 있나요? 신앙인이건 신앙인이 아니건 간에 모두 다 맞이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미래의 세계에 대한 불확신 그러나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기독교인이 다른 건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의 대한 신앙으로 우리는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기독교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벌벌 떨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 가운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고 두려움이 있고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한다면 이 자리에 뭐 하러 와서 예배를 드리나요?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사후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에게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을 예수 그리스도가 주셨기 때문에 그 감격을 가지고 그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러 우리가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만약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비극이 일어나겠는가? 그 비극을 몇 가지 반어법으로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나 우리의 믿음이 모두 다 헛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고린도전서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이 자기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복음의 내용 전한 것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미리 알려 주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그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전한 것은 무엇인가요? 3절 중반 절에 나옵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사도 바울이 받아서 전달한 복음의 내용에는 세 가지가 분명히 담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고난 받아야 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채찍 맞으셨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고 남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셨고 모멸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이기 때문에 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해야 될 것을 예수님이 대신 고난을 당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을 예수님이 대신 걸머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는 그런 고난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무덤 속에 들어가 사흘 동안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셨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이자 제일 중요한 세 번째 내용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죽으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 세 가지는 복음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다 전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쪽만 전달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복음을 가리켜 Good news 라고 합니다. 복음! 좋은 소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좋은 소식, 복음은 이 세 가지가 다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남들에게 복음을 증언하는데 자, 예수님이 고난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여기까지만 전달한다고 한다면 이것이 왜 Good news, 좋은 소식이 될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죽었는데 남들에게 전달하면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은 사람을 믿는 것이 종교입니까? 죽어서 썩어서 냄새나 한 줌의 재가 되고 흙이 된 사람을 믿는 것이 살아있는 종교일 수 있냐고요? 그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좋은 소식이라고 하는 것은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부활을 약속한 내용,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아나셔서 예수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복음을 증언할 때 고난 이야기 하는 것 중요합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용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전해야 될 내용,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살아계십니다. 내 마음 속에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그 복음이 온전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시카고에서 활동했던 디엘 무디 선생님, 19세기에 미국과 영국 유럽에 많은 신앙적인 영향을 끼친 이 무디 선생이 어느날 신학생이 모인 영성집회에 강사로 섭외 되셨습니다. 설교법과 많은 말씀을 증언하고 난 다음 이 설교를 들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그 집회에서 일반 대중을 앉혀 놓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젊은 신학생이 올라와서 설교를 하는데 아주 잘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이야기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이야기를 아주 잘 증언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치면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 하면, 예수님의 고난에 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해서 들었는데 예수님의 다시 사심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내일 다시 제가 설교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설교를 마쳤습니다. 예배가 끝났습니다. 무디 선생님이 그 젊은 신학생을 불렀습니다. 자네 오늘 설교를 잘 했는데 오늘 자네 설교는 반쪽만 한 것일세, 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디 선생님 말씀이, 

“자네가 설교할 때 들었던 회중이 내일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네. 그들 가운데 누구는 죽을 수도 있고 그들 가운데 누구는 멀리 출타할 수 도 있고, 그들 가운데 누구는 이 자리에 다시 안 올수도 있어, 그리고 자네가 내일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할 것이라는 보장도 존재하지 않네, 자네가 올라와서 설교할 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나심과 부활도 그 자리에서 증언 했어야 했네.” 

우리가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다시 사심을 전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전달하는 복음은 다 헛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도 헛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달할 때,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살아납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갈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부활하지 예수 그리스도 죽어서 썩어서 냄새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무슨 생명을 보장을 합니다. 예수가 죽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을까요?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도 헛것입니다. 부활하지 않은 예수님이 증언한 모든 말씀도 다 거짓말이고 헛것이지요? 예수님의 복음의 내용이 살아있고 진실인 이유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복음은 죽은 복음이 아닙니다. 믿고 있는 예수님도 죽어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은 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 없으니까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담배피고 술 먹고 거짓말하고 성적으로 타락했고 참으로 추잡하게 살아왔던 지난 인생, 그런데 죽음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술 끊고 담배 끊고 추잡하고 더러운 것 다 끊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심령 속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생명이 들어가게 되면 꽃이 피고 생명이 있으면 열매 맺고 잎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잎이 없고 열매가 없고 변화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생명이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이 예수가 살아 계신가요?


