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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젊은 시인의 꿈 (시 1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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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시인의 꿈 (시 119:9~16)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아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젊은이들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교회들이 청년들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우리교회는 20-30대가 50%가 넘으니까 젊은이들이 많은 편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젊은이 때는 참 좋은 시대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대가 충천할 때가 청년기입니다. 그래서 젊은이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소망과 기대와 미래와 용기와 모험이 있습니다. 색깔로 말하자면 아주 짙푸른 빛깔과 같은 때입니다. 하루로 말하자면 방금 떠오르는 신선한 태양과 같은 때입니다. 맛으로 말하자면 석류와 같은 맛입니다. 석류를 한입 가득 깨물면 입안에서 탁 터지는 그때의 시원하고 상큼한 맛 그 맛이 청년의 맛입니다.    


“젊은이는 첫 단추와 같은 때”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나머지는 순조로워집니다. 그런데 첫 단추가 어긋나면 다 어긋나게 됩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가 참 중요한 때입니다. 이 청년의 때에 시작을 잘 해야 합니다. 시작을 잘못하면 평생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시작지점에서 화살을 한 치 방향만 잘못 날리면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 잘못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청년의 때에 배우자를 잘 선택하면 평생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만나면 평생을 큰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큰 시행착오를 치러야 합니다. 직업도 잘 선택하면 평생 행복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 선택하면 평생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를 첫 단추와 같은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면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습니다.  


“일 년 4계절 중 봄과 같은 때”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때입니다. 청년의 때가 마치 봄과 같은 때입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는 매사가 낙관적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용기가 있고 자신감도 있는 때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비관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누가 말하면 “다 해봤어”라고 대화를 끊어버립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비관적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젊은이 때는 매사를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또 젊은이 때는 이상적입니다. 그래서 대화 속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맑고 유연해서 그렇습니다. 어른이 되면 사랑한다는 말이 잘 안 나옵니다. 그만큼 굳어져서 그렇습니다. 청년의 때는 몸도 유연하고 정신도 부드럽습니다. 또 청년의 때는 노력하는 때입니다. 진취적이고 부단히 변화를 추구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젊은이 때는 늘 새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추구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 “너는 읽고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젊은이 때는 이성보다 감정의 통제받습니다. 그래서 젊은이 때는 감정이 풍부합니다. 대신 이성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자주 실수를 저지릅니다. 경륜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못 미더워합니다. 어쩐지 불안합니다. 그래서 자꾸 물어봅니다. 또 확인합니다. 그러면 아들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럽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일을 저지르지도 않지만 실수도 잘 안합니다. 그런데 젊은이 때는 일도 잘 저지르고 또 실수도 자주 합니다. 감성은 풍부한데 경륜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젊은이 때는 열정이 있습니다. 촛불 시위하는 것을 보십시오. 거기 나이 먹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나이 먹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 사람은 딴 목적 즉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밤새워 돌아다닙니다. 그 젊은이들에게 그 열정을 불태울 마당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그 열정을 불태우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그 열정을 하나님을 위해서 불태우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를 보면 그렇게 젊었을 때 열정을 불태운 젊은이들이 큰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33세에 이미 사명을 다 끝내고 “다 이루었다” 하고 가셨습니다. 세례요한은 30세에 주어진 임무를 다 끝내고 갔습니다. 윌리엄 부스라는 사람은 15세 때 불세례를 받았고 20대에 구세군을 창설하였습니다. 20대에 가슴에 세계를 품는 씨앗을 뿌렸던 것입니다. 빈민구제에 열을 다 하면서 “나는 하수구에 그물치고 고기 잡는다”고 선언하며 구세군을 창설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23세 때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34살 때 종교개혁의 불을 댕겼습니다. 그리고 막강한 교황권에 맞서서 싸웠습니다. 이 젊은이 때는 계절로 말하면 봄과 같은 때입니다. 이 젊은이 때는 열정과 순수함과 풍부한 감정과 이상과 희망이 약동하는 때입니다. 무슨 일이든 할 때입니다. 그 원인은 힘과 용기와 정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 그 힘의 원천을 말씀” 

