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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되찾아 주시는 하나님 (삼상 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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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아 주시는 하나님 (삼상 30:1~10) 


혹시 여러분은 인생길 사시는 동안 잃어버린 것은 없습니까? 대단히 소중한 그 무엇,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여성들은 소녀 때 나름대로 청순한 꿈을 가졌습니다. 여자아이들이 소꿉장난할 때보면 남자아이들과 다릅니다. 가지 가지 꿈을 꾸면서 내가 엄마가 되면, 내가 아내가 되면 이렇게 살 것이라는 꿈이 나타납니다. 모든 남자들은 멋있는 남편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는 남편을 만난 그 자체 하나 때문에 행복한 내 아내가 되게 해주고픈 꿈을 가지지 않는 남자가 있겠습니까? 여성이라면 최고의 엄마가 되고 최고의 아들을 만들고 딸을 만들어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꿈을 다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힘든 세상을 살면서, 괴로운 세상을 살면서 이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신학을 할 때, 목회를 맨 처음 할 때는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종을 불러주셨으니 정말로 바른 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종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못난 목회를 하면서 그 꿈을 잃어버리고 세상 흐름에 그냥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괴하는 심정으로 돌아볼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없을 때는 작은 것들을 모아서 학생들 등록금을 대주면서 그렇게 행복해했고 여유가 좀 더 생기면 더 많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유가 생기면서 그 꿈을 잃어버린 자신을 보면서 정말로 하나님 앞에 죄송한 심정을 많이 가집니다. 

어느 시인이 불렀던 노래처럼 많은 사람들이 청운의 꿈을 가졌습니다. 두견화 피는 언덕에 날아가는 종달새를 쳐다보면서 청운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흘러가는 굽이굽이마다 아름다운 꿈을 가졌었는데 이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도 많습니다. 이 친구만큼은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 틈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고등학교 때, 청년 때, 아주 어렸을 때 예배당에 비새는 것을 고치고자 지붕에 올라가서 오히려 더 고장을 냈던 적도 있었는데 그 열심이 지금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빛나던 충성도 있었습니다. 한 분 하나님을 향해서 내 모든 인생을 바치겠다는 충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내가 돈을 벌면 없는 사람들을 나누어 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사업을 했는데 막상 돈을 벌고 나니 돈이 아까워서 쓰지 못하면서 그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가정에서도 정말로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저 남자만 내 남편이 되어 주기만 하면, 저 여자만 내 아내가 되어주기만 하면 정말로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던 아름다운 그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내가 돈을 벌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잘 모셔 그분들이 정말로 내 아들딸을 잘 키웠다고 자랑하도록 살겠다고 작정했는데 어느 틈에 이 꿈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을까요? 그 우정, 그 사랑, 열심, 충성, 화목함,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없을까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아름다운 것들 그러나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실수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실수했다고 그것으로 좌절할 필요가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만들어주시므로 얼마든지 다시 회복시켜주실 수 있습니다. 다윗이 견디다 못해 망명을 갔는데 하필이면 원수의 나라 블레셋에 망명을 갔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망명을 가서 신세를 지고 있는 블레셋과 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왕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여 다윗에게 전쟁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의 신세를 지고 있었으므로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과 전쟁하게 된 것입니다. 전장에 도착하여 막 전쟁을 하려고 하는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 살면서 이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뒤로도 어디로도 피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만들어주시는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나야 괜찮지만 내 아들과 딸에게 길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만들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인생 살면서 이런 복을 받아야합니다. 연유가 어떠하든 간에 육신이 병이 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안 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길을 주십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과 꼼짝없이 전쟁해야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해야할 동포들과, 그렇게 사랑하던 부하들과 전쟁을 하게 될 위기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그런 은혜를 받는 내가 되도록 하게 해달라고 소원하십시오. 큰 실패를 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고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은혜가 다윗에게 임했습니다. 

