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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피로를 느끼는 사람을 위해 (마 11:16~19, 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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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피로를 느끼는 사람을 위해 (마 11:16~19, 25~30)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6-19)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5-30)

최근에 제2의 후천성 면역결핍증으로 불려 지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 중의 하나가 ‘만성피로증후군’입니다. 미국은 1987년 이후 이 만성피로를 우선순위 제일의 대유행병으로 지정하고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질병통계소(CDC)에서 최우선으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환경오염이나 심한 스트레스 등에 의하여 우리의 면역기능의 이상(immune dysfunction)으로 나타나는 질병인데, 전염병은 아니지만 제2의 후천성면역질환으로 분류할 만큼 현대사회의 심각한 질병입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이유 없이 피로가 잘 풀리지 않고, 아무리 잠을 자도 시원치 않으며, 두통이 자주오고 근육통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질환인데 미국 질병통계소에서는 다음의 8가지 진단기준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①자각증상으로 느끼는 기억력, 집중력의 감퇴 ②목이 자주 아프고 ③임파선이 아프고 ④새로운 유형의 두통 ⑤자도 개운하지 않는 잠 ⑥운동 후의 불쾌감 내지는 심한 피로감 ⑦근육통 ⑧돌아다니고 붓지 않는 관절의 통증 등, 이러한 증상들 중에서 4가지 이상이 6개월간 지속되면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진단하고 전문병원을 찾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박태홍, 만성피로 클리닉 제공). 

‘만성피로’의 원인은 독성물질이 심하게 배출되는 환경, 특히 공단 주변의 사람들이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농약에 심히 노출되어 있을 때 걸릴 확률이 크지만, 지금은 학교 교사, 의사, 간호사, 변호사, 법관, 목사, 사무실 근무자뿐만 아니라, 마라톤 선수처럼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언제, 어디서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질지 모르는 예측불능의 병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많은 숫자가 ‘잠재성 만성피로증후군’에 걸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극심한 피로나 스트레스 등이 만병의 원인이기 때문에 피로가 오면 너무 무리를 하지 말고 “네 몸의 말을 들어라”(Listen to your Body)라는 말을 잘 기억하고 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다가오는데 좋은 휴가를 계획하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피로나 스트레스는 대개 세 분야에서 옵니다. 신체적 피로(physical fatigue), 정신적 피로(mental fatigue), 그리고 감정의 피로(emotional fatigue)가 그것들입니다. 여기서 신체적 피로보다는 정신적 피로와 감정의 피로가 훨씬 더 우리의 건강을 빼앗거나 고갈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질병 통계소는 말하고 있습니다.

1863년 미국의 남북전쟁이 전 국토를 휩쓸고 전쟁의 끝이 아직도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은 참모들과 보좌관 노아 브룩스(Noah Brooks)와 함께 말을 타고 전선을 시찰하고 있었습니다. 브룩스 보좌관은 링컨 대통령이 피로에 쌓여 창백한 얼굴이 되었음을 보고 백악관에 돌아가면 잠시 쉬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휴식이라, 나는 휴식을 모른다네. 아마 그것은 몸을 위해서 매우 좋은 것이겠지. 그러나 내게 피곤한 부분은 나의 내면, 즉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네.”(A rest, I don't know about a rest. I suppose it's good for the body, but the tired part of me is inside and out of reach) 심리학자들은 그의 말을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링컨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피로하게 하는 원인 중에서 육체적 피로는 모든 피로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체적 피로는 휴식을 가지면 쉽게 풀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이고 감정적 피로는 건강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스트레스(stress)로부터 오는 피로,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오는 피로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염려 때문에 피로가 옵니다. 우리가 될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에 오는 피로도 있습니다.

신체적 피로는, 너무 지나치지 않는 한, 밤에 잠을 잘 자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감정의 피로(Emotional fatigue)와 정신적 피로(Mental fatigue)는 우리를 긴장케 하여 깨어있게 합니다. 때문에 육체적 피로보다는 정신적 피로, 감정적 피로가 우리를 훨씬 더 어렵게 하고 건강을 빼앗아가는 주요원인이 됩니다. 

