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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프타임 (왕상 1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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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half time) (왕상 19:1~18)


1. 하프타임

여러분, 축구 좋아하시죠?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축구에 대해서는 다 아실 것입니다. 축구 경기를 보다보면,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사이에 하프타임이라는 것을 가집니다. 15분 동안 가지는데요. TV 중계를 보는 입장에서는 15분이 제법 길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계속 광고로만 떼우니까 짜증이 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하프 타임은 선수들에게나 감독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간입니다. 일단은 지친 선수들을 쉬게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전반전 전체 게임의 전개된 모습, 선수들의 움직임, 상대방의 작전과 상대 선수들의 기량, 그리고 자기 팀의 작전을 분석하고, 그렇게 분석한 것을 토대로 후반전 작전을 짜기 때문에 중요하지요.

축구경기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하프타임은 우리 인생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40대 중반 정도를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합니다. 직장인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후 결혼, 출산, 육아 등과 직장에서 살아남으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벌인 후, 직장과 가정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드는 때가 40대 중반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를 잘 보내어야 그 이후, 즉 장년기와 노년기를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프타임이라는 것은 짧게는 1년 단위에도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과 같은 휴가 기간인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입니다. 이 기간을 잘 보내어야 한 해의 하반기를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의 일화입니다. 폴리갑이 자고새 한 마리와 놀고 있는 것을 본 어느 사람이 물었습니다. “성자라는 분이 어떻게 새와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까?” 그러자 폴리갑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 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매어 두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자신이 새와 놀고 있는 그 시간이 자신에게는 꼭 필요하고 유익한 시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다음을 더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지요. 이렇게 사람에게는 적절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쉼, 즉 안식을 명령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자연계 전체를 향해 이 쉼을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삶의 하프타임, 즉 쉬는 시간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우선적으로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쉼을 명하신 주님의 뜻에 맞는 쉼, 즉 성경적인 쉼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쉬는 것이 성경적인 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쉼일까요?


2. 엘리야의 전반전

오늘 본문은 인생의 하프타임을 보내고 있는 엘리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가 이 인생의 하프타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그의 하프타임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의 후반전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봅시다. 

엘리야와 그의 시대는 성경 역사에 있어서 아주 특별합니다. 엘리야는 오므리 왕조 아합 왕 시대 때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오므리 왕조 시대는 약 45년 정도로써 400년 남짓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1/10에 해당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열왕기서에 기록된 오므리 왕조의 기록은 거의 1/3 정도입니다. 왜 이 기간에 대한 기록이 많을까요? 

아합 왕은 외교적인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 북쪽에 있던 강대국 페니키아와 국교를 맺고, 시돈이라는 나라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후로 삼았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엣바알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을 겸임한 자로 그의 딸 이세벨을 통해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보급시킴으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여호와 신앙을 없애버리려는 계략을 품었다고 합니다. 

즉 아합은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목적으로 이세벨과 결혼을 했지만, 시돈 왕 엣바알과 그의 딸 이세벨은 선교적인 목적으로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세벨은 시집올 때, 바알 신상과 아세라 목상을 가지고 왔고, 남편 아합으로 하여금 그 우상에게 경배케 했으며, 후에는 모든 신하와 온 국민들에게까지 바알과 아세라 등 우상숭배를 강요했습니다(왕상 16:31~33).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이방종교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우상의 노예가 되어 이방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합의 시대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하는 것이 국교가 된 너무나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아합 왕 시대에 관한 기록이 많은 이유는 왜 이스라엘 민족의 북쪽 왕국이 주전 722년 경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북 왕국이 이렇게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버려두셨을까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망해가는 것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죄악된 역사를 돌이키기 위하여 당신의 종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시기보다 더 강력하게 주님의 역사를 나타내셨던 것이죠. 

그래서 바로 이 시기에,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야와 엘리사가 등장했고, 그들에 의해 엄청난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성경 역사상 기적이 가장 많이 일어난 때가 3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출애굽을 전후한 기간입니다. 10가지 재앙의 기적을 비롯하여, 홍해가 나뉘어져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은 일, 광야에서 일어난 수많은 기적 등 ‧‧‧. 정말 기적이 많이 일어났지요. 두 번째가 바로 오므리 왕조 시대 즉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한 시대입니다. 특히 엘리야를 통하여 죽은 자가 살아나고, 기름과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독초가 든 죽이 달콤하고 맛있는 죽이 되고, 물에 빠진 도끼가 금도끼, 은도끼처럼 다시 떠오르는 등, 정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기적이 가장 많이 일어난 세 번째가 예수님 시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시대에 얼마나 놀라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까? 기적의 양에 있어서, 그 질에 있어서, 무엇보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다른 어느 사람도 해낼 수 없었던 기적들이 주님의 손으로 나타났습니다. 

