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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비한 신앙인(3) : 재덕이 겸전한 자(출 18: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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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비한 신앙인(3) : 재덕이 겸전한 자(출 18:21~26) 
 
 
새 성경과 새 찬송가

우리 교회는 작년 부활절 때부터 본 교회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결정을 따라 성경은 개역개정판으로, 찬송은 21세기 새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도 찬송도 생소해서 혼란도 없지 않았지만 1년 이상 사용하면서 점점 익숙해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했겠지만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거나 다른 교회 사람들과 예배드릴 때 아직 개역개정판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도 많아서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찬송가 쪽은 훨씬 더 심한데 다른 교회 다니는 분들과 예배드릴 때는 처음부터 어느 찬송가를 쓰느냐고 묻지 않고 “찬송가 ◯◯장 부르시겠습니다” 하고 부르다가는 서로 다른 찬송을 부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솔직히 새 찬송가에 새로 들어간 찬송도 아직은 생소해서 잘 부르지도 않습니다. 

이런 불편 때문에 심지어 “찬송가를 옛날 것으로 다시 쓰자”거나, “다른 교회는 다 바꾸어도 우리 교회는 안 바꾼다”는 분들도 있지만 이미 총회가 그렇게 정했으니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새 찬송가로 바꾸는 교회가 많아지니 몇 년 사이에 이 불편함은 다 해결될 것입니다. 제가 만난 타 교회나 타 교단 목사님들도 곧 개역개정판 성경과 새 찬송가로 바꾼다고 하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하나 있어서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을 사용하다보니 예전에 우리가 쓰던 개역성경에 비해 말도 쉽고, 틀린 부분도 고쳐주어서 참 좋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어떤 경우는 예전에 쓰던 개역성경이 더 번역이 좋았지 않은가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분명히 새로 번역한 개역개정판이 번역이 더 맞긴 맞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오래 쓰던 성경이라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옛날 성경이 더 친근하고 맞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4장 24절이 옛날 쓰던 개역성경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는데 지금 쓰는 개역개정판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분명 원어를 보면 지금 성경에 나온 대로 “영과 진리로”가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만 그래도 옛날에 쓰던 대로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말이 더 친근하고 와 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을 잘 뽑아야

오늘 본문에 보면 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끌던 모세에게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 충고를 해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혼자 이스라엘 백성 60만(장정만 60만이니 실제로는 150만 이상입니다)을 이끌어가느라 너무 힘든데 게다가 하루 종일 백성들 재판 다 해주느라 사람들 사정 얘기 듣다가 끝나니 그러지 말고 너를 도와줄 사람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장인 참 잘 만난 사람입니다. 남자는 부인뿐 아니라 장인도 잘 만나야 해요. 모세라는 인물이 있기까지 오히려 친 아버지보다 이 장인 이드로(르우엘이라고도 부릅니다)가 더 영향을 끼쳤다 할 정도로 모세가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 처갓집에서 살면서 장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끈 이스라엘 백성들이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좀 말을 안 듣는 백성들입니까? 툭하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이 완악한 백성들을 이끌어가느라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너무 지쳐 탈진할 때 즈음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 너무나 귀한 충고를 해준 것입니다. 혼자 일하지 말고 좋은 사람들을 뽑아 일을 나누어 주라고 말입니다. 그래야 자네도 살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산다고 말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원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탁월한 지도자라도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려고 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자신이 지쳐 쓰러집니다. 또한 혼자 하다 보니 아무래도 구석구석까지 손이 미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좋은 지도자를 세우지 못해서 사람을 못 키우기 때문에 발전이 없습니다. 특히 나중에 그 지도자가 은퇴하거나 일을 내려놔야 할 때 가장 큰 문제가 생기는 법이지요. 그래서 교회든 어디든 절대 혼자 하려고 들지 말고 반드시 좋은 리더들을 세워서 일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드로도 모세에게 좋은 사람을 뽑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즉 군대의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처럼 능력에 따라 천 명, 백 명, 오십 명, 열 명을 책임지는 지도자로 삼고 모세가 할 일을 잘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원리입니까? 정말 지도자인 나도 살고 백성들도 다 사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도 절대 혼자 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나도 지치고 모든 일이 안 됩니다. 사람을 뽑는 과정이 쉽지 않고,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도 어렵고, 일을 나누는 것이 더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져 차라리 내가 다 하고 말지 하는 유혹이 들더라도 절대 그러지 말고 반드시 사람을 세우고 키우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조직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일전에 수요예배 설교를 통해 저처럼 꼼꼼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일을 나누기가 참 어렵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저 같은 성격 가진 분들은 일을 누가 하는 것이 가장 편할까요? 자기가 직접 하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괜히 남 시켜놓고 그 사람 잘할까 늘 걱정하느니 차라리 내가 다 하고 말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성격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일을 하다 보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말씀처럼 혼자는 안 된다, 혼자 하면 나도 지치고 우리 부서도 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정말 어렵기는 했지만 일을 나누어 시키는 훈련을 했고, 지금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일을 잘 나누어 시킵니다. 자기 성격과 관계없이 이렇게 해야 나도 살고 우리 부서가 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요. 일을 나누어 맡기려고 사람을 뽑았는데 전혀 그 일을 해낼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을 뽑았다가는 다 망하게요? 막말로 이 사람이 펑크, 저 사람이 펑크 내면 다 망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람을 잘 뽑아야 합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특히 정치하는 분들이 사람을 잘못 뽑아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봅니다. 하지만 나라에서만 사람을 잘 뽑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할 만한 사람을 알아보고 적절하게 뽑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지도자의 첫째가야 할 덕목입니다. 아니, 오히려 최고지도자는 자기 자신이 능력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보다 그 일을 잘해낼 사람을 알아보고 뽑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최고지도자가 너무 능력이 있고 아는 게 많아서 모든 분야에 감 나와라 대추 나와라 하고 참견하면 오히려 일이 어려워집니다. 최고 지도자는 그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그 일을 가장 잘 할 사람을 알아보고 잘 뽑기만 하면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재덕이 겸전한 자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사람이 이런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지, 누구를 뽑으면 좋다고 말씀하는지 알아봅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장인 이드로가 사위 모세에게 이러 이러한 사람을 뽑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삼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 21절과 22절 앞부분을 함께 읽습니다.

