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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라 하시는 이유 (왕상 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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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라 하시는 이유 (왕상 3:3~10)


영국의 ‘템플’이라는 목사가 ‘켐브리지’ 대학에서 설교 부탁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재들이 모인 그 곳에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준비를 했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따져 물었습니다.

"목사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 응답이란 실제로 응답되는 게 아니고 우연히 그저 그렇게 요행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청년의 말에 템플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거라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네." 

그 말씀으로 인해 그 집회에 큰 은혜가 쏟아졌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생각으로만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육신으로만 사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낮 예배에 기도의 효용성(效用性)에 관한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막연한 소원 빌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먼저 받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7절에 보면 “구하라 주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구하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다른 종교에도 기도는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미신에도 기도는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기도와 본질적인 다른 점은 “그들의 기도는 막연한 소원 빌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려니 하고 지성 드리는 일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물질과 땀을 흘립니까? 

언젠가 어떤 분이 자기가 신봉하는 우상에게 3천 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천 배를 하고나니까 허리와 무릎에 병이 났습니다. 말이 3천 번이지 한번 꿇어 업드렸다가 일어났다가 하는 일을 쉬지않고 3천 번 해보십시오. 어지간한 정성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원을 빌기 위해 우상 종교에서 드리는 지성은 가히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신들은 살아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살아있는 영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우주의 역사와 인간사에 절대적인 권세를 갖는 신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상대적인 것이 있고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절대적인 신이 계시고 상대적인 신들이 있습니다. 영어에서도 절대적인 신과 상대적인 신을 구분하여 표기합니다.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God 으로 표기하여 대문자로 처리합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많은 신들 또는 영적인 존재들을 표기할 때는 소문자로 god 으로 표기합니다. 

우리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고 우주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동정녀를 통해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절대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응답을 약속하시면서 우리들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은 두가지의 의미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신뢰가 깊어집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 깊은 신뢰 관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정작 실제적인 삶에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 사이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의심하는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한 여행자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가장 자리에 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굴렀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는 간신히 매달렸습니다. 아래는 천길 낭떨어지 나뭇가지를 놓치거나 부러지면 그의 목숨은 없는 것입니다. 

그는 겁에 질려서 “거기 위에 누구 없습니까? 누가 날 좀 구해주세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오 하나님! 당신이 거기 계셨군요.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를 좀 구해주세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으로부터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구해 주마.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너는 나를 믿느냐?" 

여행자는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 아니라 새벽 기도회에도 나갑니다. 매주일 헌금도 꼬박 꼬박 드립니다." 
주님이 다시 "네가 정말로 날 믿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역시 “예!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라고 온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그러자 다시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네가 정말 나를 믿는 다면 지금 네가 붙들고 매달려 있는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 그러나 그는 한 참 동안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누구 다른 이 없소!"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예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마음속에 감정적으로 간직하거나 머릿속에 논리적인 형태로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인 신앙이든 논리적인 신앙이든 자신이 믿은 대로 행동하고 믿은 만큼 의지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행동이 없으면 그 믿음은 헛것입니다. 

믿음은 그 자체가 주관적이어서 마음에만 간직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그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화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정말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 과감하게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지금 당장 붙들고 있는 작은 나뭇가지 만큼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은 구호가 아닙니다. 표어도 아닙니다. 실제 삶이요 실제 생활에 적용되어져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실 것” (빌4:6-7) 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정작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염려와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기도하면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기도해놓고도 의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신뢰가 쌓여갑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깊어집니다. 즉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이 깊이 믿어지고 하나님과는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집니다.
 

2. 사랑이 깊어집니다. 

둘째는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사랑이 깊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신뢰 관계가 생기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본문 6-9절 까지는 이야기는 솔로몬이 기브온 성막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10절에서 솔로몬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리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에 있었습니다. 

3-4절을 읽어봅시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더라” 라고 했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 동기, 기도하는 동기가 바로 여호와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드린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 기도 자체가 사랑의 표현입니다. 

① 받은 은혜를 감격해 했습니다. 

왕상3:6절에 보면 솔로몬은 계속해서 은혜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자신의 아버지 다윗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자신의 부친 다윗 때부터 베푸신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감격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②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기도입니다. 

왕상 3:7-8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라고 했습니다. 

아이라는 말은 년령으로 어리다는 말이 아니라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수효가 많은 큰 백성”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은 이스라엘은 큰 백성이 아닙니다. 당시 애급이나 기타 이스라엘보다 더 숫자가 많은 민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주의 빼신 백성” 이라는 표현을 함으로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크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③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사랑의 기도는 자기 욕심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근거하여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5절에 보면 일천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게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신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말만해라 다 줄게 이런 뜻이 아닐까요?

다윗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들으신 하나님이 다윗의 기도 내용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 

사실 왕으로서 명예나, 원수를 이기는 일이나, 부와 장수 모든 것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이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뿅가게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기도 즉 사랑에 근거한 기도 제목입니다. 
자기 욕심에 찬 기도는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근거한 기도는 자기 욕심을 구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는 모든 일에 감사 그리고 겸손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갖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열심히 기도합시다. 믿음이 깊어지고 사랑이 깊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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