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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밤중에 부르는 노래 (행 16: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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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부르는 노래 (행 16:19~25)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씩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됩니다. 혹은 육신의 질병으로, 혹은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혹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으로 더 이상 어찌 해 볼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말기 암이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업을 하다가 벽에 부딪혔습니다. 빚 갚을 능력도 없고,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일들을 당하게 되면 어떤 이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아예 다 외면하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 자체를 포기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일 이런 일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00년 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한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습니다. 그 불쌍한 모습을 보다 못한 바울이 귀신을 쫓아내고 그 여종을 자유케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못된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해서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본문 22-24절 말씀입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우리가 함께 보는 본문을 보면 정말 상상이 안가는 아픔의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주도 보셨지만, 성령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는 것을 막으시고, 그를 유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유럽에 건너와서 처음으로 선교를 시작한 곳이 바로 빌립보라는 성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과 실라가 당한 어려운 시련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여기까지 이끌어 놓으시고,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핍박과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가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얼마든지 이런 핍박은 막아 주실 수도 있고, 피하게 해 주실 수도 있으실 텐데. 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토록 몸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실까"를 생각하면,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억울하게 잡혔습니다. 옷이 찢겼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옥에 갇히되,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그 발에 착고까지 든든히 채워졌습니다. 이런 억울한 옥살이, 언제 나가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를 막막한 순간에, 여러분, 별별 생각이 다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깊은 감옥에서 짐짝처럼 내동댕이쳐진 상태로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아프죠,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면서까지 순종하여 이 길을 왔는데 왜 이런 고난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 얼마나 통증이 심했겠습니까? 

25절에 보면 이 감옥 속에서 그들은 깊은 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 보면 ‘밤중쯤’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과 실라가 맞이한 이 ‘밤’은 호텔 방에서 누워있는 편안한 밤이 아니라, 내일이면 희망이 열릴 것을 기대하는 그런 밤이 아닙니다. 괴로운 밤이었습니다. 맞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서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의 밤이었습니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정말 두려운 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게도 환경과 처지는 달라도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습니까? 아니면 직장을 잃었습니까? 사업이 잘 안됩니까? 또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습니까?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30대 후반에 속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직장에 대한 환멸과 불만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밤이 오고있는 증거입니다. 30대 초기에 큰 꿈을 가지고 출발했던 직장생활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는데 어느덧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위기를 느끼는 가운데 "이것이 내가 쏟은 삶의 전부인가" 하는 환멸을 느끼기 시작할 때 밤이 온 것입니다. 아마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싫어하는 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의 밤을 주십니까? 인간은 밤을 통과하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고약한 기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의 자국을 남긴 큰그릇으로 쓰여진 사람들마다 다 밤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이 좋다고 하는 분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 밤을 통과하신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의 밤을 맞을 때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신앙의 공식처럼 기억을 해야합니다. 