두 번째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거짓말쟁이가 되고 예수님도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이야기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 성전이 40년 걸려 지어졌는데 어떻게 허물면 사흘 만에 지을 수 있나요? 예수님은 그 성전을 자기 몸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 너희들이 내 몸을 죽여서 내가 땅 속에 묻히지만 사흘이 되면 내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 뜻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인자도 사흘 밤낮을 땅 속에 있게 되리라. 요나가 큰 물고기 속에 사흘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은혜 가운데 그가 살아났지요? 예수님 말씀 하십니다. 인자도 땅 속에 사흘 밤 낮 있게 되리라. 사흘이 지나 예수님,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 본격적으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인자가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여인들이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차례 성경에 보면, 예수님 자신이 살아난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거짓말로 내가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아무리 얘기 해 봤자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살아나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살아났다고 이야기 하면, 예수님도 거짓말쟁이요. 우리도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거짓말쟁이인가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증언하는데 살아나지도 않은 예수님을 증언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는가요?

예수님의 살아계심은 글로만 쓰여 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완벽한 증거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여러분 자신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써내려가는 여러분의 복음서, 예수 믿고 변화된 삶을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마다, 예수가 살아 계시구나! 성경에만 예수가 살아계신 것이 아니라 그 예수가 너희 마음속에 당신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예수님이 진정한 의미로 살아 계신 것입니다. 

 
세 번째, 만약에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예수님보다 앞서서 잠자고 있던 사람들은 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는 그날, 홀연히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잠잔 사람들, 우리 조상들 아닙니까? 우리 부모님, 때로는 우리의 남편 아내,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먼저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어디에 있나요? 매장을 해서 한 줌의 흙이 된 사람도 있고, 화장을 해서 한 줌의 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디 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매장이나 화장이나 다 똑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으면 땅속에 묻히거나 한 줌의 재가 되어 사후의 세계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분명히 믿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주님 이후에 모든 잠자는 자들이 다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자마자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꼭꼭 걸어 잠궜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나타나셨나요? 유령만이 밀폐된 공간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 내 손과 내 옆구리를 만져봐라. 제자들이 직접 손을 만지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정말 살아계신 예수님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어떻게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벽을 뚫고 나타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비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되었어도, 흙이 되었어도, 잠자고 있어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의 몸이 신비한 형체로 주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는, 우리의 예수님처럼 신비스런 형체로 변할 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왜 불쌍한 사람이 될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죽었다고 한다면 이 죽은 예수를 살았다고, 믿고 떠들고 전도하는 우리들이야말로 미친 사람 아닌가요? 정신병자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지요? 여러분이 주일날 갈 곳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나오셨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정성스럽게 예물을 준비하고 주중에 열심히 전도도 합니다. 

여러분의 열심, 헌신, 봉사 전도 왜 하나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우리 그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지 않습니다. 그 예수님에게 내 시간과 재물을 써달라고 드리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예수그리스도가 죽었는데, 땅 속에 묻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를 살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정신 나간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일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여러분에게 생명이 존재합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만 하면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이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죽음의 강을 건너지 못해 질병가운데 죽어가는 원주민들처럼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기만 하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의 강을 통과하지 못하는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9.28 새생명축제 때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부활의 복음을 증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심령 속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하여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9.28날 여러분의 삶을 통해, 전도를 통해, 입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강가로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강물을 마시고 여러분의 심령이 변화되고 육신이 변화 되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변화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이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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