21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22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생략)

여기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의 조건이 몇 가지 나옵니다.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우라”고 했습니다. 물론 모세를 도와 이 중요한 일을 감당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 능력이라는 것이 사무능력이나 일 잘 하는 능력이 아닌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둘째, 진실하며, 셋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신앙’이나 ‘양심’이라고 부르지 ‘능력’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똑같은 본문을 두 개의 성경이 조금 다르게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세우라고 되어 있고, 예전에 보던 개역성경에는 “재덕이 겸전한 자”를 세우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재덕이 겸전했다”는 말은 좀 어려운 한자말이지만 그 뜻을 풀어보면 재(才), 즉 재능(才能)과 덕(德), 즉 덕목을 겸전(兼全), 함께 갖춘 사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개역개정판과 개역성경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문자적인 번역으로만 치면 개역개정판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한 것이 히브리말로 원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을 번역한 분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히브리어를 몰라서 이렇게 “재덕이 겸전한 자”라고 다르게 번역했을까요? 아니요. 그분들도 다 히브리어 알고 훌륭한 번역자들입니다. 

그러면 굳이 같은 본문을 재덕이 겸전한 자라고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게다가 표준새번역성경도 “능력과 덕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건 또 왜일까요?

제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히브리말에는 이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안쉐 하일.” 이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능력의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개역개정판이 맞습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 뒤에 나온 말들, 즉 아까 살펴 본 세 가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라는 내용이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과는 좀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 아니라 바로 ‘재판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즉 천부장은 천 명을 맡아 모세 대신 백성을 재판하는 사람이고, 백부장은 백 명을, 오십부장, 십부장은 각각 오십 명과 열 명을 맡아 재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다른 능력이 아니라 재판하는 능력, 아니 재판하는 사람이 꼭 지녀야 할 덕목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사람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 두려워하고, 진실하고,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라야 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개역성경이나 새번역성경도 그냥 “능력 있는 자”라고 하지 않고 “재능과 덕을 겸하여 갖춘 자”라고 번역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번역이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새로 번역한 개역개정판보다 옛날 개역성경이 더 심오하고 깊은 뜻이라 여겨져 오늘 설교제목도 일부러 옛 성경을 따서 “재덕을 겸전한 자”라고 붙였습니다.


재능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너무나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부터 뜻을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목회자들만 생각하기 쉬운데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믿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 믿는 회사원, 하나님 믿는 정치가, 하나님 믿는 사업가, 공무원”도 다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재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나님 믿는 재판관, 법조인”을 예로 들어봅시다. 혹시 여러분 중에 법조계와 관련된 분이 있다면 언짢아하지 말고 잘 들어보세요. 제가 아는 분들 중에 법조인들이 몇 분 있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분들 말입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서부지청에 있는 크리스천 검사들에게 성경공부도 인도한 적이 있어서 법조인들을 대해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소위 “능력만 있는” 법조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 즉 법조인으로 볼 때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능력입니다. 