자, 다시 엘리야의 경우를 보십시다. 엘리야는 그 험악한 시대에 정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여 사역했고, 또 자신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바알 숭배로 범죄하고 있는 북 이스라엘에 가뭄이 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들이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면서 다음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게 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왕상17). 큰 비로 가뭄이 끝나게 했습니다. 아하시야 왕의 병사들에게 불이 임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갈멜산에서의 승리였습니다. 갈멜산은 숲이 우거져 풍요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 신의 요람으로 여겨지는 산이었습니다. 거기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인과 대결을 벌였는데요. 이른바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와 맞붙어 대결을 벌였고, 그 싸움에서 승리한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그가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엘리야의 기적 그 이후였습니다. 이 놀랍고 엄청난 기적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쉽게도 엘리야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즉 백성의 변화는 그가 기적을 일으켰을 때 그때 뿐, 또 다시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에 빠졌고, 약화되어 힘이 빠질 줄 알았던 아합과 이세벨은 더욱 힘을 내어 자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지도 않았고, 아합 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런 변화는 고사하고, 엘리야 자신은 자기를 죽이려고 벼르는 이세벨에 의하여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우상과 그 숭배자들과 싸웠고,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국가 정권과 그 추종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해결된 것 변화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 인생의 전반전의 상황입니다.

자, 엘리야 인생의 전반전의 스코어가 어떻습니까? 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거의 끝이 되도록까지 엘리야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꺾어서 아예 후반전이 필요 없을 정도, 상대방이 기권할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가서 엘리야는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5:0으로 이기다가 5분 만에 10골을 먹어서 5:10 정도로 패배한 꼴, 혹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러자 풀이 죽어버린 엘리야는 유다광야로 도망을 갔고, 거기서 죽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 이게 뭡니까? 그렇게 죽도록 최선을 다 했는데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계획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제 그만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 할 만큼 해 보았고 살만큼 살았지 않습니까!’ ‘죽고 싶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올해 전반기는 어떠셨습니까? 원하는 대로 되셨나요? 승리하고 성공하셨습니까?


3. 엘리야의 하프타임

1) 광야에서

이렇게 로뎀나무를 의지하고 주저앉아서는 죽겠다고 하는 엘리야를 보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이, 엘리야! 지금 네 모습을 보니까 정말 실망스럽구만. 그 동안 네가 경험한 나의 능력과 말씀의 힘을 벌써 잊어버린 것이냐? 너 이 정도 밖에 안되었니? 갈멜산에서 850대1로 싸워 이긴 그 power는 어디로 갔느냐? 너와 함께 하는 나보다 한 여성 이세벨이 더 무섭더란 말이냐? 이런 약해 빠진 놈!”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런 말씀을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내색조차도 비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5절부터 8절을 보십시오. 엘리야는 완전히 탈진해 있었습니다. 지금 엘리야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엘리야는 죽고 말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데다가 정말로 죽고 싶어하는 그를 그대로 버려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굶주림과 더운 날씨와 무기력증으로 인하여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쓰러졌습니다. 그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엘리야를 어루만졌습니다. 엘리야가 그 신비한 손길을 느끼고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떡과 한 병의 물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가야 할 길이 먼데, 이렇게 지쳐서는 아무 것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금 먹고 힘을 내지 않으면 가다가 길에 쓰러지고 말리라.” 그러면서 엘리야를 따뜻하게 감싸안아주었고, 지치고 배고픈 그를 먹여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인생의 하프타임, 삶의 쉼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포자기 상태인 엘리야의 인생을 하프타임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도 그렇게 만드실 줄로 믿습니다. 

