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도를 위한 최상의 의사소통 (눅 10:16, 롬 10:17)

  • 잡초 잡초
  • 446
  • 0

첨부 1


전도를 위한 최상의 의사소통 (눅 10:16, 롬 10:17)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눅 10:16)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혼자 사는 노인이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자 슬픔을 안고 평소 다니던 성당의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신부님, 제가 기르던 개가 죽었습니다. 오랫동안 저와 함께 살던 애견인데 신부님이 장례식 좀 해 주세요.” 신부가 짜증스런 음성으로 말합니다. “누가 개를 성당에서 장례예식 합니까? 우리는 사람만 장례식을 합니다. 저 밑에 가면 다른 종교가 있으니 가 보세요. 거기는 혹시 개 장례식을 할지도 모르니 가서 부탁해 보세요.” 노인은 신부의 조언에 감사하다면서 물었습니다. “신부님, 개 장례식을 하려면 얼마를 준비해야 하나요? 500만원이면 될까요?” 신부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서서 말합니다. “노인양반, 그 개가 카톨릭 신자라는 걸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카톨릭이면 개도 장례식을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유머입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웃자고 만든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머 속에 교훈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인에 불과합니다. 직업적 신앙인, 또는 습관적 신앙인입니다.

김씨 할머니 집에는 늘 두 분의 할머니가 마실을 와서 놀다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김씨 할머니가 아끼던 개가 죽어 있었습니다. 쥐약을 먹은 쥐를 먹고 죽은 것 같았습니다. 경찰에 연락해서 경찰차에 죽은 개를 실려 보냈습니다. 너무 슬퍼 울고 있는데 이웃집 이씨 할머니가 들어오며 다른 할머니 안부를 묻습니다. “아니 늘 내 앞에 와서 웃더니 오늘은 안 보이네?” “아이고 죽었다네. 마당에 죽어있더라구. 경찰이 실어갔어!” “무에야? 아니 죽었어? 아이고 어떻하나? 갑자기 죽다니 웬 말이여!” 퍼질러 앉아 두 할머니는 한참이나 슬피 울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알려야지. 이러고 있으면 되나?” 이씨 할머니가 일어서자 김씨 할머니가 말립니다. “새끼도 한번 못났어. 아이구 불쌍하지!” 두 할머니가 더 소리 높여 웁니다. 김씨 할머니는 기르던 개를 두고 하는 말이고 이씨 할머니는 늘 놀러오던 앞집 정씨 할머니가 그 집 마당에서 죽은 줄 알고 우는 것입니다. 나중에 둘은 어떤 얼굴로 서로 쳐다보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정씨 할머니가 들어오면서 “왜들 울어? 누가 죽었어?” 소리를 지르니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말”을 합니다. 언뜻 말은 백퍼센트 완벽한 의사전달 수단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말만큼 불완전한 전달수단도 드뭅니다. 앞뒤 정황을 잘 모르거나 말하는 이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같은 말이라도 엉뚱하게 들리거나 이해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봉독한 롬 10:7의 말씀은 구원의 통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믿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으니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려줘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언어인 “말”이 의사전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도구요, 방법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모든 동물 가운데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 중의 하나입니다. 짐승들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겠지만 사람만큼 발전된 언어를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데 “말”만큼 좋은 도구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하나님 믿고 복 받으세요”라는 말로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성공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잘 되어야 합니다.