일단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어느 대학 법대를 나왔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위 일류대학 법대를 나와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선후배들도 끌어주고 밀어주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또 사시, 즉 사법고시 몇 회냐도 굉장히 중요하고, 또 경력, 어느 법원에서 어느 직책으로 있었는지도 참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능력’만 가지고 말하자면 일류 대학 법대 나와서, 사법고시 일찍 패스하고, 남들 알아주는 곳에서 좋은 경력 쌓은 사람은 그야말로 최고의 능력을 갖춘 법조인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오늘 성경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백성들을 재판할 사람을 뽑을 때 이 기준, 이 능력 보고 뽑으라고 했습니까? 아니니까 문제 아닙니까? 성경은 어느 법대 나왔냐 가지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뽑지 않았습니다. 사시 패스나 경력이나 화려한 이력서 보고 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세 가지 조건을 보고 뽑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법관의 ‘능력’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해 봅시다. 개역성경이 번역한 대로 ‘재덕이 겸전한 자’라야 하는데 만약 재, 즉 재능만 있고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만 있고 ‘덕’이 없으면 어떤 법조인이 되느냐? 오늘 본문에 나온 세 가지 조건을 거꾸로 읽으면 됩니다.

재능만 있고 능력만 있고 덕이 없는 법조인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자기 능력과 지식만 믿고 자기 마음대로 재판합니다. 자연 법의 힘을 이용한 횡포가 일어납니다. 

둘째, 진실하지 못하게 됩니다. 진실보다 자기 출세나 앞날을 더 생각해서 윗사람 눈치 보고,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눈치 보느라 바른 판결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셋째, 불의한 이익을 좋아하게 됩니다. 당연하지요. 하나님이나 백성이 아닌 힘 있는 자, 가진 자 눈치 보고 자기 앞가림하느라 진실하지 못하게 되면 불의한 금전적 이익이나 자기 앞날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능력 있고 똑똑하고 조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이 덕, 신앙적인 덕을 갖춘 사람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뽑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어디 법조인들만의 문제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저 같은 목회자들뿐 아니라, 모든 “예수 믿는 회사원, 예수 믿는 정치인, 예수 믿는 사업가, 예수 믿는 공무원, 예수 믿는 주부”들에게 다 주신 말씀입니다. 재능과 능력만 있으면 절대 하나님이 크게 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덕, 즉 신앙적인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재능과 능력은 있으나 덕은 없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늘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회사원이 있으면 진급 잘 되게 하셔서 중역과 상사들이 많이 나오게 해주세요. 우리 성도들 가운데 정치인이나 공무원 있으면 꼭 잘 돼서 높은 직급에 앉게 해주세요. 성도들 중에 사업가 있으면 사업 번창해서 큰 사업가 많이 나오게 해주세요. 성도들 모두 부자 되고 성공도 하고 출세도 하기 바랍니다.” 하고 말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 가운데 이 나라의 큰 지도자 많이 나오게 해주세요. 이 가운데 링컨 같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도 나오게 해주시고, 빌 게이츠 같은 위대한 사업가도 나오게 해주시고, 노벨상 타는 석학도 나오게 해주시고, 판사, 검사, 의사, 좋은 목회자도 많이 나오게 해주세요. 정말 능력 있고 칭찬 받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나오기 바랍니다”하고 말입니다. 

이 기도 마음에 드세요? 그런데 그 뒤에 꼭 안 빠지고 붙는 기도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 그런데 대통령, 국회의원, 사업가, 학자, 판검사, 의사되기 전에 먼저 사람 되게 해주세요.” 먼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 생각과 가치관이 제대로 박힌 사람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왜냐? 세상에 훌륭한 위인은 많고 성공하고 출세한 능력 있는 사람은 참 많은데 덕을 함께 갖춘 사람, 진실한 사람, 정말 사람다운 사람은 적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능력만 있고 이 덕과 인격적인 자격을 못 갖춘 ‘헛 똑똑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나라와 사회를 어지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 되지 못하고 불의한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헛 똑똑이’가 아니라 재덕을 겸비해서 탁월한 재능, 능력과 더불어 참된 신앙과 인격과 덕을 갖춘 그런 사람이 되어야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의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바로 이런 재덕을 겸전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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