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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사랑하며 그의 말씀대로 (요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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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사랑하며 그의 말씀대로 (요 14:15~24) 


지난주의 본문인 요14:1-14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로 시작되었듯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 주제였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 사이의 하나 되심에 대한 믿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6-7절) 하셨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9절) 하시며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11절)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로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21절에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고, 이미 예수님과 제자들을 떠나 대제사장에게로 간 가룟인 유다 말고 다른 유다가 여쭙기를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본문 22절) 했으나 직접 답하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고 ...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하셨습니다(본문 23-24절).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관해 그의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며 반복하신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것 사이의 밀접한 관계성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하신 것을 보면 이 말씀은 단순한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입으로는 아주 쉽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날마다 노래하며 사는 우리지만 과연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며 사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지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의 뜻을 우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새 계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생각나는 말씀이 요13:34-35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시곤 하신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비판의 핵심이 그들에게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여기서 긍휼은 달리 말하면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내버린 채 온갖 계명을 지키는 행위는 화를 부를 외식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저 여러 계명 중의 한 가지 계명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바리새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임을 시험하려고 여쭙기를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셨습니다(마22:34-40). 

이 예수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사도 바울은 롬13:8-10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렇게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번은 또 예수님께서 길에 나가셨을 때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여쭙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대꾸하셨고, 그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셨으며, 그러자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그 말씀 때문에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간 일이 있습니다(막10:17-22). 이 말씀은 우리가 말로는 쉽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지 못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이렇게 형제이웃 간의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으로 요약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적극적 관점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옛 율법을 새롭게 해석해주시고 그 바른 준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율법해석의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8-42)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3-48)

우리가 이와 같이 행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려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하며 따라서 그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본문 마지막 절 끝에서 다시 한 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확고한 믿음 위에서 그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그가 제시하신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전혀 다른 새 삶의 길은 어떤 것입니까? 소위 팔복이라 부르는 말씀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3-12)

이 가르침대로 살기를 힘쓰며 그것을 행복으로 여길 줄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할 때 우리는 진정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 하신 말씀대로 사는 것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를 사랑하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를 사랑하는 삶의 길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은 인간적으로는 외로운 삶이며 괴로운 삶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사람의 힘으로는 살아가기에는 불가능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능히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실 이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본문에서는 그를 “보혜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6-17절을 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한 분의 보혜사시라는 말씀이며 성령께서는 예수님과 꼭 같은 또 한 분의 보혜사시라는 말씀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도우시는 이”, “위로자”, “상담자”, “대언자”, “대변인”, “변호인”, “인도자”, “대리자” 등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해주실 이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게 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기쁘고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는 이 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둔 자들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심으로써 우리 또한 하나님 안에 있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우리의 현실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은 우리에게 특별히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예수님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지금 우리는 눈으로 뵐 수 없는 예수님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그 날에야 뵐 수 있을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 나타내심이 어떤 방법, 어떤 형태로일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높은 산에서 뵌 해같이 빛나는 예수님의 얼굴을 우리도 체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린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어떻게 나타내시든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며 주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써 복되고 영광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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