하나는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상을 살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생을 끝마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은 나와 나의 필요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에, 정확한 때에 도와주시기 위해 늘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날 때 우리의 피난처 되신 주의 품에 바짝 다가가 안겨야합니다. 주님께 간구하면, 때를 따라서 채우시며 위로해 주시는 손길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당신을 주목하시고, 당신의 아픔을 소중히 여기시며 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시고, 정확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굉장히 큰 그림을 말합니다. 이 그림은 우리가 금방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고 해답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인생을 큰 그림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이 큰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 당대에서 보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름답고 선한 뜻과 큰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절망의 밤을 만난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25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합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무엇을 했다는 말입니까? 억울하다고 소리쳤습니까? 그 불쌍한 여인을 공연히 도와주었다고 후회했습니까? 자기를 감옥에 가둔 저 못된 사람들을 원망했습니까? 주님 위해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은 왜 이리 어려움을 주시는가 하고 불평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고난의 밤에 그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을 했습니다. 신음소리가 먼저 흘려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신음대신에 찬송의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온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고, 전도여행을 떠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온 소리는 신음소리 대신에 기도가, 원망이나 저주 대신에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같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그들은 당당하게 기도하고, 당당하게 찬송했습니다. 밤중에 지옥의 어두움이 전율을 느낄 만큼 그들은 능력 있는 기도와 능력 있는 찬송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나시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의 골고다를 향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무엇을 했습니까? 이제 고난의 아픔이 밀려올텐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그들은 찬양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성령 받은 사람은 찬양합니다. 성령은 노래하는 영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구원하셨습니까? 에베소서 1장을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해 놓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 치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긍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만 닿으면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천국의 거문고와 같습니다. 성도는 이미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큰 기대를 걸고 인생을 투자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데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다가와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래합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특이한데가 있습니다. 처절한 심령의 메아리가 동반됩니다. 밤중에 부르는 노래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파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은 은혜스럽지만 그런 찬송은 입에서만 나오는 찬송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밤에 부르는 찬송, 고난을 당할 때, 사랑하는 자를 잃을 때, 실패를 당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은 영혼에서 나오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 밤의 노래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이 밤중의 노래는 자신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도 구체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25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이들이 ‘계속해서’ 찬양을 했다고 표현합니다. 또 ‘듣더라.‘ 라는 단어를 보면 자세히 진지하고 주의하여 들을 뿐 아니라 기쁘고 기대하며 듣는다는 의미의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의 소리가 울립니다. 죄수들은 압니다.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아프며 그가 얼마나 좌절하고 있으며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신음소리대신 자신들의 영혼에 위로를 주는 음악이 들려집니다. 아니 위로의 노래가 아니라 희망과 구원이 선포되는 찬양인 것입니다.

이때 두 가지 측면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6절입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아-멘 여기 절망의 현장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내적인 기적입니다. 죄수들과 심지어는 간수들 마음에 묶였던 쇠사슬이 벗겨집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증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에 따스함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에 자유함이 전달되고 증거 됩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지진이 나며 모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에게 묶여 있던 고통의 착고들이 다 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유롭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놀라운 자유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소리를 들으실 때에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시며 모든 속박에서 풀어주시고 승리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30-31절 말씀을 봅시다.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옥문이 열리자 간수는 모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칼을 빼서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밤에 간수는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모셔다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옥문도 열리고 전도의 문도 열렸던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은 그야말로 복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바울과 실라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옆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들은 볼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변에 사는 예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주변에서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긍지와 능력을 생활에서 보여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참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인 줄 압니다. 가끔가다 극성스럽게 전도나 한 번씩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줄 압니다.

이제 우리는 지체말고 우리의 토굴을 기도와 찬양의 제단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된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이면 찬양과 기도의 소리로 가득한 처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의 찬양과 기도 소리를 매일 듣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들이 고단한 삶 속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아름다운 천국의 찬양을, 아름다운 기도 소리를, 감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인생의 밤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었던 다윗도 한 때 건강의 위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질병의 무게가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마음 마져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음부에 내려가지 않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 다윗은 그 문제를 그대로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찬양을 부릅니다. 시30:4-5절에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그는 고백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나에게 슬픔이 있지만,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기쁨이 온다는 소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밤은 반드시 밝아 아침이 됩니다. 오늘의 모든 고통과 역경을 하나님께서 다 제거해 주시고 찬란한 아침 햇살을 안고 기뻐할 날을 반드시 주십니다. 요즘 제 2의 IMF를 말합니다. 경제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권에도 IMF, 아니 총체적인 난국이라 해야 할 정도로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깊은 수렁이 패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 수렁을 벗어나면 또 다른 거대한 늪이 우리를 가로막지 않습니까?. 쇠고기 파동이 조금 수그러지는 듯하더니 북한의 총격사건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우리 민족을 분노와 절망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 수렁을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만큼 첩첩산중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소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절망은 없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절망 안에 가두어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절절한 외침을 기억해 보십시오. 

고후 4: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는 능력의 보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첩첩산중에서 빠져나갈 길을 모르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더 확실한 장밋빛 시대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고백의 찬양이 내 삶 전체가 되어야합니다.

인생의 밤이 왔을 때 노래하십시오. 밤은 잠깐 지나가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달라지며,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앞에 예수 믿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옥문이 열릴 것입니다./쇠사슬이 풀릴 것입니다./모든 불가능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찬양과 기도로 살아가는 우리 앞에, 날마다 능력 있는 삶을 사는 우리 앞에, 기적은 꼭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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