꿈 많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와 함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리라 꿈을 꾸었습니다. 저녁이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향기 좋은 커피잔을 마주 놓고 사랑의 꽃을 피우리라. 주말이 되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산이나 바다로 나아가 함께 손잡고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리라고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쉽게 결혼을 했습니다. 작은 방을 얻어 새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일찍 출근을 했다가 늦게 퇴근을 합니다. 아침부터 세탁기는 고장이 났습니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려 댑니다. 집배원은 갚을 수 없는 월부금 청구서들을 한 묶음 들고 왔습니다. 아이는 울어댑니다.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친정어머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가 빗발칩니다. 이 새댁은 아이를 어린이용 의자에 앉혀 놓고는 의자 앞 쟁반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때 한 살 난 아들이 그의 입에 공갈젖꼭지를 물려주었습니다. 눈만 껌벅거리며 울음을 그치고 아무 말도 못하면서 젖꼭지를 엄마 입에 물려주고는 쳐다만 봅니다. 이 엄마는 와락 아이를 끌어안고 또 한 번 울어댑니다. 어느 젊은 아낙의 끔찍한 하루의 일과를 적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시작입니다. 

인생은 시작부터 우리를 피로하게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이 10년이 지나가고 20년이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인생은 苦海와 같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실감나기 시작합니다.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 아픔과 슬픔, 분노, 증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피로하게 만드는 일들이 날마다 이어지곤 합니다. 그런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쉼은 분명히 피곤한 사람들에게 짐을 벗게 하고 새로운 삶을 위한 활력을 줍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끝내는 건강을 잃고 세상도 잃게 됩니다. 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이 한국과 달리 정직하게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이 벌리게 되고 돈 버는 맛을 알면서 쉬지 않고 일만 합니다. 일한만큼 돈이 벌리니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쉬지 않고 일만 하다가 건강도 잃고 가족도 잃고 세상을 잃는 것을 종종 바라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쉼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보약이 되고 인생의 활력을 불어 넣는 재충전의 기회가 됩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쉼은 오히려 잡념에 젖게 하여 인생을 엉뚱한 길로 빠지게 합니다. 하루 놀고 하루 쉬다 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파괴시켜 흉악한 범죄를 유발케도 합니다.

강화도의 윤복희라는 여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이웃집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었습니다. 이웃집에 사는 청년이 윤여인이 남편의 사망으로 보험금을 받은 것을 알고 중학교 선후배들과 모의하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끔찍한 모의를 했을 리 만무합니다. 젊은이들이 일은 하지 않고 빈둥대며 놀기만 하니 사고가 삐뚤어져 잔인한 범행을 모의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쉼이 꼭 필요합니다. 쉼을 통하여 더 많은 일도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사회는 쉬려해도 진실로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어서 어디를 가든지 향락과 범죄의 소굴이 됩니다. 믿고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가난한 살림을 절약하여 생일날 금강산 구경을 하며 쉼을 얻으려던 한 여인이 북한초병에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생명을 보호하지도 않았고 책임도 지지 못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믿고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에게 우리의 머리를 두고 우리 내면의 모든 것을 쏟아 놓으면 주님께서 어루만지시고 참 쉼을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어제 토요일 점심을 든 후 카리타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있는데 자주 카페를 찾는 은퇴하신 원로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대학에서 실용영어도 강의하시고 책도 지으신 분입니다. 그분의 친구 한 분이 제가 아는 감리교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 엊그제 친구 목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한강변에 나가 자전거를 타는데 수많은 벌레들이 내 자전거 바퀴에 깔려 죽습니다. 또 중국에서는 스촨성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돌에 깔려 죽었습니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편지를 썼더니 답장이 다섯 장이나 왔습니다. 다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생명은 무엇입니까?” 그 분의 얘기를 들으며 “글쎄요. 누구의 설명으로는 깨닫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글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또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귀로 들어서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중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 11:16-17)

중생들에게 다가가서 설명을 해도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고 핍박합니다. 사탄은 질투와 시기가 강하여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복음이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려 하면 사탄은 즉각 온갖 훼방과 심술로 복음의 빛을 가리려 합니다. 최근에 교회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큰일을 하려하니 사탄은 여지없이 수하의 귀신들을 동원시켜 교회를 비난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려고 세상을 요란케 합니다. 

