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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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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 5:8)


 오늘은 팔복 중 여섯 번째 복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다섯 가지 복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자신에게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만한 의가 전혀 없음을 깨닫는 것이고, 둘째 복인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자신에게 의로운 것은 없고 죄와 불의만 가득한 것을 느끼는 사람이 그 죄를 슬퍼하며 통한히 여기는 것을 의미하고, 세 번째 복인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자신에게 죄와 불의만 가득한 것을 인정하는 자가 하나님의 처분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태도이고, 네 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지은 죄를 원통히 여기는 사람이 이제는 죄와 반대되는 의로움을 갈망하는 마음의 자세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복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아직 그 의를 받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을 볼 때에 불쌍히 여김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긍휼 중의 긍휼, 연민 중의 최고의 연민은 영혼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성경의 어느 곳에서 보다 더 위대한 말씀의 한 대목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정말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 이것은 인간의 온갖 노력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모든 종교의 전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전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 복을 잘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마음’이란 말부터 바르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제나 마음에 관계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온통 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에만 관심을 가졌고 속을 무시했습니다. 겉만 보면 그들은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에는 탐욕과 악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의 외형에만 관심을 가졌고, 율법의 더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잊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주님의 가르치심의 중심입니다. 주님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지적인 사람들을 칭찬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마음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교리나 신학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신조나 교리에 대한 이해, 또는 지식적인 동의에서만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사고나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음이란 용어의 뜻을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마음은 언제나 인격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합니다. 마음은 사람의 존재와 인격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뿐 아니라 마음의 중심, 마음의 온갖 활동의 근원이 순수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복음은 항상 이것을 강조하고 복음은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마음은 항상 모든 문제꺼리의 근원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쁜 생각은 항상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데, 곧 음란, 살인, 도둑질, 간음, 탐욕, 악독, 사기, 방탕, 질투, 배신, 교만 같은 것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계의 비극은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환경을 변화시키면 가능하다고 믿는데서 옵니다. 이것은 실로 비극적인 오류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낙원에서 타락하였다는 것을 모릅니다. 인간이 최초로 범죄한 것은 완전하고 완벽한 환경 속에서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 어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를 막론하고, 거기에 있는 모든 문제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렘 17:9-10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인간의 마음이 거짓되고 부패합니까? 타락의 결과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꺼리들은 사람의 인격의 중심인 마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지성을 발전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만으로는 결코 선한 사람을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최고의 교육을 받고서도 철저한 악인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다같이 롬 1:28-31의 죄악 목록을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 말씀에 비추어서 내가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마음이 깨끗할 때에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본성은 절망적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절망적인 인간을 하늘나라로 들어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심령의 가난을 인식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이 되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며,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연민의 정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 마음이 죄악과 교만에서 깨끗해지고 영안이 열려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마음이 깨끗함을 어떤 뜻으로 말씀하셨을까요?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데 일치합니다. 

    1.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위선이 없다, 단순하다, 성하다는 뜻입니다. 

마 6:22-23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마음이 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부패하지 않고, 진실하고 신실하며 일편단심 곁눈 팔지 않고 골똘 하는 전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롬 7:19-23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자기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나서, 하나님께 “일심으로 주를 경외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2. 마음이 청결한 자란 정화된 자란 뜻입니다.

계21:27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했고, 계22:14-15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누가 하늘의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완전하고 순결하고 흠도 티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화된 사람, 흠이 없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란, 일편단심, 전심, 일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열망하며, 삶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가리키고,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흠도 티도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화되고 씻김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본다는 구체적인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가시적일까요? 아니면 순전히 영적일까요? 출 33:18-23에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고 할 때 신체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요 14:8-9에 보면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신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축복들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과 축복도 이 땅위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을 보는 일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그리스도인들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1.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 또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보게 됩니다. 지나간 세기 최고의 역사학자중 한 사람인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말하기를 “세계사는 하나님의 심판사다!”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의미, 하나님을 느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일이 가능합니다. 비록 우리가 불완전해도 이런 의미에서 지금 하나님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교제 관계에서 하나님을 보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가리켜 체험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체험도 하나님을 보는 것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나? 저 푸른 하늘을/하나님 만드셨지. 저 푸른 하늘을/누가 만들었나? 저 빨간 사과를? 하나님 만드셨지 저 빨간 사과를♪ 이렇게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차르트와 왕실 사냥꾼인 그의 친구가 나란히 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냥꾼인 그의 친구는 “이 바람은 산토끼를 놀라게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들어 봐, 하나님의 거대한 오르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다시 아름다운 한 마리 종달새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갔습니다. 사냥꾼은 “저것 봐, 그저 한방만 쏘면”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저 소리를 내 것으로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귀와 눈이 있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어떠합니까? 그는 슬픔 중에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듣고,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볼 것입니다. 아침 햇살과, 추수한 곡식들에서, 그리고 저녁노을에서 하나님의 미소를 볼 것입니다. ♪꽃가지에 내리는 가는 비 소리. 가만히 기울이고 들어보셔요. 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와라. 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와라. 냇가에서 졸졸졸 흐르는 소리 가만히 기울이고 들어보셔요. 너희들도 이 물처럼 맘이 맑아라. 너희들도 이 물처럼 맘이 맑아라.♪ 이렇듯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그의 마음이 성령에 의해서 조율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4.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에 대한 보조 교과서라고 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주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자비하심, 긍휼하심, 오래 참으심 등등........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참 모습들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언젠가는 우리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을 직접 뵙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무리가 둘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한편은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하며 슬피 애곡할 불신 인생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의로운 중에서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는 성도들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소망에 대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때는 주를 맞대고 보리. 하나님 나를 알고 계시듯 우리도 주를 알리♪ 실로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 때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시는 분의 존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알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감히 우리 같은 죄 많은 인생들이 직접 뵐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땅에서 대통령과 대면하고 악수만 한번 하여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그 거룩하신 하나님과 대면한다니,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 17:14-15에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 여러분의 최고 목표, 최고의 소망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마다 그분이 성결하신 것과 같이 자신의 삶이 성결한 것이 되기를 힘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제목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는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1)마음이 진실하고 위선이 없고 단순하고 심플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고 2)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화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진실하고 정화된 마음으로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며, 또는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며, 그 하나님과 은혜로운 교제 속에서 살다가, 여러분의 생을 마치는 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시는 분의 존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 뵙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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