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사랑하기를 가르치자 (신 6:4~9, 엡 6:4)

  • 잡초 잡초
  • 463
  • 0

첨부 1


하나님 사랑하기를 가르치자 (신 6:4~9, 엡 6:4)


제주도에 가서 오토바이쇼를 보았다. 중국 기예단이 참석하여 묘기를 보이는데 어린 아이가 온몸이 굽혀지며 허리가 360도 말아져서 동그랗게 되는 것을 보았다. 몸을 구부리도록 가르치니까 도무지 따라할 수 없는 유연체가 되었다. 그 아이를 볼 때 측은한 마음이 있었지만 누구에게 무언가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그 어린이에게 악한 일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고 보니 사람을 가르치되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람은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가르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가르치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신6:4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안드로포스」인데, 이 말 자체가 ‘위를 향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서서 다니며 머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창조된 것은 사람이 서서 위에 계신 하나님을 사모하라는 뜻이다. 기어다니는 짐승은 땅만 쳐다보며 살지만 사람은 위를 보고 살도록 창조되었기에 나를 존귀하게 만드신 사랑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전12:13)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오늘날의 문제는 롬1:23에 기록된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세상을 사랑하고 헛된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자에게 마음을 드리고 마음이 하나로 바쳐지는 것인데 마음이 둘, 셋, 넷으로 갈라져 사랑의 대상을 바꾸었다. 그리고 분열된 마음으로 이것도, 저것도 사랑한다는 점이다. 사랑한다면 마음이 두 개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랑이란 전심을 다하는 한 마음이다. 

서로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느 날 남자가 여자를 불러놓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랑한다고 선언하였다. 단 토요일 오후 3시간만 다른 여자와 사랑하겠다고 약속을 했다면 그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가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마음이 둘이 되었으므로 사랑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 사랑하기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은 가끔 사랑해도 되는 사랑이 아니다. 신앙이란 부처님도 한 시간, 공자님도 한 시간, 세상 점술가도 한 시간을 사랑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야 한다. 전심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것이 참신앙이고 참사랑의 태도다. 

그 다음으로 남은 문제는 나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 성경은 그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을 가정해서 나의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것이다.
  

1. 마음에 새겨두고 가르치자. (신6:6)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부보들은 자식들 앞에 설 때 하나님 사랑하기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조각가가 조각칼을 들고 나무에다가 파서 글을 새긴다. 그러면 항상 그 새겨진 글이 남아 있다. 이처럼 하나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인생의 좌우명이다. 무의식에서도 떠올라야 한다. 이 신앙 교육 우선론을 가정 생활에서 잊어버리면 부모가 부모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잊고 산다면 자식을 자식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가정이 축을 잃어버리고 중심을 잃은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 둘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르침이 가정 교육의 모든 기본기가 된다.
 

2. 부지런히 가르치라. (신6:7)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대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다. 더군다나 부지런히 가르친다는 것은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로서의 마땅한 열정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에 태만할 수 없다. 태만은 죄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을 순종치 않은 죄다. 게으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가르쳐 주지 못한 무관심의 죄다. 의의 바른 길을 벗어나게 한 타락을 방조한 죄다. 자녀를 황무한 상태로 둔 유기의 죄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가르치는 일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모든 시간을 동원하고 부지런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여름성경학교 시즌이 돌아왔다. 게으름과 나타함을 버리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자.

① 교사들이 부지런하자.

뜨거운 사랑의 열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자. 하나님 사랑하기는 말씀 속에 그 세칙이 있다. 교사들은 새벽 시간부터 기도로 준비하며 저녁 늦게 까지 어린 아이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7배나 열심을 품자. 교사들이 지각하고 교사들이 기도하지 않고 결석하고 교사들이 준비 없이 가르치려 한다면 그것이 범죄다.

② 부모들이 부지런하자.

집에서도 신앙 교육에 손을 거들어야 한다. 자녀들을 깨우고 옷을 입히고 차량을 탑승시켜 성경학교에 보내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학원에 보내는 가르침은 선택이다. 자기 소질을 살리는 재능 교육에 보내는 것도 선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않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하기는 필수다. 자녀들에게 계명과 율법을 통해 하나님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열성적 태도는 필수 과정이다.

여름성경학교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늦잠 자지 말라. 일찍 일어나라. 오히려 새벽 기도의 단을 쌓으라. 서두르고 준비하라.

③ 교회 성도들이 부지런하자.

가르치는 일을 위해 섬기고 돕는 모든 기관들이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가르치기가 온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인데 어떻게 무관심하고 태만할 수 있는가? 차량을 운전해 주고 밥도 해주고 부지런하여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자.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그것은 가장 집중된 시간이다. 이를 기회로 하나님 사랑하기를 가르치는 신앙 교육의 최선의 자리로 삼아야 한다. 나, 너, 모두 다 부지런하자.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는 일에 깨어 있자.
  

3. 시각화하여 가르치자. (신6:8~9)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손목과 이마에 붙이는 경문을 태피린(기도)이라 부르고 문설주에 붙이는 것을 메주자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 사랑하기,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내면화 작업이다. 부지런히 가르치기도 내면화 작업이다. 그러나 손목과 이마와 문설주에 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붙여두는 것은 외면화 작업이다. 외면적으로 나도 보고 자녀도 보고 공동체 전체가 보게 하는 시각화 가르침이다. 마음을 다하는 것은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품을 다하는 것은 힘을 다한다는 것은 신앙 교육에 한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유용한 원리를 다 활용하고 다 적용해 본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따라 시각화 작업에 순종했다. 그래서 말씀이 나의 신체의 한 부분에 내가 기거하는 출입문과 문기둥에 붙여 있다. 그러니 가죽통에 말씀을 넣어 매단 태피린, 메주자를 항상 보게 되고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온다. 도서관에 가도 거기에 따라오고 시장에 가도 따라온다. 말씀이 동행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페럼대학에 갔다. 거기서 대학생 청년들이 푸른 띠를 손목에 차고 다닌다. 서적 센터에 갔더니 그 띠를 판다. 띠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궁금하여 물어보니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고 적혀 있다. 이 띠를 메고 다니는 감리교 청년들은 어디를 가든지 시각적으로 이 가르침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이런 외면화 작업이 중요하다. 여러분의 팔뚝에, 이마에, 문설주에 붙이지는 못하더라도 가정의 실내를 시각화 하라. 성경구절이 담긴 액자를 걸라. 암송 성구를 냉장고 앞에 보여라. 여러분의 사무실, 그리고 자동차 안에도 시각화 하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크리스챤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기르침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부모가 되었다. 그 자녀들은 다시 부모가 되고 대를 이어 다음 세대에 또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훈계하였다. 가장 고난의 민족이면서 수 천년간 나라를 잃고 흩어져 살았으면서도 이 민족이 다시 일어나고 수억의 중동 땅에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먹히지 않고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민족으로 살아남은 것은 신앙 교육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민족의 희망이다. 모든 것을 가르쳐도 신앙을 가르치지 않으면 일등 국가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덜 가르쳐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면 사람 사랑도 하게 되고 일등 국가로 올라선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교화와 성도가 되도록 무장하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