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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적은자여!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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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자여! (마 14:22~33)


사람이 사는데 제일 피곤한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잔치를 대개 집에서 했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심방을 가도 집에서 따뜻한 밥을 해서 대접하는 것이 예의지 어찌 식당에서 대접할 수 있느냐 했습니다. 부흥회 강사를 모셔도 집에서 모셔야지 어찌 호텔에서 모십니까? 그러다가 사람들이 피곤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잔치도 나가서 해보니 편안합니다. 대접도 나가서 해보니 편안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 잔치를 하거나 손님 대접하는 일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최근에 저는 6시간이나 회의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회의가 끝나지 않아 중간에 정회를 하고 밥을 먹고 난 다음에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회의도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농담도 하고 웃는 일도 있으면 할 만 합니다. 그러나 고성이 오고가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회의는 정말 피곤합니다. 완전히 몸이 파 김치가 되는 것입니다. 들에 가서 땅을 판 것보다 몇 배가 피곤합니다. 저는 그 회의 후 12시간을 잤습니다. 도저히 아침이 되었는데 일어날 수가 없어요.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섬기는 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예수님과 제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질녁에 예수님은 잔치를 벌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5000명이 넘는 것입니다. 장정들 수자만 그러했으니 어린이와 여자들을 합치면 그 배가 될 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녁때가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걱정하니 너희가 먹을 것을 좀 주라 고 합니다. 그 말에 제자들이 펄쩍뜁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따져도 엄청 나고 그래서 돈도 없으려니와 돈이 있다 해도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똑똑한 제자들이 제안을 합니다. 이들이 각자 돌아가서 먹을 것을 구해가지고 먹고 오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50명 100명씩 앉게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 하시고 나누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님 하시는 일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저는 이 순종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해보세 요. 보리떡 다섯 개가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그것을 가지고 나누어 주라 할 때 순종이 되겠습니까? 

똑똑한 당신은 절대로 순종을 못합니다. 지식이 많은 당신도 절대로 순종을 못합니다. 한 두 사람이 먹어도 모자라는 음식을 가지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뉘 코에 부치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합리적이고 논리가 바른 당신은 순종을 못합니다. 이제 보니 우리가 미친 사람을 따라 다녔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뛰어 넘어 제자들이 순종 했습니다. 주님 앞에 순종하는사람은 누구입니까? 자기를 빼놓는 사람입니다. 자기지식을 빼놓고 자기 지혜도 빼놓고 자기 상식도 빼놓고 주님 앞에 바보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바보가 되는 것이지요. 

제자들이 그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하여 말 한마디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주일 날 주방봉사하거나 무슨 노인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 상을 보고 음식을 나르고 사람들을 안내해서 앉히고 하는 우리 권사님들 여 전도 회원들, 그리고 남선교회 회원들을 볼 때 그렇게 감사 할 수가 없습니다. 말 한 마디 없이 봉사 합니다. 누가 말이 많으냐? 일도 하지 않고 와서 대접 받는 사람들이 말이 많아요. 불평도 많고요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50명 100명씩 앉으라는 것도 문제요. 지금처럼 대형 스피커가 있습니까? 있어도 통제하기가 어려울터인데 일일이 쫒아 다니면서 앉으세요 앉아요 하려니 얼마나 힘들어요. 여기는 안주냐는 사람. 나는 안 받았다는 사람. 더 달라는 사람. 어린아이들은 울고 그 사람들의 비유를 다 맞추어가면서 오천명을 먹였어요. 먹고 나면 끝납니까? 뒤치다꺼리해야지요. 부스러기 모아야지요. 제자들이 지쳤습니다.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지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즉시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건너편에 가서 쉬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배려입니다. 

