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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 (잠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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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 (잠 17:3)

(잠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1. 하나님은 “알파(시작, 처음)와 오메가(끝, 나중)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계 1:8)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 천지만물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피조물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사화복, 즉 그 인생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고,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 그리고 세상의 종말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얼마든지 한 인생의 시작(알파)이 비록 미약할지라도 그 나중(오메가)은 심히 창대케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인내로 지킨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고, 복을 주시된 처음 받은 복보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욥42:10-17)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지혜서인 전도서에 보면,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전도서7:1-2,8)고 했습니다. 전도서는 전무후무한 지혜자인 솔로몬의 인생 결론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르호보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12:12-14)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르호보암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 솔로몬의 교훈에 따라 통치했더라면, 그 나중이 심히 창대했을 것입니다. 역대하 11:17을 보면, 르호보암이 왕에 등극하여 처음 3년 동안은 아버지 솔로몬의 교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통치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강성하게 축복하셨습니다.

(대하11:17) 그러므로 삼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년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여기 “삼년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더라.”는 말은 처음 3년 동안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믿고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그 끝이 시작보다 낫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12:1을 보겠습니다. 

(대하12:1)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이 말은 르호보암이 자신의 통치권이 튼튼하고 그 세력이 커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통치권과 그 세력이 약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조금 강해지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이 자신의 힘이 강해지자 믿음을 저버리고 우상숭배를 시작했습니다. 왕이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하자 모든 백성들도 왕을 본받아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며 음란과 동성애 등의 가증한 행위들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왕상14:22-28)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으니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결국 이같은 르호보암의 행위는 하나님의 분노를 격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르호보암을 심판하셨습니다. 애굽 왕 시삭으로 하여금 르호보암을 치도록 해서 모든 보물들을 몽땅 빼앗기게 만드셨습니다. 심지어 성전의 모든 보물들까지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통치권의 상징인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까지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왕상14:25-28)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애굽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의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장관의 손에 맡기매 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 

이 정도가 되었으면, 처음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 처음 믿음을 회복했어야 하는데 르호보암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금방패’를 빼앗기자 그 대신 ‘놋방패’를 만들어 자신을 경호(警護)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처음으로 돌아가 처음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완악한 마음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로호보암의 시작은 ‘금방패’가 의미하듯 황금기였으나 그 나중은 ‘놋방패’처럼 형편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통치하는 내내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17년 통치기간 내내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왕상14: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그러므로 지혜롭고 복된 삶은 ‘시작보다 끝이 나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롭고 복된 삶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삶이어야 합니다. 태어날 때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축하를 받았을지라도 죽는 날 온갖 손가락질과 욕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창하게 인생을 시작했을지라도 그 나중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초라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비록 세상에 보잘 것 없는 환경과 모습으로 태어났을지라도 그 나중은 세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믿음을 성실하게 지켜 말씀대로 산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시116:15)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하는 이유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 하나님 나라가 죽음 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죽은 후에 지옥으로 끝난다면 그 인생의 시작이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세상에서 겨자씨같이 하찮은 삶이었다 해도 그 인생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면 가장 지혜롭고 복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49:16-20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더라도,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너는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아라.  그도 죽을 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그의 재산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비록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는다 하여도, 그도 마침내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면 멸망할 짐승과 같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므로 시작보다 끝이 낫고 금세와 아울러 내세에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히 3:14)


2.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in the end)이 “시작”보다 낫도록, ‘그 시작은 비록 미약할지라도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축복하시고자 “연단”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the LORD tests the heart.)”에서 “연단”은 ‘시험하다(test)’, ‘증명하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8:2, 16을 보겠습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인생들을 “시험”(test)하신다는 것입니다.(to test you so that in the end it might go well with you.) 여기 “마침내”가 바로 ‘오메가’, ‘마지막’(in the end)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마침내’, ‘마지막’에 복을 주시기 위해 무엇을 ‘연단’, ‘시험’하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test)하시기 위해, ‘시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의 ‘광야’는 ‘연단’을 위한 ‘도가니’, ‘풀무’, 즉 금을 걸러내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고자 하는 것은 첫째, ‘낮추는 것’, 즉 겸손이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낮에는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아래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습니다. 또한 밤에는 추위로 말미암아 불기운이 없이는 몇 시간도 견딜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실 물이나 사람이 먹고 살만한 음식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시고,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시지 아니하면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동안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을 쳐서 그들의 마실 물, 생수를 공급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40년 동안 그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고, 그들의 발까지 하나 부릍지 아니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입고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인생을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달프고 험난한 광야 생활 중에서도 의식주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상기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계명을 순종하여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계속되는 신명기 8:17-18을 보겠습니다. 

