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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을 찾아서(2) (마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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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2) (마 5:4)  


용기 내!
참고 견뎌!
힘내!

굉장히  좋은 의도로 말을 하지마는 오히려 이런 말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폼 나는 자동차가 있고,
.멋있는 집이 있고,
.나를 즐겁게 하는 수십 인치되는 TV가 나를 웃게 하고,
.온갖 도구가 널려 있고,
.웃자, 웃어,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여라, 악셀레이타를 밟아라,
.뭘 애통하라는 말 인가?

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 에요.
애통이란, 
깊이 슬퍼하며,
잘못을 한탄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누가 애통을 좋아 하겠습니까? 

그래서요 애통에는 다 무감각하고요,
방치하고요,
냉담하고,
무관심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왜 애통하는 자가 행복 하다는 걸 까요?

바로 내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를 보세요.
사6; 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여, 입술이 부정한 자 중에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뵈었도다”

이렇게 자신의 연약함!  문제를 고백합니다.

신앙을 바르게 하려면, 주님이 없는 삶이 따분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가슴 아프게 여겨져야 합니다.

시34;18에서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다스려 보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내 힘으로 습관이나, 
.추한 기질을 제거해 보려고 그리도 애를 썼는데,  
.왜 이럴까?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왜 이 성질 머리하고는,,,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애통할 때, 애통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위로를 받는 겁니다.

나의 부족을 알고,  
그 부족을 애통하면서, 
주님을 찾으면, 
기질도 바뀌며, 
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애통은 자기연민에서 우는 그런 울음이 아닙니다.
애통은 물질의 손해 때문에 우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죄가 다 드러나서 우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애통은 자기의 죄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 삶이 하나님께 방향전환을 할 때, 이것을 진짜 회개라고 합니다.

산통이 있어야 출산이 있듯이 죄에 대한 애통이 있어야 영적으로 다시 새로워지는 겁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룰 것이요” 라고 고후7;10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돌이키시면, 
.부끄럽기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마는, 
.그 위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애통은 사랑하기에 오는 것입니다.

연료 게이지가 있습니다.
연료 게이지의 눈금은 연료통에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 하는지를 알려면, 주의 사람들에 대한 내 사랑을 보면 압니다.
다른 사람들에 나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헌신을 보여 주는 정확한 눈금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4;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하였습니다.

찬송은 ‘저 죽어 가는 자 다 구원하고’ 부르지마는 정말 그런가요?

링컨이 말하기를 “옆 사람이 채찍질을 당하는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도 슬프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내 가슴이, 
아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차가워요.
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 처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눅10;27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거칩니다.
터프 합니다.
얼마나 악착스러워요.
그런데도 행복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요,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힘들어 할 때, 누리는 겁니다.

함께 우시다가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이 있기에 애통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든지, 슬픔이나, 아픔, 고통을 절대로 겪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눈물 골짜기’ 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할 때, 
또 강 하게할 때,
고난이라는 기간을 이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을 보십시다.

그들은 ‘고난의 용광로’를 믿음으로 통과한 후에 불로 연단한 금처럼 나왔습니다.

그 기간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약속 하셨잖아요?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난은 힘들어요.
그래서 주님은 나를 절대로 혼자 아파하게 하지 않게 하십니다.
난 혼자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1;2-4에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잊지 마세요.
고난은요, 힘들어요.

.고난은 찌르기도 하고,
.쪼개기도 하고,
.두들겨 패기도 하지마는,

결국은 우리를, 주님의 모습으로 깍아 내는 작업 일뿐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신 것이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 까지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그 날까지 잘 인내하며 찬양하다가 애통가운데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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