무리가 다 떠난 후에 예수님도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주님에게는 쉬는 것입니다. 정말지치고 힘들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쉬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육신을 입었기에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습니다. 아마 산위에 오르셨으니 노를 저어가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대견합니다. 묵묵히 따라주는 제자들이 고맙기도 하겠지요. 제자들은 부지런히 노를 저어 강 건너편으로 갑니다. 그들도 얼마나 쉬고 싶었겠습니까? 가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야기하며 신나했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선생님 최고야. 끝내주는 분이야. 그러나 피곤도 잊고 들떠 있는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풍랑이 그들을 찾아 온 것입니다. 

주님이 가라하신 바다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인생길이 평안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봉사도 잘 했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환란이 다가옵니다. 돌잔치 잘하고 났는데 어린아이가 병이 나서 심하게 앓습니다. 대학시험 잘 치르고 합격통지서 받고 기분이 좋아 물놀이 가더니 빠져 죽었습니다. 뭐 이런 일등 부지기수로 몰아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곤욕을 치릅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들 연약한 존재들로만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과 함께 하시고 그리고 이곳 교회에 우리와 함께하시고 나아가서 이 나라와 이민족가운데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씨앗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가을에 약속의 동산을 찾으신 어느 목사님이 제게 꽃씨를 주고 갔습니다. 봄이 오면 심으라는 것입니다. 꽃이 예쁘다는 것입니다. 제가 꽃씨를 받았습니다. 꽃씨를 봄이 오면 심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약속의 동산에는 그 꽃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제가 깜박 잊고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꽃씨를 준 목사님이 왜 꽃을 볼 수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 목사님 댁에는 꽃이 만개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동산에는 그 꽃이 없습니다. 심지 않은데서 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와서 말씀을 받습니다. 말씀은 씨앗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심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 그것이 씨를 땅에 심는 것입니다. 심으면 싹이 납니다. 그리고 자라서 꽃이 핍니다. 말씀대로 실천하면 기적의 싹이 납니다. 은혜의 싹이 납니다. 축복의 싹이 납니다. 그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보세요 주님이 오셔서 내니 두려워 하지마라고 하십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배를 타고 오실 여유가 없기에 물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놀랍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유령이라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오늘도 이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이 소리를 듣고 주님을 믿으면 모든 두려움이 다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두려워 하던 베드로가 주님임을 확인하고 두려움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주여 주님이시거든 나로 하여금 물위로 오라하소서 하지요. 여러분 상황을 보세요. 조금 전의 베드로와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도 나는 여러분이 기적을 보고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만으로는 그 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면 기적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신 주요 우리와 오늘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연법칙에 따라 삽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잠자리 들어가서 쉬고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요. 우리 일반적인 생활은 자연법칙을 따라서 살아야 건강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병드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자연법칙을 어기는데 있습니다. 

잘 때 안자고 안 먹을 것을 먹어대고 쉴 때 안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병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연법칙만 따라서 살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 한 것이 기적입니다. 제자들이 만난 이런 상황입니다. 풍랑이 일어 날줄 누가 알았습니까? 기적이 필요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위로 오시는 것입니다. 

2005년 12월 뉴욕의 한 주택가 아파트에서 불이 났습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폭스 씨는 이제 겨우 1개월 된 아들을 이불에 싸서 창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때마침 그곳에는 아마추어 야구팀의 볼을 받는 포수가 불이 난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기가 떨어지니까 볼 받듯이 철컥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예전에 인명구조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구급차에 실어서 아기를 살려냈습니다. 아기를 던지기 직전 아기 엄마가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을 살려 주세요'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여러분의 위기의 자리에 주님이 와 계십니다. 주님을 믿고 주여 도와 주옵소서하고 기도할 때 기적의 문이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겉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물위를 걷습니다. 기적입니다. 그러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보세요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을 보고 그 법칙에 다라 물속으로 빠져 갔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기적이 보이지만 자연을 보면 자연 법칙이 일어납니다.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보고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물속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즉시 손을 내밀어 붙드시며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적은자여! 항상 이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멈추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인생 바람이 멈추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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