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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을 주노라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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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주노라 (요 14:25~31)


지금 우리는 참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유가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전공급과 개발의 한계 그리고 불안한 세계가 고유가의 원인입니다.  미국도 쩔쩔매고 있습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감기에 걸리는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금 사회는 혼란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젠 점점 양극화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너무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다가 문제를 만들고,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거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지위나 권위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힘과 권력이라는 말이 이젠 지나간 시대입니다.  날씨도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무더위가 계속되어 힘도 없고, 입맛도 없고, 불쾌지수가 높아갑니다. 게다가 태풍 갈매기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폭우가 우리의 어려움을 대변하듯 칙칙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어려움 속에 여전히 개인적인 어려움이 또 힘들게 합니다. 건강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업과 직장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으로 어렵습니다. 게다가 교회는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건물의 윤각이 드러나면서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성전에서 머물며 지낼 벅찬 감격과 기대에 기쁨이 넘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부담이 있기에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일들입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 삶을 통해 우리 인생 자체가 그리 만만하지 않은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지금 더욱 힘들게 보내는 시기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생활하면서 평안하지 못하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습니다.  외적인 어려움이 그치지 않는 인생에서 내적인 평안을 누리지 못하면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주님은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27절에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주님은 평안을 말씀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제자들의 평안을 빼앗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셨습니다.  과연 우리 인생과 삶에 평안을 빼앗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그것을 한번 깊이 생각하면서 주님의 평안을 받아 힘을 얻어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근심과 두려움입니다.

27절에서 주님은 평안을 선포하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당시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주님이 죽으신다는 말씀에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이어서 이해는 됩니다만 근원적으로 이들이 뭔가에 쫓기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일주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반복한 말씀이 바로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주님이 죽으신 이후 이들은 평안이 사라지고 두려움과 공포로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곳에 모여 문을 잠그고 두문불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만큼 제자들에게 어려웠던 때가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고, 이후에도 그들은 성령과 함께 충만한 삶을 살면서 기쁨과 평안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로 힘들게 보내었습니다.  주님의 평안은 바로 이런 때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것이 반복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안함이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근심과 염려가 계속됩니다.  이런 것이 우리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우리 인생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너무도 명쾌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는 삶이지만 우리의 염려함으로 우리의 키를 한자도 더 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인 것들은 우리가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쓸데없는 염려를 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어떤 심리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염려 중 40%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30%가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고, 12%가 건강에 대한 불필요한 염려이고, 오직 8%가 실제적인 염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8% 때문에 망칠 수 없고, 그것마저도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제의 비로 오늘 옷을 적시지 말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 우산을 펴지 말라"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근심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4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시편37편5절에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  잠언 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씀했고, 베드로전서 5:7에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을 하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우리 모두 두려움과 근심에서 벗어나 주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놀라운 은혜와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불신앙입니다.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것입니다.  확신이 없기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바로 거기에서 평안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29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주님은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니까 불안하고 근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들은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주님의 말씀을 믿게 하려고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래서 평안을 강조하는 말씀에서 근심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아울러 믿음 없는 모습도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에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불신앙이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평안이 사라질 때는 우리의 믿음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불안하고 초조할 때에는 더욱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평안하게 합니다.  믿지 못할 때 불안한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곧 믿음의 부족을 의미합니다. ‘염려’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림나(merimna)’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마음이 나누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정해져 보십시오.  평안합니다.  래서 가능하면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깊이 생각할 것이 있겠지만 어떤 때는 피곤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냥 쉽게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정이 되면 편안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확신이 없기에 불안하고 초조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불신앙이 우리를 평안하지 못하기에 원래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이 불안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믿음이 있는 자가 불신앙을 가질 때입니다.   여기 제자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아니 우리들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불신자의 불신앙이 아니라 신앙인의 불신앙입니다. 신앙인은 다 잘 믿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불신앙이 있습니다. 이것이 평안하지 못하는 요인입니다.  잘 믿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안 믿고, 못 믿는 것입니다.  이게 무섭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믿음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주 높은 산을 오르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중에 늦어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높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기적처럼 절벽의 갈라진 틈에 있던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려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그러자 어디선가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정말로 내가 너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느냐?’  ‘물론 하나님을 믿고말고요’  그러자 다시금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믿고 그 손을 놓아라’  그는 이 말을 듣자 어두워 아래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손을 놓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기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여러분, 믿음이 중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고 하셨습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큰 믿음으로 날마다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외로움입니다.

우리의 평안을 빼앗는 것은 두려움과 근심이고, 믿음 없는 흔들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허전하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우리의 평안을 빼앗습니다.  지금 주님이 제자들의 이런 심정을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들은 주님의 말씀가운데 가장 힘들게 받아드린 것은 주님이 떠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때가 되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3년 동안 한결같이 함께 했으나 이제 죽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시 살아나시겠지만 부활하신 이후에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불안하고 허전하여 평안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님이 떠나시면 자기들은 혼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떠나시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강력하게 심어주셨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떠나지만 또 다른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보혜사, 인도자, 돕는자로서 이 땅에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주님은 떠나지만 성령이 오시니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허전한 그들에게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강조합니다.  

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지금 주님은 온통 제자들에게 ‘혼자가 아니다,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한다, 보혜사가 오신다, 다시 만난다, 다시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 제자들이 몹시 불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떠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자기들은 혼자라는 것 때문에, 바로 그 허전함과 외로움에 불안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런 외로움을 느꼈다면 세상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고 삽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가는 길입니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나만의 외로운 길을 걸어갈 때가 있습니다.  결국 죽음도 그런 것입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두렵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은 혼자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사람들과 늘 함께 하며 어울려 살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혼자일 때가 있고, 그래서 허전할 때가 있고, 공허하고, 텅 빈 것 같고, 세상에 오직 나만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에 들 때, 우리는 평안하지 못합니다.  외롭다고 느끼면 본능적으로 불안해 집니다.  외로움이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런데 신앙은 바로 이런 때에 놀라운 힘을 공급해 줍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벗이요,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주님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곧 나의 인생에 힘들고 어려울 때, 허전하고 외로울 때에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심어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고, 주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이런 외로움을 느껴 불안하고 초조하여 평안하지 못하는 자에게 힘과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그들에게 임한 큰 위로는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광야와 같은 우리의 인생길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더욱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그런 때에도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주님은 우리를 결코 외롭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8)

분명 우리 삶에 두려움과 근심이,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그리고 외로움과 허전함이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향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시며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받으면서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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