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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도 바울 (살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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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도 바울 (살후 1:1~5)

사도 바울의 서신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건강한 신앙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는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마다 잘 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깨달음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위로 형들이 많았지만,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말이 성경구절에 없습니다. 오히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인생이 얼마나 헛된 짓을 많이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언제 순교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깨닫는 만큼 가질 수가 있습니다. 감사할 것이 아무리 많은 자라도 ?! 駭北? 못하는 자에게는 감사함이 없습니다.

멕시코에 가면 온천? ? 냉천이 나오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의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갑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관광객이 말합니다. “이 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찬물과 더운 물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쓰니까. 이 곳 사람들은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겠네요?” 그러자 멕시코 안내원이 말합니다. “천만에요.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관광객이 그 이유를 묻자 안내원은 “이곳 사람들은 비누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85년 전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마티는 재상의 직위에 있다가 자유적 사상가인 형 때문에 정계에서 쫓겨났습니다. 생활고를 겪던 그는 신발이 없어 맨발로 외출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 예배당 앞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감사한가! 비록 신발은 신지 못했지만 이렇게 두 다리가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감사를 깨닫는 신자가 되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

1.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이 성도들을 보면서 “우리 장로님, 너무 좋아. 너무 감사해.” “우리 권사님, 너무 좋아. 너무 감사해.” 이렇게 보기만 해도 감사하고, 생각만 해도 감사가 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생각만 해도 걱정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은 모두 다 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감사가 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왜 사도 바울이 생각만 해도 감사한 교회가 되었을까요?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좋아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 ?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많이 있 지만 믿음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천국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가장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이 믿음의 보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똑똑하다고 해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의심을 더 많이 합니다. 자신의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하니,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의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어도, 똑똑하지 않아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믿어집니까?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절대주권과 신실하심과 큰 사랑이 믿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 갈 때에 믿음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믿고 살아야 행복하지 믿지 못하면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불행합니다. 
어떤 의사는 부인이 의부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고 오는 남편을 끝없이 의심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며, 불안해합니다. 결국 우울증에 걸립니다. 남편을 믿지 못하니, 아무리 남편이 생활비를 풍족하게 가져다주어도 행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오면 천장만을 올려다봅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불안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식사도 하지 못합니다. 혹시 먹는 음식에 독약이 들어 있을까봐 음식을 못 먹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행기를 탔는데,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을 때 속더라도 믿고 사는 것이 낫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안죽는다고 믿고 먹는 것이 낫습니다.? 
믿음은 평안! 할 때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평안할 때는 오히려 믿음이 미지근해집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사는 사람은 별로 기도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만 하면,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혜 받을 기회도 없고, 믿음도 자라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환란과 시련이 있을 때 잘 큽니다. 왜냐하면 환란과 시련이 오면 평안할 때 보다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당하시는 분들, 병에 걸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분들, 사업에 실패하신 분들, 재난을 당하신 분들은 얼마나 사는 것이 힘듭니까! 그들은 부르짖으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다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다보면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환란을 겪어야 커지는 것입니다. 

영국의 조지 왕이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순찰하는 길목에 2개의 꽃병이 있었습니다. 한 도자기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으며, 생동감이 넘쳤고, 예술품으로써 그 자태가 출중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도자기는 우선 외모가 볼품이 없을 뿐 아니라 빛깔조차도 흐릿하고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지 왕이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도자기는 이렇게 윤기가 나는데, 저 도자기는 왜 저렇게 볼품이 없는가?” 그 물음에 안내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윤기 나는 도자기는 불에 구워졌기 때문에 윤기가 나고, 저 도자기는 아직 불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가 나질 않습니다.” 

여러분, 환란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시련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빛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2. 사랑이 더욱 풍성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 하반절을 보면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사랑이 성장합니다. 예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믿음이 자라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열심과 믿음을 혼돈하는 것입니다. 열심이 있다고 해서 믿음이 다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열심?! ?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산주의자들, 이단 교인들, 선거 운동하는 후보들, 싸우는 사람들 모두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열심과 믿음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올바른 믿음의 성장은 열심만 보아서는 모릅니다. 사랑이 풍성해 졌다고 하면 그 사람의 믿음은 확실히 성장한 것입니다. 옛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서 눈물 흘려 기도하고, 원수를 위해서 축복 기도하는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축복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13:34~35를 보면,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3. 박해와 환란을 당하면서도 잘 참고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성장했느냐 보려면, 환란과 고난과 핍박과 시험을 잘 참느냐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만큼 오래 참고 잘 인내하는 것입니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성공을 합니다. 인내는 성공의 열쇠입니다. 

영국군이 전쟁에 참패를 당하여 거의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몇몇의 잔여병들이 모두 숲속으로 도망을 쳤는데, 그 중 ‘부수’ 장군도 함께 끼어 동굴 속으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참패한 것이 수치스러운 그는 칼을 빼어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동굴 어귀에서 거미가 거미줄을 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거미는 바람으로 인해 6번을 실패했으나, 7번째에 성공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부수’장군은 무언가 깨달은 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난 겨우 한 번 실패했을 뿐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 후 그는 다시 전쟁터에 나아가 대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인내는 사랑의 열매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만큼 오래 참을 수 있고, 사랑하는 만큼 고난을 견딜 수가 있습니다.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192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34년 동안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애니와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풍랑 속에서 애니는 벼락을 맞아 영구적인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워필드는 그런 아내를 위해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 동안 간호를 했는데, 결혼 생활 내내 두 시간이상 집을 비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이 고난을 참으며 견딜 수 있을까요?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은 기적을 가져 옵니다. 또한 인내는 소망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견딥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은 잘 참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결과를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 험한 일이 와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갈 곳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거리가 생겨도 걱정하지 않고, 불안해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대표 축구경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날 경기를 했기에 보지 못하고, 그 다음날 녹화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경기의 결과를 알려 주었습니다. 한국이 1:0으로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 날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참 부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과를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소망이 있습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고,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이 점점 더 자라나고,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고, 어떤 환란과 핍박과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견딤으로써 하나님 앞에 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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