사람이 젊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의 원천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 힘의 원천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참 유명한 장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양이 길고 많은 장수에 해당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율법의 정신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엄한 찬송이 매 구절마다 배어 있습니다. 빛나는 명구들이 가득찬 시입니다. 그래서 본장을 일컬어 “시문학의 백미”라고 부릅니다. 특히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갈망과 영혼의 내면적 울림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규례에 대해서 순종하려는 헌신적인 마음이 표출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다”라는 점을 전제합니다. 우리가 순결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에 표준삼고 행하는 생활”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사모해야 할 대상은 부귀나 공명이나 쾌락이 아닌 오직 말씀과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본문 9절-16절까지를 보면 말씀을 통한 영혼의 정화를 말씀합니다. 9절에서는 “청년이 무엇으로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청년시절에 요구되는 율법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년기는 무엇이든지 다 넘칩니다. 힘도 넘치고 정열도 넘치고 꿈도 넘칩니다. 의욕도 넘치고 사랑도 넘칩니다. 대신 너무 힘이 넘쳐서 절제하기가 힘든 때입니다. 자칫 정열과 감정의 노예가 되기 쉬울 때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로 정결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수준 높은 법률보다 더욱 청년시대를 방황하지 않게 에너지를 공급해 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않기 위해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습니다(11).”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즐거워하며 잊지 않겠습니다(15~16).” “나를 가르치소서(12)” 하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청년은 청년다워야 합니다. 젊은이 때는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하얀 깨끗한 옷을 순식간에 더럽힐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돌이킬 수 없고 회복하기 어려운 때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옷이 깨끗할 때는 더럽혀질까 조심하고 깨끗한 동안에는 늘 조심합니다. 그런데 깨끗한 옷에 오점이 한번 튀겨 흠이 생기면 사람들은 기왕 더럽혀졌으니 포기하고 막 돌아다니게 됩니다. 사람이 그래서 타락하는 것입니다. 청년은 마치 깨끗한 옷과 같은 때입니다. 더러워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주의 말씀을 지키는 삶 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 안에 들어가 살면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 줍니다. 그 말씀이 내 삶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내 삶의 안내자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청년의 때는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방황하지 않고 청년 때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나면 큰일을 하게 됩니다. 

무디는 소년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냉소적이었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가슴이 차가운 젊은이였습니다. 젊은이가 그런 상태로 살아가게 되면 범죄자가 되고 살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실감나게 만납니다. 그리고 세상을 냉소하던 사람이 마침내 변화를 받아 미국 역사에 길이 빛나는 전도자로 태어났습니다. 키에르 케고르은 대학 3학년 때 “나는 만나야 한다, 나의 삶을 맡기고 나의 삶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나를 지탱시켜 줄만한 대상을 만나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인은 11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 하지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영감으로 능력으로 칼과 같이 날카로움으로 생명력으로 다가오십니다. 그 말씀이 내안 들어오면 나를 움직이고 나를 변화하게 하십니다. 나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나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십니다. 그 영감의 힘이 마침내 나를 지배하고 나로 주께 나아가게 하고 그 힘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 힘으로 신앙의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 힘이 무슨 힘이 된다고 내 힘을 의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억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억지로 사는 삶처럼 힘든 것도 없습니다. 새벽기도를 억지로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전도사 때 억지로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억지로 하니까 내가 비참해졌습니다. 참 못할 일입니다. 목회자가 한두 해도 아니고 평생을 어떻게 억지로 새벽기도를 하겠습니까. 

신앙의 삶은 성령에 의해 살아가지는 삶입니다. 그 삶은 내 안에 말씀이 계셔야만 가능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을 내 안에 두었나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하고 다짐하고 고백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때로 이런 다짐이나 고백이 중요합니다. 그 다짐이 나에게 암시를 가합니다. 매일 나의 신앙고백이 나로 하여금 재 다짐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본문 16절에서 “나는 주님의 율례를 즐거워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다짐하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과 다짐이 나에게 상당한 암시를 주고 능력과 힘을 제공합니다.   