요즘에는 교회를 핍박하거나 신앙인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하면 시청률이 올라가 돈을 번답니다. MBC가 그런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보니까 SBS까지 나서서 예수님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고 이집트와 페르시아와 희랍의 신화를 묶어 놓은 가상적 인물이라고 방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역사였습니다. 예수의 삶을 그 제자들이 증언한 성경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보지도 못한 극소수의 사람들의 얘기를 꺼내 놓고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공중파 공영방송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는 곧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막강한 왜놈들을 한산도 앞 바다에서 궤멸시켰던 역사를 우리나라와 당사국인 일본도 인정하는데, 엉뚱하게 유럽 사람이 이순신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8-19) 

세례 요한이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귀신들렸다 핍박하고 마침내 목을 베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먹고 마시며 복음은 전했더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었다고 십자가에 못 박은 얘기는 오늘의 적 그리스도인들의 행태와 어쩌면 그리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결코 세상의 허황된 비판에 유혹당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수십억의 인구가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믿어왔으며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 짐을 벗고 참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멍에는 소의 목과 등 사이에 메어 짐수레에 짐을 싣고 가거나 논밭을 갈 때 쟁기를 끌게 하는 도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보통 소 한 마리에 멍에를 지우고 일을 시키지만 동남아나 유럽지방에 가면 소 두 마리에 하나의 멍에를 지워 일을 시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중동에도 소 두 마리에 한 멍에를 지우고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세상 짐을 혼자 메고 가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과 함께 메고 가면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무거운 인생 짐을 지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날도와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1)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날도와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날도와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찬363장)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있노라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We are loved). 우리가 주님께 받아드려지고 있구나(We are accepted). 우리 주님께 용서되어지고 있구나(We are forgiven).”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누구도 줄 수 없는 참된 쉼, 진정한 휴식과 함께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음성”(God Call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A. J. 러셀이라는 작가가 두 명의 경청자들Two listeners)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들은 음성을 편집한 책입니다. 전 세계 600만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와 평안과 희망을 준 책입니다. 이 두 명의 여성은 절친한 친구로서 전직 교사들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가난했으며 둘 다 불행하게도 똑같이 암에 걸려 큰 고통을 겪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후로 철저한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성령과 교제하며 주님으로부터 참된 쉼과 위로와 평안과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고통이 낮을 점령하고 고질적인 불면증이 밤을 고문했으며 지독한 가난과 견디기 힘든 근심이 오히려 일용할 양식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기도해도 응답은 오지 않 았고 하나님의 얼굴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게다가 한 가지 불행이 물러가기가 무섭게 새로운 불행이 엄습하는데, 어찌 웃을 수 있으며,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힘 을 북돋아 줄 수 있으며 어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너무 힘들어 고단한 세상을 떠나기를 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련과 고통이 너를 온통 제압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이 내 뜻을 이루는 것 이상의 일을 네게 하지 못하리니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

“무슨 일이 닥친다 해도 평온함을 잃지 말라. 내 안에서 쉬어라. 환경이 너를 짓누 른다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어찌 환경이 너를 압도할 수 있겠느 냐?”

“나의 초대는 세상에서 결코 찾을 수 없던 진정한 행복과 휴식과 만족을 구하는 자 들을 향한 은혜로운 초대니라. 나는 해답을 찾는 그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답하느니라.”

“인생길은 길고 곤하니라 그러하니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한 영혼이 내 안에서 쉬며 평화를 찾을 때까지 편히 쉬지 않으리라…”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며 인생의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을 위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과 평화와 휴식을 매우 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내 안에서 쉬어라. 내 안에서 살아라.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져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를 육신과 정신과 마음과 영혼에 참된 위로와 쉼을 주실 것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주님께 나아갑시다(Let it go, Let it go).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 주님께 참 쉼을 구합시다(Let it go at the foot of the Cross). 거기에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There is one who love you). 그분의 음성을 들려줄 때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는 모든 인생의 피로는 날아가고 새로운 소망이 넘치는 미래의 세계가 열려질 것입니다. 

혹시 참 쉼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해서 일하지 않고 밤낮 놀고먹는 팔자를 주신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쉼과 평안을 통해 보다 능력있는 새로운 삶을 주십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칠 때 두 가지 짐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로의 궁중에서 40년을 성장한 그의 가슴에는 세계가 들어있었습니다. 충분히 세계를 향해 웅지를 펼 수 있는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권력다툼에 밀려 미디안 광야의 양을 치는 목동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패배감과 절망감은 엄청난 무게로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 받는 동족의 울부짖음입니다. 한 핏줄을 타고 태어나서 한 하나님을 섬기는 동족들이 짐승 같은 노예로 살며 매일같이 울부짖는 외침이 하나님에게까지 들렸는데 어찌 모세의 가슴 속에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생각하면 하룻밤도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호렙산 가시덤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억누르던 모든 짐이 한 순간에 날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쉼이요, 평안의 목적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쉼이요, 평안이 이끄는 삶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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