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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시선을 고정시켜라! (삿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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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선을 고정시켜라! (삿 11:1~3)  

 
믿음의 사람은 "나는 내 속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만났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설교를 들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을 체험하셔야 합니다.  종교 놀이, 종교 의식을 하려고 하지 말고 생기를 호흡해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체험을 한 제자들은 "나는 믿지 못하더라도 내 속에 있는 생기의 기적만은 믿으라"고 하면서 증거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느 시대든, 어느 누구든 생기가 들어가면 살아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기가 되시는 성령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시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여! 내 심령에 성령을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 부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원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기적, 무슨 기적해도 가장 확실한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최고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가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온갖 질병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환경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악한 세력들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여러분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온 몸에 전율을 느낍니다.  멸망 받을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 십자가의 말씀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겠습니까?  저들이 우리를 보았을 때 우리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구원받은 우리가 믿지 않는 저들을 바라보았을 때, 세상에서 저들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세상에서 잠시 어려움을 당하겠지만, 저들은 죽음 이후에 영원히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잠시 머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잠시잠깐 후에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과 멸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고통과 멸시를 받을지라도 곧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신랑되신 주님과 함께 면류관을 쓰고 영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어리석게 여겼던 십자가의 말씀이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이 십자가의 말씀은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저주의 사슬이 끊어지고 축복의 통로로 변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여러분의 팔자가 바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복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강단에서 우리들에게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십시오.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만큼 들을 수 있습니다.  듣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의 세계는 체험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기만 하면 지금보다 좀 더 간절히 매달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의 소리를 듣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주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믿고 순종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애쓰고 매달려야 됩니다.  답답할수록, 캄캄할수록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 삶의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 삶의 승리를 간구하는 상한 심령들에게 영적 비밀을 전하는 도구가 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생애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미래입니다.  그런데 미래라는 도화지에는 색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미래라는 하얀 도화지에 색칠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똑같이 받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오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 미래가 어떻게 다가오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미래는 믿음대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사고의 변혁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이고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학대하거나 비참한 존재로 낙인찍지 마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축복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세워줍니다.  "나는 이 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내 영혼아, 주 안에서 잘 될지어다!"  낙관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 안에서는 "예"만 있지 "아니오"는 없습니다.  믿음은 산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결코 이류 인간의 태도를 취하지 마십시오.  이류 믿음을 택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은 일류 인간입니다.  일류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실패자를 승리자로 바꾸는 곳입니다.  사람이 바꾸지 못하고, 물질이나 명예가 바꾸지 못하지만 복음이 들어가면 바뀌어집니다.  실패자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변명의 병입니다.  태초에도 변명이 있었습니다.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은 아담은 하와 탓으로,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명하는 습관을 버리십시오.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 변명을 하는 사람은 결코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속죄양으로 세울 때에 죽으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속죄양이 된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를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했지만, 창과 칼을 들었던 로마의 권력과 정부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속죄양은 승리합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쓰지 못할 속죄양은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속죄양으로 선택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감사함으로 속죄양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믿음으로 가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가 형통합니다.  속죄양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자는 즐겨 실패자를 부르고, 성공자는 즐겨 성공자를 찾게 됩니다.  참새는 참새끼리 모이고, 학은 학끼리 모이듯이 유유상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자신이 세상 그룹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썩은 사람과의 교제는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의식개혁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과 어울려야 합니다.  삶의 꿈이 큰 사람과 어울려야 합니다.  사랑의 정열이 넘치는 사람과 어울려야 합니다.  기억할 것은 나쁜 사람들을 찾으면 나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찾으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정열이 넘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삶의 꿈을 크게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 역사에 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참으로 어두웠던 시대에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암울했던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을 성경은 '사사'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사사기 3장 1절 이하를 보면 사사기 등장하게 되는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그러니까 이들은 가나안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왜 그토록 피 흘리며 전쟁을 해야 했는지 그 이유와 성격을 알지 못하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우리 백성이 왜 애굽을 떠나야 했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지 그 목적을 알지 못하는 세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들이 이 가나안 땅에서 어떤 나라를 세워가야 하는지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세대를 소위 다른 세대, 신세대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  가나안 백성들을 쫓아내기는 커녕 그들과 하나가 되어서 어우러져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타락한 문화를 배우는가 하면, 오히려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신세대 남자들은 이방 딸들을 아내로 삼아 가정을 이루었고, 이스라엘의 신세대 여인들은 이방 족속 가정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가치관의 혼돈이 있었습니다.  풍요의 가치관, 재미의 가치관, 성공의 가치관으로 그들의 신앙체계가 뒤죽박죽 되고 말았습니다.  유일하신 야훼신앙이 혼합종교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타락한 가나안의 가치관, 이방 신들의 종교와 싸우고 그것을 쫓아내라고 했더니 아예 한통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름하여 적과의 동침입니다.  유혹과 맞서 싸우라 했더니 오히려 유혹을 환영하고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읽어내려 가다보면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나옵니다.  '또' '다시'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야샤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또 또 또 다시 다시...  사사기가 끝날 때까지 이 단어는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사사시대의 범죄의 악순환, 타락의 싸이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범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징계를 받습니다.  아프다고 울다가 회개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자 사사를 보내주시고 백성들을 평온 가운데 지켜주십니다.  사사기는 이 싸이클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인생 싸이클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평온할 때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범죄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습니다.  때문에 인생에서 실패의 쓴맛과 고통으로 울다가 회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또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징계를 받고, 회개하고, 은혜를 받고.....