브리태니카 대백과 사전 회사에서는 사원들이 출근해서 현관에 들어서면 “나도 세일 할 수 있다, I can do"를 20회씩 복창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리슨 스웨트 마든은 “행복하다고 외치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속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타인에게까지 미치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감염시켜라, 소유 없이 즐겨라, 인생에서 노래를 멈추지 말라,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자신에게 강조하고 타인에게 강조합니다. 그 말은 모두가 행복하다고 외치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 고백이” 

시인은 본문 9절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하고 소원합니다. 이것이 젊었을 때 해야 할 고백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참신한 꿈과 용기가 없어지고 자꾸만 겉 늙어가서 염려입니다. 

주간한국이 2008년 1월 29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 “오늘 20대가 늙어간다”는 특집을 발표하였습니다. 오늘 20대 청년은 가장 청년다울 때입니다. 그런데 그 20대가 정치 경제 건강에 대해서 보수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2007년 4월 30일자 잡 코리아가 조사한 결과 오늘 20대의 직장 선호도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과 교사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37.9% 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모험이 들어가는 자영업을 선호한 사람은 4.1%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배우자 직업 선호도도 남성은 배우자로 공무원과 여교사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48%로 나타났고 여성은 전문직 종사자로 47.6%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20대들이 경제적으로 도전과 성취보다는 안정과 실용을 희망한다는 것이고 굳이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정된 삶을 희망한다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0대 남성들이 선호하는 최대 선호직업은 첫째가 예쁜 여교사이고 둘째는 보통 예쁜 여교사이고 셋째는 못생긴 여교사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 젊은이들이 안일에 빠진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안일에 빠져서 탐구도 수고도 깊은 생각도 모험도 진지한 묵상도 안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젊은이들이 역사를 모릅니다. 모르니까 생각에 깊이가 없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쓴 우리나라 어종에 관한 책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대학생들은 “자산어보(玆山魚譜)” 라고 썼지만 한 학생은 “월간 낚시”라는 엽기적인 답을 써 내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선후배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식당 벽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는데 후배 학생이 “형 저게 무슨 말이야”하고 묻자 선배는 한참 생각하더니 의기양양하게 “응, 저건 남기지 마” 라는 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젊은이 때에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꿈입니까. 위대하게 되고 돈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꿈입니까. 그것은 본문에서 시인이 가진 꿈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꿈입니다. 기독교 재단 초등학교에 재단 이사들이 학교를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담임들이 긴장하여 아이들을 교육하였습니다. 맨 앞줄에 앉은 철이에게 “너는 누가 만드셨니” 하고 물으시거든 “하나님입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뒷줄 영이는 “너를 길러준 분은 누구냐”고 물으시거든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철이는 화장실에 갔고 그 사이에 이사님들이 갑자기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둘째 줄에 앉아있는 영이에게 “누가 너를 만들었지?”라고 묻자 교육받은 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드셨어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사님이 “아니, 하나님이 아니구?”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이 아이가 참으로 정직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이는 화장실에 있어요.” 

이것이 꿈입니다. 꿈의 생명은 맑음이고 깨끗함이고 정함이고 순전함입니다. 오늘 사람들의 꿈은 꿈이 아닙니다. 거기에 온갖 욕망의 덩어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꿈에는 이 맑음과 순전함이 충천한 마음이 꿈을 꾸게 하고 또 그 꿈을 이루어줍니다. 청년들이 지니는 꿈이 소중한 것은 그 꿈이 때가 묻지 않고 순전하고 맑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꿈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에 주의 말씀을 두었나이다, 찬송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과 같이 주의 도를 즐거워하겠나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얼마나 맑고 순결하고 뜻이 있는 꿈의 기도입니까. 꿈이 있는 사람은 가슴에 이 말씀을 준비해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꿈을 잉태시키고 그 꿈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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