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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말씀 묵상 (눅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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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묵상 (눅 10:25~37)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진다. 좋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진다. 그러나 안 좋은 사람, 아름답지 않은 사람, 그리고 늘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지 않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완전하지 않다. 아무리 우리가 예배자라고 해도 지난 주에 죄 가운데 살았고 계속 부족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이면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이곳은 참으로 좋은 자리이다.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는 좋은 것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읽은 좋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어린 시절에 circus 단이 동네에 들어오면 온 동네가 기뻐하고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있을 줄 안다. 미국의 어떤 한 동네에서 5살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circus 구경을 하러 갔다. 그들은 매표소에 늘어진 줄에 서서 그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앞에 농부인 듯 초라한 옷을 입은 한 가족이 서 있었다. 올망졸망한 7-8명의 아이들과 부부가 기쁨 속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매우 행복해 보였고, 특히 아내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연신 남편의 얼굴을 올려보며 행복해 했다. 아마도 큰 마음을 먹고 돈을 준비하고 이 circus를 보기 위해서 먼 길을 온 것 같았다. 이윽고 줄이 많이 줄어 들고, 앞으로 있는 남편은 매표소를 바라보며 돈을 준비하였다. 순간 그 남편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아무도 그 상황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함께 온 아이들은 물론 행복해 하던 부인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 있던 소년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을 보고 상황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20 불짜리 지폐를 꺼내어 슬쩍 바닥에 떨러뜨리고, 앞에 있던 그 어버지에게 ‘아, 선생님 돈을 흘리셨군요’라고 하며 그 돈을 집어서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는 눈을 보고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앞에 있던 아버지는 참으로 큰 감사를 느꼈을 것이고 그는 눈으로 그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물론 그 가족은 그날 circus 구경을 잘 했지만, 20 불을 전해준 아버지와 소년은 그냥 집으로 돌아야만 했다. 그 ‘좋은 사람’ 덕분에 시골에서 올라온 한 가족은 너무도 행복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좋은 사람은 주위를 행복하게 한다. 그 부자는 그 날 circus를 관람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다음 날에는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단 돈 20 불을 가지고 매우 훌륭한 자녀 교육을 한 셈이다. 그 20 불은 그 소년에게 대단히 큰 impact을 주었을 것이다. 이같이 부모가 좋은 생각을 갖고 좋은 행동을 한다면 자녀 교육은 스스로 되어진다.

우리의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가족이 그렇고 부모들이 그렇고 형제 자매가 그렇다. 부모들은 평생 우리들을 감싸고 살아가신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은 분인가? 그 분은 우리의 영육을 평생토록 감싸고 보호하신다. ‘당신의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당신은 주위에 있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며 살고 있는가?’라고 말해야 올바른 질문이다. 우리는 선입관념과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참으로 많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내가 먼저 따뜻한 말을 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아주 쉽게 좋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은 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주신다. 그런데 그 좋은 선물을 주시는 channel이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창세기1:31을 보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 때의 세상은 좋았고 행복했다. 하나님은 이 좋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 세상이 인간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깨어지고 어그러져 갔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셨다. 그 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셨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 그 때에 주님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떠나신 것이 아니다. 자신이 육신으로 함께 있는 것보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가르치고 함께 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말씀하셨다. 

요14:26을 보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이시기 때문에 여러 곳에 함께 있을 수 없지만, 성령 하나님은 어디든 함께 계실 수 있는 분이다. 그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Channel은 모두 세 가지이다. 
(1)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2)성자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셨다. 
(3)성령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깨닫고 가르치셔서 그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박동치게 하신다. 

우리는 말씀이 진리이며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자식의 문제에 대하여 꼼꼼히 신경을 쓴다. 왜 그런가? 자식은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중요하다고 믿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 성경을 꼼꼼히 읽고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한 주 동안 얼마나 깊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였는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성경 말씀이 생각 나던가? 생활 속에서 성경을 펼쳐서 읽어보기는 했는가? 좋은 하나님께서 좋은 선물을 주시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을 통해서 주신다. 갈급한 심령으로 말씀을 사모하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셨을까? QT는 하셨을까? 물론이다. 아주 깊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씀하셨다. 부자 지간의 관계가 나쁘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관계가 어그러지면 말이 통하지 않는 법이다. 반면에 관계가 좋으면 말이 잘 통한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의 말은 다 믿는다. 그러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말한다면 그가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과 관계가 깊어지고 좋아지는 것이 삶의 행복이다. 관계가 좋고 깊은지는 말씀으로 검토해보면 안다.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물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가장 관심 있는 것을 해결하려 애쓴다. 그 율법사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영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주님은 이러한 우리를 향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다’라는 단어에 은혜를 받았다. 이것은 주님께 가지고 가지 못할 문제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큰 문제라도,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우리는 그 문제를 주님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대입되고 적용되기를 원한다. 이제 율법사를 향한 주님의 대답을 보자. 

오늘 본문의 26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주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가?’라고 물으셨다. 주님은 내가 해결해주겠다고 하지 않으셨고, 그 율법사를 율법으로 인도하셨다. 즉 말씀으로 안내하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올 때에 우리가 이를 즐기며 흐믓해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들의 시선을 옮겨주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으로 들어갈 때에 그곳에 있던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에 사람들은 놀라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때에 베드로는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낫게 되었다’고 하였다. 

교통 표시판은 절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멋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멋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간단하여 누구나 한 눈에 그 정보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절대로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바로 그런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내게 있는 좋은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주님을 소개하면 늘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주님은 이제 두 가지로 된 질문을 하고 있다. (1)말씀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2)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는가? 첫째 질문은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 보자는 것이다. 내 상식으로 보면 성경은 상당 부분을 잘라 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상식, 내 지식, 내 이성으로 말씀을 보지 말아야 한다. 둘째 질문은 나에게 이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희망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와닿기를 희망하시고 소원하신다. 

이제 율법사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 27절을 보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역시 율법사였다. 그의 대답은 정답이었다. 

이제 28절을 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3 개의 중요한 단어를 골라보자. ‘옳도다’, ‘행하라’, 그리고 ‘살리라’이다. 주님은 ‘너의 대답이 맞다. 그런데 옳은 답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성경 지식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나를 행복하게 할 성경 지식을 얻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대략 1년 정도? 1년 동안 선포되는 말씀만 잘 들어도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성경 지식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게 되고 문제는 해결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율법사에게 아주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정확한 해결책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말씀을 적용하지 못한다. 

그 율법사는 오히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토론해봅시다’라고 화두를 돌리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과연 편안한가?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신앙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이 다가오면 내게 찔림이 되는 것이다. 말씀 앞에 내 자신을 open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가 좋지 못할  때에 자꾸 찔리는 말씀을 듣는다면 사람들은 슬쩍 피한다. 

신앙생활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피하지도 말아야 한다. 아무튼 그는 누가 진정한 이웃인지를 토론하자고 제안하였고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과연 누가 이웃인지를 되물으셨다. 그는 토론하려고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토론을 원하지 않으셨다. 말씀을 하신 후에 ‘누가 이웃이냐’고 물으니 그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37절을 보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역시 중요한 세 가지의 단어를 찾을 수 있다. 그것들은 ‘가서’, ‘너도’, 그리고 ‘하라’일 것이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서 작동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쓸 것 없이 너 혼자만 아름다워지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천을 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비어 있는 상태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둘째, 그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셋째,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이 정도면 우리의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늘 현재 진행형으로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문제라도 주님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묵상하고 QT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이 축복을 받을 것이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전환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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