우리가 소원해야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는 욕심이 아니라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을 소원해야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다윗은 자기 민족과 전쟁해야하고, 사랑하는 후배들, 부하들과 전쟁을 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셨습니까? 다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다윗이 사흘 길을 걸어서 돌아왔는데 와보니 최악의 사태가 되었습니다. 마을이 외적의 침략을 받아서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다 사로잡혀가고 말았고 모든 재산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함께 갔다가 돌아온 군사들이 이것을 보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 이상합니다. 부하들이 마을은 불타고 아내들과 아이들이 다 끌려 간 이런 지경에 있을 때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입니다. 화가 날 수 있고 울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이것이 수천 년 전에 있었던 다윗의 부하들에게만 나타난 모습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니다. 우리 인간이란 본래 이런 존재들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소에는 사랑하고 정도 많고 우애가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일과 충돌되는 문제가 발생할 때는 전혀 달라지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자기 이외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만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내도 부모님도 자식들도 형제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밤낮으로 생사고락을 하던 친구도 없고 어른도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인간 본래의 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십시오. 그리스도를 내 속에 모신 사람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속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런데서 구해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주십니다. 그 까닭을 잘 알아야합니다. 본래 인간의 모습은 그럴 수밖에 없지만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달라져서 결국 돌아서게 되고 바른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 주께서 가셨던 그 모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것을 갈라디아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사셨기 때문에 당장은 인간의 못된 모습이 드러나지만 곧 예수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예수가 그렇게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그 무엇보다도 급하게 해야 할 일은 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는 것이고,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에 모신 사람들은 기도하고 자리를 열어주십시오. ‘주님이시여, 내 속에 들어오신 예수여, 생명이여, 힘있게 역사하십시오. 이제 나는 뒤로 갑니다. 그저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옵소서.’ 계속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교통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내가 소원했던 아름다운 꿈을 만드는 자식이 될 수 있고 아내가 될 수 있고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보통 때는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보통 때는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도 아주 충성하고 열심히 전도도 잘하고 예수님을 닮은 것처럼 겸손하기도 하고 온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일이 생기게 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봅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촛불이 있으면 촛불만 보고 잘못하는 정부가 있으면 정부만 보고 야당만 봅니다. 세상에서 못된 사람들 그것만 보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므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바뀌면 바뀐 그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할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마을은 불타고 처자식들이 다 잡혀갔는데 그들은 원망하고 절망하면서 싸움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원망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고 절망할 수 있고 다툴 수 있고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다급할 때 할 것은 하지 아니하고 그런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용기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용기가 없으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바깥으로 뛰어가지 못하고 안에서만 큰소리 치고 온갖 못된 소리를 합니다. 원망하고 분노하고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고 분열을 일으킵니다. 여기에는 길이 없습니다. 해결이 없습니다. 절망만 있고 좌절만 더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릅니다. 금방은 세상 사람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바뀝니다. 사람이 될것 같지 않지만 생명만 있으면 사람이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예배당에 제대로 가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어코 하나님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 다음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실컷 울고 난 뒤 벌떡 일어섭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세상을 보다가도, 통곡을 하다가도 좌절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섭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촛불을 보고, 정부를 보고, 야당을 보다가도 곧바로 그 뒤에,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결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해야 할 일을 알게 됩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도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도 사람인지라 다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하나님을 쳐다보면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고 길을 찾게 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종을 찾아가서 기도해달라고 하여 기도했더니 여호와께서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8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답을 얻었기 때문에 이런 해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만으로 끝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게 출발했지만 좌표도 위성도 없는지라 찾을 수 없어 방황할 판인데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에게 먹을 것만 주고 아말렉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면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해주십니다. 내가 챙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챙겨주십니다. 길을 안내했습니다. 

이제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챙겨주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이렇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인도하십니다.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전쟁에 이미 이긴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전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잘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미리 손을 다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연이라고 받아들일 사람은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필연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내 군대장관, 내 천사를 미리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3장 20절에서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한다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3장 23절에서는 내 사자가 네 앞서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27절에서는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증명으로 예수를 내 구주로 인정하고 내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으면 이렇게 인도해주십니다. 내가사업을 인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챙겨주십니다. 우리는 내 길을 스스로 지킬 수 없습니다. 어떻게 내가 내 자식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어림없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4절에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된 여러분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식솔들을 이끌고 가라 내가 그 앞길을 챙겨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찾기만 하면 상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다윗이 잘못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라는 2절 말씀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는 손을 대도 좋지만 더 이상은 아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정적인 위기가 있을 때 싸우고 울면서 서로 탓하고 분열을 일으키지만 어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 거기에 복을 더 받는데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한쪽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찾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더 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나누어집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합니다. 찾을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 잃었던 것을 찾지 못하고 가진 것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도록 되어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을 찾도록 되어있습니다. 자식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 예수의 생명만 하나님께서 주시도록 기도하시면 됩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반드시 돌아오도록 되어있습니다. 남편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주님께 돌아오도록 되어있습니다. 자식들도 다 돌아오도록 되어있습니다. 예수의 생명만 있으면 돌아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덤으로 더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도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20절).. 다윗이 덤까지 다 찾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다가 이런 무서운 위기를 당했던 다윗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속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자 이런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꿈, 아름다운 것, 사랑, 행복, 충성, 열심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잃는 것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핑계하지 마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아말렉이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아름다운 사람, 점점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합니다. 아말렉을 물리쳐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말렉과 싸워야합니다.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방법을 알아야합니다.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입니다. 세상에서 방법을 찾을 것인가? 다른 사람이 하듯이 그렇게 세상에서 방법을 찾을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6장 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상대가 아닙니다. 세상도 일도 상대가 아닙니다.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상대는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합니다. 

요한1서 5장 4절에서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 머리가 아닙니다. 우리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 지식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이 이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제일 바보 같은 사람들은 한탄하고 서로 싸우고 다투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이런 일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얼른 다윗이 한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도 한 번 우십시오. 한 번 한탄도 하시고, 한 번 주저앉기도 하시고 겁도 내십시오. 그러나 얼른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해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길을 주시고 해결을 주십니다. 그리고 잃었던 것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덤으로 더 주십니다. 전리품까지 얻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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