오늘 본문이 시작되기 전인 10장 6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하고 우상숭배를 한 결과 암몬이라는 이방 나라가 강해졌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대적이 자라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떠나면 우리 주변에는 악한 세력들이 강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약해지면 사악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변의 적들을 섬멸하기에 앞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스려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변의 모습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사회와 개인의 주변에 악이 존재하고 언짢은 일들일 일어날 때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범죄함이 어둠과 악의 세력들이 강건함을 키우는 불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파괴와 멸시와 조롱과 절망의 세력들이 판을 치는 것은 평화와 사랑과 희망을 주어야 할 믿음의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서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가정의 문제, 내 자신의 삶의 모든 문제는 다른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불순종과 범죄 때문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자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처음에 겸손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이후에 교만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흩어질까 두려워서 인간적으로 보기에 좋은 듯해서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좋은 것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내가 좋은 방법으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실패한 왕으로 남아야만 했습니다.  바로 불순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순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순종을 미루는 것도 불순종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언젠가는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또한 불순종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것도 불순종입니다.  얼마나 성격이 급한지 일은 자기가 다 벌여놓고 주님이 빨리 오시지 않는다며 주님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다 벌여놓고 하나님께서 빨리 정리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민감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최고의 축복과 행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따르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의 8대 사사인 입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입다는 첩의 아들인 서자 출신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저주하는 기생의 아들입니다.  이복 형제들의 따돌림과 차별 때문에 고향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돕 땅, 사람이 살기 힘든 산악지대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이복 형제들의 눈을 피해서 쫓겨난 한심한 처지인 그에게 잡류들이 모여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건달, 또는 백수입니다.  한 마디로 입다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최악이었습니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차별 받도록 태어났습니다.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말 불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성경은 입다를 가리켜서 '큰 용사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환경과 상황이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큰 용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입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깨뜨리는 힘은 믿음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도 그 인격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소유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워하면 환경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을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으로 느껴집니다.  두려운 하나님으로 알았을 때는 영적으로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축복이요, 그분을 가까이 해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랑하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아프면 차라리 자기가 아픈 게 낫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고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하나님을 알아 가십시오.

입다가 최악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큰 용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입다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을 조금 넘어서 11장 9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입다는 장로들과의 대화에서 승리는 여호와께 달려있다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11절에서는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입다의 삶을 보면 그의 환경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엎드려 기도하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환경의 장애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시선을 바꾸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시선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만 고정되어 있을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환경에 두지 마십시오.  세상에 두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시선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고정시키면 비록 여러분이 아골골짜기를 걸어갈지라도 마음에는 평안이 가득할 것입니다.  입술에는 찬양과 감사로 충만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환경의 장애를 뛰어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꺾이지 않는 힘은 오로지 믿음에서만 나옵니다.  믿음은 모든 운명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장애를 뛰어넘게 하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반대로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썩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으로 우리를 썩지 않게 만드는 영적 방부제는 믿음입니다.  우리 안에 믿음만 있으면 아무리 주변 환경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버틸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일어서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주변 환경을 평가하기 전에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평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큰 믿음, 살아있는 믿음, 천사도 흠모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시선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고정시키십시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믿음이 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11장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4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믿음의 사람인 입다는 결국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역사 안에서 목적을 가지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도달하는 결론은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런 능력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신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의 교회에 너무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신이 무엇입니까?  불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선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고정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결국에는 스스로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시선을 고정시켜 보지 않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없어도, 부족해도, 연약해도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데는 일등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풍랑이 휘몰아쳐도, 삶이 곤고해도, 믿음의 사람은 그의 시선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전파가 있지만 그것들을 다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수신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수신기의 성능이 나쁘면 전파가 잡히지 않습니다.  성능이 좋을수록 전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수신기가 필요합니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로 고정시키십시오.  당신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고정시키면 그때부터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은 잘 사는 것보다 바로 사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고정이 되면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인생의 사는 목적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믿음의 눈을 하나님께로 고정시키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모든 사람 앞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반드시 승리했던 승전보를 안고 가야 하는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요, 순종의 싸움이요, 믿음의 싸움입니다.  비전의 싸움이요, 꿈의 싸움입니다.  사명의 싸움이요, 소명의 싸움입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는가?
그래서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했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자원들,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왕되게 했는가?
내가 왕이었는가, 하나님이 왕이었는가?
이 싸움이 본문에 나타난 사사기의 싸움이요, 오늘 신앙인의 싸움이요, 나의 싸움이요, 너의 싸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엄청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무서운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과 좌절과 낙망에 부딪힐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당신의 시선을 하나님에게로부터 거두어들이지 마십시오.  인생의 어떤 위기를 맞이할 때에, 어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고 할지라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시선을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만 고정시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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