의사소통 행위과정에는 세 가지 필요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the sender), 둘째는 메시지(message), 그리고 셋째는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the receiver)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외에도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 요소는 이 세 가지입니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원만히 이뤄지려면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경험을 공유했을 때 더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세대 간의 차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경험의 공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놀고 있는 문화의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문화언어 안에서 놀고 어른은 어른의 문화공간 안에서만 있기 때문에 세대 간의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법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경험을 함께 하면 더 잘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함께 경험한 문화의 공간에서 복음을 절할 때 훨씬 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수용률도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전도라는 말로 쓰이는 ‘이반젤리즘’(evangelism)이라는 말은 그 문화권의 사람을 불러내어 훈련시킨 다음 다시 그 문화권으로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복음은 전하고자 할 때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져 곧 싹이 나와 말라버렸고, 어떤 씨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져 가시에 가리워 자랄 수 있는 기운을 잃었고, 어떤 씨는 옥토에 떨어져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비유는 복음의 씨가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도 하고, 아예 싹을 내지 못하거나 났어도 쉬이 죽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 비유에서는 씨를 뿌리는 농부가 예수님(또는 하나님)이어서 씨가 떨어지는 ‘밭’만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가 전할 때는 밭(the receiver)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the sender)인 전도자도 문제가 되고, 전하는 ‘메시지’도 생명력 있는 씨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전도자요, 예수님의 복음도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밭에 따라 열매를 맺는 결과가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는 우선 전하는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전할 메시지도 분명할 수 있도록 골라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최상의 전도를 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생명력 있는 복음의 씨를 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복음의 씨가 생명력 있는 씨인가? 내가 먼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확신이 있은 다음에 만든 복음의 종자여야 생명력이 있습니다. 내게 아무런 역사를 일으키지 않은 전도의 내용은 힘이 없습니다. 생명력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내가 먼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설교학자인 존 스테이플톤(John Stapleton) 박사는 설교자들에게 강변합니다. “Whatever you believe, you have to preach!”(당신이 믿는 것을 설교하시오!) 자기도 믿지 않으면서 남에게 전도하면 이미 생명력이 없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복음이 당신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영혼밭에서 거둔 복음의 씨가 생명력이 있습니다. 

둘째는 전도자(복음의 전달자)의 적극적 의지입니다. 단순한 전달자가 아닌 반드시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는 자가 받아 드리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한 명령으로 주어진 과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 가족, 친구,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직접 말로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Christ calls us to give a verbal witness to the people around us).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을 가슴에 담고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열심을 냅니다. 하나님은 복음전파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눅 10:16에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자라 했으니 우리는 의지를 갖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전도대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는지 모릅니다. 매일같이 전도지를 들고 나가는 그분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나님, 저들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기쁘실까요? 저들의 발걸음과 저들의 입술을 축복하소서!” 저는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셋째로 이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설득의 힘도 사랑입니다. 보험설계사들이나 판매사원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표어가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를 그들이 알기 전까지는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다”(Nobody cares how much you know until they know how much you care). 네가 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나도 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먼저 지극히 사랑하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도 잘 받아드릴 것이고, 사랑과 관심이 없이 메시지만 전하면 듣는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으로 복음의 씨를 심으라” 전도자들에게 주는 표어입니다. 비록 우리가 불완전해도 우리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줄 알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입니다.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마음 밭에 떨어져서 새싹을 돋게 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6.25사변 후 나라 복구에 큰 지도력을 나타냈던 백낙준 박사님의 아버지는 박수무당이었답니다. 무당질하는 그를 너무 불쌍히 여긴 어느 전도자가 진심으로 그에게 다가가 전도를 했답니다. “자식망칠 짓 그만하고 천당 가세요” 마음이 완악했던 박수무당은 전도자에게 폭언을 했습니다. “너나 잘 믿고 천당 가든지 백당가든지 하라. 남의 일에 상관마라.” 그날은 무당에게 재수 없는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돌아온 박수무당은 전도자의 말이 가슴 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폭언을 했는데도 사랑스런 마음으로 애걸하던 전도자의 말이 귓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결국 이 박수무당은 신당을 정리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믿었더니 많은 열매도 거두었고, 그의 아들 백낙준 박사는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학위를 하고 연대총장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역사적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시는 하나님으로 가까이 가십니다. 

마리아(Maria)라는 젊은 아프리카 여인이 미국에 왔습니다. 그녀는 늘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그가 방문 중인 교회의 전도 전략회의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 회의에서는 팸플릿 만들기, 여러 가지 선교 사업들, 캠페인, 등등 많은 것들을 논의 했습니다. 한참 논의한 후에 어느 교인이 앙골라에서 온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앙골라 교회는 어떻게 전도를 하나요?” 그때 마리아는 말했습니다. “우리 앙골라 교회는 전도할 때 팸플릿을 나누어주거나 캠페인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도하고자 하는 마을에 한 두 가정을 이사를 시킵니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사랑하면 저절로 마을 사람들이 예수 믿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사랑입니다. 가슴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받아드릴 준비가 됩니다. 복음은 그렇게 전파될 때에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여름철 휴가 기간에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여러분이 직접 전도해야 합니다. 용기를 갖고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오. 얼마나 전도를 하시는지 하나님은 지켜보며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꼭 전도하는 여름휴가가 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