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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기 (시 25: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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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시 25:15~19)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루터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청결하고 질서가 있었습니다. 20년 전 방문했을 때는 너무 깨끗해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번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그냥 정돈이 잘 되어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거리의 청결과 질서도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공항에서 렌트카를 했습니다. 수준 높고 까다로운 독일의 헤르츠사에서 추천한 것은 기아가 만든 소렌토였습니다. 그 차로 아우토반을 사정없이 천 킬로미터 이상 달렸습니다. 독일차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습니다. 유럽의 물가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거의 갑절 정도였습니다. 휘발유 값도 1.6배가 비쌌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된 것을 감사합시다. 

루터는 <타임즈>를 비롯한 많은 매체가 선정한 서기 천 년과 이 천년 사이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에 의해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어려서 학교 다니던 곳, 가르치던 대학, 시무하던 교회와 교회 본당 뒤편에 있는 무덤, 암살을 피해 숨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던 은거지를 갔습니다. 500년의 긴 시간을 뛰어넘어 그분의 숨결을 느끼게 했습니다. 

루터는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보통 사람입니다. 전혀 종교개혁을 일으킬 생각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요즘 인터넷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습니다. 떼거지로 몰려들어 위해를 가합니다. 얼마 전 방콕 거리에서 부처상 부수는 어떤 사람을 주위에서 쳐 죽였답니다. 당시도 교황 향해 잘못 말하다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바른 지식을 줍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가톨릭이 잘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개혁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 있어야 합니다. 모든 좋은 일, 특히 구원은 마음 정하고 훈련하고 희생하고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루터를 삶은 전체가 거룩한 용기였습니다.


1. 미신적 신앙을 극복하라

마르틴 루터는 1483년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말단은 아니었지만 가난했습니다. 어머니는 충실하였고 엄격하고 완고했으며 신앙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미신적이라 자녀들에게 하나님뿐 아니라 성자들에게도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경건한 중세기적 가톨릭교 가정교육은 루터의 마음과 정신에 깊이 박혔습니다.

루터는 공부하기 위해서 자신을 지원해줄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비를 마련할 정도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러다가 15살부터 3년 동안은 부유한 상인의 아내인 우르술라 코타(Ursula Cotta)의 경건한 가정에서 살면서 아이제나하(Eisenach)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대학 갈 때까지의 이 기간을 평생 행복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루터는 뜻을 두고 도전하는 용기를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거기서 60킬로미터 떨어진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합니다. 아버지는 그가 법학을 공부해서 높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생깁니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도중에 친구가 벼락을 맞자 두려움에 소리칩니다. “성 안나님 살려주세요 그러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성 안나는 광부들을 돌보는 성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멀어서 성자에게 기도해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서원을 한 뒤에 루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를 실망시키면서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안나처럼 성자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그 방법은 착한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미신이었습니다.

이슬람도 착한 일 많이 해야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면 착한 일과 악한 일을 전부 저울에 답니다. 저울이 기울어지는 쪽으로 갑니다. 모든 종교가 다 이렇게 믿습니다. 죄인인데도 선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죄요 악입니다. 죄인이기에 시작부터 다 잘 못되어 욕심이요 음란이요 미움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수도하면 점점 좋아져서 근본이 바뀐다고 가르칩니다. 흑인은 피부를 희게 하지 못합니다. 표범이 그 점을 없애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은 근본을 바꾸지 못합니다. 성경이 지적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 수준미달입니다. 다 더럽고 악하고 무능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대로는 착한 일을 해도 시늉뿐입니다.

잘 살고 싶어도 안 됩니다. 공부 잘하고 싶어도 건강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늙기 싫어도 안 됩니다. 착한 일도 그래요. 잠시 흉내는 내지만 금세 다시 죄인으로 돌아갑니다. 흑인은 영원히 흑인입니다. 표범은 영원히 표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수도를 해도 여전히 죄인입니다. 이걸 모르면 평생 믿어도 그 수준입니다.


