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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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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 10:12)


호세아는 주전 8세기 중반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로는 남왕국의 이사야와 미가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 때에 모처럼 국력을 회복하고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북왕국의 번영은 왕과 백성의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보살핌 덕분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4장에 보면 “23)…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십 오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 일년을 위에 있으며 24)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증언합니다.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번영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열왕기하 14장 26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26)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안타까운 것은, 왕과 백성들이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마치 자기들의 능력으로 번영을 이룬 것처럼 자만하고 우상 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미리 이렇게 될 것을 계시를 통해 알았으므로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죄에서 돌이킬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이 때 호세아는 자기의 결혼 생활을 예표로 삼아 우상 숭배에 빠진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고멜이라는 행실이 나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데, 그 여인은 호세아의 사랑을 배반하고 가출하여 창기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호세아는 아내를 용서하고 포주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금 집으로 데려옵니다. 이런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생활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곧 남편을 배반하고 가출한 음란한 여인 고멜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부정한 아내를 사랑으로 용서해 준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살펴볼 호세아서 10장 12절 말씀 역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간곡한 권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첫 번째로,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마음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마음을 밭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한 것 역시, 우리 마음을 밭에 빗대어 한 말입니다. 히브리서 6장에도 우리의 마음을 밭에 비유합니다.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20)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마 13:) 

이처럼 우리 마음을 밭에 비유한 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로, 밭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식을 생산하듯이,  마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은 물론 육신의 생명을 보전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잠언 4:23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생명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이로 인해 우리의 영적 생명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 마음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아니하고 불순종한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밭은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 곡식을 생산할 수 있지 방치해 두면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가 되고 말듯이, 마음도 마찬가집니다. 항상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지키고 선한 생각으로 가꾸어야 은혜로운 상태를 유지해 나갈 수 있고 삶속에 아름답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잡초와 같은 무익하고 사악한 생각이 뿌리를 내려 마음을 점령하고 맙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선하고 생산적인 생각과 언행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창세기 4장에 보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4,5)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사란 제물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제물과 함께 그 사람의 마음도 바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예배 시간에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외딴 곳을 배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이 아직 기경하지 않은 밭과 같이 방치된 상태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설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자장가로 들리는 것 역시 우리 마음이 무뎌졌다는 증거입니다. 

사무엘상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지도자인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엘리 제사장을 제쳐놓으시고 아직 아무 경험도 없고 어린 사무엘을 불러 당신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엘리 제사장은 마음이 무뎌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였지만, 어린 사무엘은 마음이 정결하고 예민하여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동경하고 따라가면 욕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려면 우리 마음을 항상 새롭게 해야 합니다. 

농부들은 밭의 지력(地力)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이따금씩 객토를 합니다. 객토를 통해서 산성화된 토질을 중화시키고 척박해진 토질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토질을 개량한 후에 농사를 지으면 풍작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때때로 객토를 해야 합니다. 타성에 젖은 마음, 은혜가 떨어진 마음으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므로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여 받아 누림으로 우리 마음을 은혜로운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였습니다.  “묵은 땅”이란 불의한 마음을 말합니다. 당시 북왕국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정의와 윤리 도덕이 실종된 불의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하였습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생활을 가리켜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열매는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속은 썩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영혼을 곤비하게 할 뿐 아무런 선한 삶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묵은 밭을 기경하지 않고 그대로 씨앗을 뿌리면 곡식과 함께 엉겅퀴와 찔레와 쑥과 같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양분을 다 빼앗아 가기 때문에 추수철이 되어도 알곡을 거둘 수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묵은 마음을 기경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뿌릴지라도 마음속에 숨겨진 잡초와 가시나무의 뿌리가 함께 자라나서 말씀이 결실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에 헛수고에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묵은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씨앗 낭비입니다. 쓸 데 없이 수고하는 것이니 정력 낭비요 시간 낭비입니다. 

“저는 열심히 믿고 싶지만 왠지 잘 되지 않습니다”라고 하소연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묵은 밭에 파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회개로써 그 마음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밭에 깊이 뿌리내린 잡초와 찔레와 엉겅퀴를 뿌리 채 뽑아 버리듯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악한 생각들을 뽑아내 버려야 합니다. 못된 식물들은 씨를 뿌리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 잘도 자랍니다. 이와 같이 나쁜 생각, 교만한 생각, 불신앙의 생각, 게으른 생각, 완악한 생각과 같은 것은 방치해 두면 저절로 자라나서 머지않아 우리 마음을 다 점령해 버리고 맙니다. 