(신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배부르고 좋은 집에서 살며 모든 일에 풍부하게 되면 마음이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지난 날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일, 그 위험한 광야, 곧 독사와 전갈의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그리고 물 없는 땅에서 생수로 마시게 하며 땀흘려 일하지 아니하고도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먹이신 일 등,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잊어버리고 교만할까 염려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교만한가 겸손한가를 시험하십니다.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부유하게 되었노라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과 재능, 힘과 환경을 축복하셔서, 한 마디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되었다고 믿으며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마음과 생각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렘9:23-24)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 인간의 생사화복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하게 된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느브갓네살 왕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7년 동안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짐승처럼 들에서 풀을 뜯으며 지내게 만들었습니다.

(단 5:21)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이처럼 교만을 피우다가 7년 동안 ‘짐승의 마음’을 받아 짐승처럼 살며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겸손한 사람으로 돌아온 느브갓네살이 이렇게 신앙고백합니다.

(단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느브갓네살 왕의 아들 벨사살은 이러한 아버지가 겪은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아버지의 신앙고백을 들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교만을 부리다가 결국 그날 밤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단5:22-30) 

과연 지혜자의 말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는 말씀대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스스로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낮추지 아니한 느브갓네살 왕에게 자신의 교만을 깨우치기까지 ‘짐승의 마음’으로 짐승처럼 살게 하셨습니다. ‘존귀에 처했으나 교만하여 짐승처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낮추지 아니하기 때문에 광야의 길을 40년 동안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낮추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2:6-11)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는 이유는 ‘마침내’, ‘마지막’에 복을 주시되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낮추시는 것은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을 낮추어서 “재물과 영광과 생명”(잠22:4)으로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은혜입니다. 이같은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아시고자 ‘시험’하십니다. “(신8:2)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지 한 달이 되던 때 광야에서 그간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모두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종살이했을지라도 그 때는 고기도 얻어먹었고 밥도 배불리 먹었었는데,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고 하던데 차라리 그 때 먹다가 죽게 내버려두지 왜 이 모진 광야까지 끌고 와서 우리를 굶어죽게 만드냐며 원망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16:4-5)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이제부터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려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거두게 할 텐데, 제 육일에는 갑절로 거두어 제 칠일 곧 안식일에는 거두지 않아도 먹을 수 있도록 해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같이 하여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이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심이 생겨 일용할 양식 외에 더 거두어 다음날까지 쌓아두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그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전, 제 육일에는 갑절, 즉 이틀 양식을 거두어 보관했다가 안식일에 먹어도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는 만나를 내리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만나를 거두러 밖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시험’하시겠다고 하셨음에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과연 예수 믿는 성도들이 주일을 성수(聖守)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시는데 주일을 성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세상에 살면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쓰디 쓴 환경에 처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지 여부를 ‘시험’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큼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욥1:1,8) 

그런데 하루는 사탄이 와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시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시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도 좋다며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욥은 하루 아침에 종들이 살해당하고 모든 재산이 불에 타고,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모두 압사를 당하는 엄청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게다가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들어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길바닥에 나 앉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자 욥의 아내가 이렇게 쏘아붙이고 가출해버립니다. 

“(욥2:9)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믿음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아내의 이같은 저주에도 불구하고 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욥2:10)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세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는 별별 유식한 철학과 변론으로 욥을 시험하며 공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믿음이 변치 아니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when he has tested me)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하신다.’, ‘시험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시험)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욥은 이렇게 끝까지 믿음을 지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을 ‘증명해보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갑절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42:10)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 중 때로 욥과 같이 ‘시험’받으실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욥 한 사람의 신앙에 대해 무려 42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단련된 마음, 연단된 믿음, ‘증명’된 믿음이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마음을 끝까지 지키시기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 말씀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히8:10)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믿음과 그 믿음대로 사는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 증명하므로 마침내 복을 받되 처음보다 갑절의 복을 더 받으며 “

(벧전1:7)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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