2. 늘 신앙으로 개혁하라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루터는 깨닫습니다. 하루 일곱 번씩 예배합니다. 금식으로 위가 다 망가졌습니다. 그래도 옛날과 다른 게 없어요. 죄인인 증거로 우울하고 슬프고 무력하고 화가 납니다. 당시의 선행으로 최고가 성지 로마를 순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아니 로마에 사는 사람들 자체가 더 악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 나오고 예수 믿으면서 그런 문제들이 해결 되나요? 아니면 별로 달라진 게 없나요? 불신자들이 칭찬하나요? 아니, 어떻든 행복하고 잘 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그저 종교 일반을 믿는 사람일 뿐입니다. 교회에 속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루터가 해결했나요?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이나 일반 종교에서 진리로 변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바뀌고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능력자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 됩니다. 영원한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매일매일 승리하게 됩니다. 물론 완전하게 다 얻지 못했어도 그 맛을 보면서 삽니다.

루터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진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됩니다. 아무 죄도 없는 순전한 사람입니다. 그분이 예수입니다. 그리고 자기 몸에 우리의 죄를 짊어집니다. 슬픔과 실패와 무능과 악한 마음을 다 가져갑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벌겨 벗겨 못 박힙니다. 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늘 듣는 말인가요? 적용을 시켜야 합니다. 예수 때문에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정말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그래요. 믿어야 현실이 됩니다. 믿음이 없어도 마음에 담고 거기 맞추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세요. 그러면 그 열매가 나옵니다. 예수는 나를 위해 버림받고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장하고 누려야 합니다.

“예수의 영이 들어와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 자식이다. 이 사실을 믿고 도전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것이 루터가 다시 찾아낸 진리요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원리입니다. 이대로 적용하지 않고 계속 순전한 내 힘으로만 행복하려고 한다면 그 원리를 적용 못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적용해야 합니다.

신앙개혁의 원리가 무엇인가요? 예수가 행하신 모든 일이 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예수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예수처럼 의롭고 예수처럼 능력 있다. 나는 행복하고 평안하고 잘 될 자격이 있다. 믿음이 안 일어납니까? 그래도 이 지식은 세상 지식이 아닙니다. 계시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간직하고 그대로 적용하도록 노력하세요. 엄청난 힘입니다.


3. 믿음의 방법을 사용하라

루터 당시 교황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신축해야 하고요 자신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면죄부를 팝니다. 그 증서를 사면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천국에 갑니다.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 살 수도 있습니다. 면죄부 파는 사람이 동네에 오자 루터는 비상이 걸립니다. 95개 조항을 시무하는 교회 정문에다 붙입니다. 자기 교인들 보라는 겁니다.

95개 항목이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면죄부나 선행이나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오직 예수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믿고 회개해야 한다. 교황이나 신부들은 죄를 사할 권세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수의 피로 사함 받았음을 선포하는 권세가 있을 뿐이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당시로서는 유럽전체에 파문을 일으키는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당시 “이건 아닌데” 하는 모든 사람들이 루터 말에 공감합니다. 루터는 놀랐습니다. 본래 그 목적이 아닙니다. 자기 교인들 보호하려고 써 붙였습니다. 이제는 전 유럽이 알아버렸습니다. 황제와 교황이 소환장을 보냅니다. 죽이겠다는 사람도 수없이 나타납니다.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겠습니까? 여러 사람이 그렇게 소환 받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루터는 두려웠습니다. 자신은 일개 수도사요 하급신부입니다.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더 두렵습니다. 황제나 사람들은 루터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혼까지 죽입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루터를 죽게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개혁에 승리할 힘을 줍니다.

루터처럼 목숨이 걸린 일 아닐 수 있습니다. 그냥 일상적인 고통일 수 있습니다. 가정문제입니다. 회사의 일입니다. 교회일입니다. 그냥 나 혼자 경험하는 문제입니다. 우울하고 슬픕니다.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세요.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 나를 주장하세요. 새 삶이 열립니다.

무엇이 용기인가요? 자신의 약함에서 예수를 보세요.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내 마음의 근심이 많습니다.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원수가 많고 내 힘은 약합니다.” 이 상황에서 할 일은 예수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 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용기는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나의 문제를 극복하나요? 걱정 말고 하나님만 선택하세요. 그러면 참된 용기가 나옵니다. 전쟁에서의 용기 정도가 아닙니다. 영적인 힘이 나와서 모든 것을 바꿉니다. 어떤 문제든지 극복합니다. 루터처럼 하세요. 믿음의 원리는 살 용기를 줍니다. 모든 전쟁을 극복하고 루터처럼 위대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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