처음부터 묵은 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때는 자주 기경을 해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풍성한 결실을 거둔 밭일지라도 언제부턴가 묵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농부가 게을러서 그럴 수도 있고, 술과 도박에 빠져서 농사시기를 놓치고 만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무슨 까닭에선지 농사를 포기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묵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은혜를 체험하면 누구나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자 힘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게으름이 생겨나서 예배 생활을 등한히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주 교회에 나갈 것이 무어냐? 혼자 집에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두 번 예배에 빠집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교회 나가는 것이 싫어집니다. 

게다가 주일이 되면 영락없이 교회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 생깁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는데도 사소한 일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되거든 마음을 기경해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알고 회개로써 마음을 정리 정돈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구속받은 성도가 예배 생활을 등한히 하는 것은 그 신앙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증거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 시편 기자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대로, 우리는 회개로써 마음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를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8-9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나는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목욕한 자가 발만 씻으면 온 몸이 깨끗하듯이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은 성도들은 매일같이 그 날에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항상 정결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혹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악된 생활에 빠져 있습니까? 눈물로써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우리가 저지른 악한 행위에 대하여 통분히 여기는 마음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의 용서를 입게 됩니다. 

히브리어에는 회개를 나타내는 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하나는 “나함”이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애통하다, 슬퍼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범죄에 대하여 애통하고 슬퍼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숩”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대하 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언급된 것처럼 악한 길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구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회개인 것입니다. 

그리고 “메타멜로마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하여 염려나 근심하는 것 혹은 후회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둘째 아들이 잘못을 후회하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후회를 회개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나서 얼마 후에 그 일을 크게 후회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고는 밖에 나가 목매어 죽었습니다. 오토 마이클이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가룟 유다는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 후회를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혀 가시자 몰래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들어가서 일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던 중에 한 여종이 다가와서 “당신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자, 부인하였습니다. 세 번째에는 맹세하고 저주하고 부인하였습니다. 가룟 유다 못지않게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죄를 깨달았으나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메타노에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것에 대하여 다르게 생각하거나 마음의 변화가 일어남”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는 백성을 향하여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회개가 곧 “메타노에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회개란 자신의 죄에 대하여 거룩한 통회의 마음을 갖고 그 죄로부터 돌아설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 나서 이기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죄를 짓고 나서 그 결과가 불유쾌한 경우에 후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박을 했는데 돈을 땄으면 후회하지 않았을텐데 많은 돈을 잃었기 때문에 후회한다면 이런 후회는 회개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참된 회개를 하지 않고 반복해서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하여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죄를 지은 결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을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의 슬픔은 그 죄를 버리려는 진실한 소원이 수반되는 슬픔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참된 변화가 일어나서 그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때 회개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로써 마음을 기경한 사람은 이제 의를 심어야 합니다. 

호세아 10:12에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고 하였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지난날의 불의한 삶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죤 뉴톤은 노예 상인으로 불의한 생활을 하였으나 회개한 후에는 노예장사를 버리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졸라 자기 몫의 재산을 받아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로 허비한 둘째 아들은 가진 돈이 다 떨어지고 그 나라에 기근이 들어 들판에서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염 열매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처했을 때, 이 아들은 품꾼들도 양식이 풍부한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지친 몸으로 아버지 집을 향하여 돌아오는 이 아들의 모습은 진정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이 아들의 회개는 그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환대를 받는 것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의를 심는 것입니다. 

의를 심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불의를 회개했으면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고의 법칙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보니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보면,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고 하셨는데, 이 역시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의를 심는 것이 생각대로 수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괜한 고생을 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낙심치 말고 의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시편 126편에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신 대로 때가 되매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용해야 합니다.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죄인들에게 회개할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지금이 곧 하나님을 찾을 때다. 그러니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시는 권면입니다. 지금 돌아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귀를 막지 말고 곧장 일어나 주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이사야 55:6-7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것은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때 이를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회개의 기회는 종말론적인 기회입니다. 주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지체말고 회개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보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함으로 마음을 기경한 후에 의의 씨앗을 심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의를 비처럼 내려주사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밭을 깊이 갈고 좋은 종자를 뿌릴지라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무런 결실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때에 의를 비처럼 내려주사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레미야 4:3에 보니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 밭은 어떤 상태에 처해 있습니까? 혹시라도 묵은 마음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회개로써 기경하십시오. 불신앙과 교만과 나태와 욕심과 우상 숭배와 같은 가시나무의 뿌리를 캐내어 버리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지런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히 의를 심으십시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내리실 때 풍성한 긍휼을 거두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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