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불의한 시대의 성도 (시 14:1~7)

  • 잡초 잡초
  • 199
  • 0

첨부 1


불의한 시대의 성도 (시 14:1~7)


한 개인이나 공동체, 국가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부정부패 지수’ 입니다. 곧 불의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과 태도입니다. 몇 년 전(2002년) 부패 감시 민간단체인‘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공의로운 나라로 핀란드가 3년 연속 세계 1위,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l위라고 합니다. 그밖에 영국(10위), 호주(l1위), 홍콩(14위), 미국(16위), 독일(18위), 일본(20위), 아일랜드(23위), 프랑스(25위), 대만(29위), 이탈리아(31위), 말레이시아(33위)입니다. 

이어 한국은 전체 102개국 중 40위로 중간 수준을 지켰지만, OECD국가 정직성 최하위. 부정부패 l위라는 불명예스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부패척결’‘정의사회구현’등을 수없이 외쳐 왔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불의가 횡행하는 부끄러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불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불의에 편승하는 유형입니다. 불의에 가담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개인 영달의 기회로 삼습니다. 반대로 불의에 항거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고통과 핍박, 심지어 죽음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불의와 투쟁함으로써 후대에 희망을 남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의에 순응하는 유형입니다. 옳지 일임을 알면서도 생존과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의에 굴복하는 대다수의 민중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 유형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불의에 편승하고 있습니까? 항거하고 있습니까? 순응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마태복음 5:10에 말씀하시기를“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인 시편 14편에서 불의한 시대의 특징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의“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에 못할 짓이 없습니다. 본문 1절 하반절의“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는 말씀같이 온갖 악행을 자행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바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의인을 찾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인 다섯 명이 없듯이 의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본문 2절~3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탄식 하셨습니다. 

모두가 함께 시류를 쫓아 당연하다는 듯 하나님을 조롱하며 의도적으로 죄악을 자행합니다. 로마서 3:10~18에 타락한 인간의 죄악상을 기록하시기를“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불의가 가득한 어두움 속에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14)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빛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참된 믿음을 위해서는 먼저 내안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고집이나 소신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고집은 감정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소신은 지성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언제나 내 지식과 경험이나 판단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기에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말씀만이 참된 판단의 나침반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빛인 것입니다. 

우리는 고집을 버리고 소신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고집 부릴 때 우리는 마치 동물 같다. 소신이 있을 때 우리는 마치 사람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을 참된 성도라.”고 합니다. 이 믿음은 불의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5:4에 말씀하시기를“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불의를 이기는 믿음은 어떠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一. 하나님의 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입니다. 

본문 5절에“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과거 역사를 볼 때 당시에는 악인이 온통 세상을 지배하고 승자로 군림하는 듯이 보였으나, 세월이 흐르고 보니 종국은 의와 진리를 믿는 믿음이 승리했습니다. 불의한 시대에 의인으로 사다는 것이 때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무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캄캄할수록 작은 불빛이 더욱 멀리 빛을 발하듯, 소수 의인의 믿음이 용기와 희망이 되어 역사의 새벽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새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치 강제 노동 수용소 벽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는 햇빛이 비취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결국 승리하는 것입니다. 1.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를 말살하고 온 세계를 집어 삼킬 듯 위협했던 공산주의 사상이 그러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의가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6:9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二. 하나님이 피난처가 된다는 믿음입니다. 

본문 6절에“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현재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가 존귀한 자로 계속 쓰임을 받으려면 두 가지를 피해야 합니다. 하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말아야 하고, 또 하나는 남에게 모함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워낙 험악하여 내 힘으로 이를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위험한 때에 피할 곳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피난처가 있습니까? 그 피난처가 어디입니까? 물론 좋은 부모나 친구, 선배가 있으면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은 그 누구도 궁극적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한계가 있어 더 이상은 보호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46:3~4의 말씀에“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궁극적인 피난처는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어 나를 보호하시고 안전히 거하게 하십니다.“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도다.”라는 고백을 할 때 비로소 성숙한 성도의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다윗은 일관되게 변함없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인정하며 불의한 세대와 싸워 승리했습니다. 시편 18:1~3에 기록하기를“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변합니다. 젊음의 힘, 돈의 힘, 권세의 힘, 지식의 힘 등 모든 힘은 유한하며 또한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참된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마러린 먼로는 금세기 최고의 미인이었습니다. 최고의 인기 배우였습니다. 전 세계 남성의 우상이었습니다. 죽은 지 오래 되었어도 아직도 그 힘이 대단합니다. 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도 자기 생일에 귀빈은 한명도 초대하지 않고 비밀리에 먼로를 초대하고는 기뻐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에서도 마릴린 먼로를 특별히 초대해서 극진한 예우를 했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마러린 먼로는 인기 정상에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헐리우드에 가면 상점 에 있는 사진 10장중에 8장은 다 먼로의 사진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살했습니다. 인기 정상에서, 부의 정상에서, 절정에서 살았지만, 타살인지 자살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나신으로 죽었습니다. 그녀의 시신 옆에는 메모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씌어 있는 글이 바로 이것입니다.“돈, 인기, 명예, 이 모든 것은 찰나적인 행복의 요소에 불과했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한 손으로 손뼉을 친 인생이었다.”그리고 죽은 것입니다. 
한 손으로 박수가 가능합니까? 허공만 날리게 됩니다.“내 인생은 허공만 날렸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라는 뜻입니다. 허무했다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는 박수가 불가능 합니다. 인생은 예수님과 부딪쳐야, 예수님과 만나야 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한 손으로 손뼉을 치는 인생입니다. 뒹구는 낙엽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없고 인기가 없고 혹 병들고 초라해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삶은 행복합니다. 이 비밀을 모두 깊이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三.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본문 7절에“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미래에 베푸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구원과 현재 구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을 살펴보니 종국에는 의가 불의를 이겼습니다. 비록 현재에 내가 불법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주의 피난처 안에서 평안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32:7에“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고하셨습니다. 

신명기 7:19에도“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고별설교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모세가 요단강 건너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당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의 행복을 누리는 조건으로 옛날에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크신 사랑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지만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 주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그 주님께서 요한복음 16:33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하셨습니다. 

심프슨(A. B. Simpson)은 말하기를“내가 두려워할 때가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G. Mueller)는 말하기를“근심의 시작은 믿음의 종말이요, 믿음의 시작은 근심의 종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근심은 마음 밭의 가시떨기가 되어 결실하지 못하게 하지만, 믿음은 근심의 잡초를 제거하고 백배의 결실을 거두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들이 불의 흑암이 가득한 이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다시 세상 속으로 파송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기준과 내세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의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그날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굳게 지키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가 머무는 곳, 내가 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