지쳐 쓰러져 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시며, 위로하시고, 떡과 물을 주어 힘과 용기를 주신 하나님을 이번 휴가 기간에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만이 홀로 있을 수 있는 광야가 있다면 거기로 가십시오. 전적으로 말씀과 기도에만 매달릴 수 있다면 그리 하십시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잠시라도 홀로 자신을 살피는 시간과 말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엘리야를 어루만지셨던 그 부드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호렙산에서

유대광야 로뎀나무 아래서 주님이 주시는 음식으로 힘을 얻은 엘리야는 거기서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왜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갔을까요? 엘리야가 그리로 간 이유는 그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그리로 이끌고 갔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이끄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과거 모세에게 주셨던 그 은혜를 엘리야에게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일대일로 만나셨듯이 거기서 엘리야를 만나시기 원하셨고, 모세에게 말씀을 주셨듯이 엘리야에게도 말씀을 주시기 원하셨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듯이 엘리야에게도 사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호렙산에서 엘리야는 한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신비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위하여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보여주신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앞을 지나가시는데, 갑자기 강력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이 정도면 태풍이나 그 어떤 토네이도보다 더 강한 바람입니다. 그 앞에 놓여져 있는 모든 것을 일순간에 날려버리고 쓸어버리는 큰 파괴력을 가진 강력한 바람이었지요. 그 다음으로 지진이 엘리야 앞을 지나갔습니다. 건물도, 나무도, 바위도, 산도 모두 다 삼켜버릴 만한 엄청난 지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이 엘리야 앞을 지나갔습니다. 과거 모세 시대에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던 그 장엄함처럼, 또 여호와께로서 나와서 장로 250인을 태워 죽인 불처럼(민17:31-35), 그리고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물에 흠뻑 젖은 제물을 태우신 그 불처럼, 그렇게 강력한 불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것을 보이셨을까요? 이것은 엘리야의 생애 전반전에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말미암은 기적의 재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자신이 변함없이 여전하시다는 것, 여전히 희한한 능력과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임을 보여주셨으며, 나아가 자신이 엘리야와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심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세상의 힘, 권력자, 수많은 무리들 때문에 ‘쫄지 말라’ ‘약해지지 말라’ ‘겁먹지 마라’고 엘리야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더 중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환상 뒤에 들려온 “세미한 소리”,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주시고, 그 뒤에 말씀을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엘리야의 사역은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것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 생애 전반전에서 엘리야는 강력하고 쎈 것만 추구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과 수많은 이방 선지자들과 싸워 이기는 것, 굶주린 자를 살리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들이 더 필요하고 확실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와 같이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가 필요하지만,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사람에게 참된 힘과 능력과 평안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세 번째로 주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후계자를 삼아라.”는 말씀이었지요. 여러분, 이 말씀은 자신의 생애 전반전으로 자기 할 일이 끝났다고 여긴 엘리야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일, 그 사명을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늘 본문 15절부터 18절에 보면, 엘리야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을 차기 아람의 왕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님시의 아들 예후를 차기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뒤를 잇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승천하기까지 다시 북 이스라엘의 중심부로 들어가 열심히 사역을 하면서 그의 인생의 후반전을 멋있게 장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둘째는 기적보다 더 중요한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더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신에게는 아직도 사명이 남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이번 휴가도 이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말씀의 깊은 맛과 그 달콤함을 체험하십시오! 여러분의 남은 생애에 감당할 일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4. 가치 있고 효과적인 휴가

말씀을 맺겠습니다. 

창세기를 주석한 어느 유대인 랍비는 “일곱째 날에 무엇이 창조되었느냐?”고 물으면서, 그것은 “고요, 평온, 평화, 휴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안식, 즉 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뭔가를 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테크보다 중요한 것은 시테크이고 시테크보다 중요한 것은 쉼테크이다!” 돈을 어떻게 관리해서 불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고, 그 시간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쉼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라는 말입니다. 즉 적절한 휴식은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 잘 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쉼테크를 어떻게 활용하시겠습니까? 

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의 보습학원 전단지나 스쿨버스 등에 보니까 ‘이번 방학이 2학기를 좌우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책임지겠다’고 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번 휴가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휴가는 여러분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한해살이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이 들려준 휴가의 네 가지 원칙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로뎀나무 아래서의 엘리야의 경험처럼, 지친 여러분이 회복되고 새롭게 일어서기를 누구보다도 원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능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여러분의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주님의 나라라는 넓은 안목으로 볼 때 여러분에게는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휴가 기간에 이 네 가지 전부, 혹은 그 중의 일부라도 여러분이 반드시 얻을 수만 있다면 이번 휴가만큼 가치 있고 효과적인 휴가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휴가가 이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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