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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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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7:1)


(시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어떤 사람이 꿈에서 천사의 안내로 하늘 창고를 구경했습니다. 어느 한 창고를 보았는데 그 안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천사는 창고가 비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줄 보화가 가득했던 창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느라 보화가 가득한 창고가 텅 비게 된 것입니다.” 천사와 그 사람은 또 다른 하늘 창고를 구경했습니다. 그 창고 안에는 보화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이곳은 감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해놓은 보화가 있는 창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사람이 너무 적어 아직도 이렇게 보화가 쌓여 있지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서 10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셨습니다. 가족과 떨어져서 동리 밖에서 거주하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들이 그 말을 믿고 가다가 깨끗함을 받고, 그 중 한사람인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예수께 엎드리어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눅 17:19)었습니다. 감사한 사마리아인은 이제 육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얻는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더 큰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늘 새것을 원하며 현재에 대해서 불평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현재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바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삶속에서 감사 합시다 

삶에 감사 합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삶에 감사합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것에 대해 그는 나에게 두 개의 밝은 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눈떴을 때 검은 것과 하얀 것을 높은 하늘에 깊은 별들을 군중들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삶에 감사합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것에 대해 그는 나에게 소리와 글자를 주었고 그 언어들로 나는 생각하고 어머니, 친구와 내 형제들을 크게 부를 수 있으며 그 언어들은 내가 사랑하는 영혼의 길의 빛을 밝혀줍니다… 삶에 감사합니다.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준 것에 대해 그는 나에게 웃음을 주었고 눈물을 주었습니다. 내 노래를 만드는 그 웃음과 눈물은 나에게 고통의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나의 진솔한 노래는 바로 당신들의 노래이고 또한 우리 모두의 노래입니다. 삶에 감사합니다. 삶에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 헨리 프로스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했지만 고향에서는 슬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내 영혼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흑암의 그림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교본부에 들렀다가 본부 벽에 쓰여 있는 감사를 시도해보라(Try Thanksgiving)는 글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 시각부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군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의 행동이 망나니 같았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 동안 너의 행동을 참고 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다. 내가 너를 산에 데려가 크게 혼내겠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산길이 하도 험하니까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좀 쉬었다 가요.” “이 놈아 쉬기는 뭘 쉬어.” 아들은 계속 쉬어가자고 사정합니다. 그래서 잠시 쉬는데 아들이 말합니다.“아빠하고 등산하니까 참 좋네요.” “이 녀석아. 조금 더 가면 크게 혼날건데 좋긴 뭐가 좋아.” “아빠랑 등산하는 것이 처음이예요. 혼나러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좋을 수 없네요.” 곰곰 생각해보니 아들과 등산 한번 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만 마음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아들과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은 항상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수술하고 물이 먹고 싶은데 방구뀌어야 하고 대변 보아야 한다 함에서 방구뀌고 대변하게 됨에 감사를 바웠다고 합니다.

어느 여 집사님이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갈아 입고 보니 구두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두가 집에 많이 있지만 구두를 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구두점을 돌아 다녀도 맘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맘에 드는 구두가 없지?" 투덜 거리면서 서울역 광장을 지나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양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휠체어에 의지한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유심히 보았더니 그 사람은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리가 없어서,신발을 신을 수도 없는 저 사람은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나는 구두가 맘에 안든다고 그 많은 구두를 놔두고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다니...진짜 한심한 사람이 바로 나로구나" 그래서 구두를 사려고 했던 돈을 그 사람에게 모두 주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도 찬양을 불렀다고 합니다.


  역경속에서도 감사합시다

눈부시게 찬란한 왕궁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있습니다. 둥근 천장과 벽,기둥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들로 뒤덮혀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왕궁이 설계되었을 때 건축가들은 문에 입힐 거울을 외국에서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던 거울이 도착하여 포장을 푼 사람들은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운반 도중 거울이 산산조각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워하며 깨진 유리조각들을 쓸어버리려 할 때 한 관계자가 “어쩌면 깨져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깨진 유리조각으로 추상적인 무늬를 만들어 벽에 붙였습니다. 빛이 여러 방향으로 반사돼 뜻밖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왕궁이 만들어졌습니다. 살아가노라면 산산조각난 유리처럼 우리의 마음이 깨지고 상처입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부정적으로 내 마음에 자리잡기 전에 ‘깨짐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최낙중 목사 교회 한 집사가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과 열쇠 등이 들어 있는 손가방을 잃었다. 강원도 삼척의 장애인 시설 위문 연주를 위해 고속도로를 운행하던 중 횡성휴게소 화장실에 손가방을 놓고 나온 것이다. 휴게소를 떠나 동승한 사람들과 얘기하며 한 시간 이상 달리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횡성휴게소 화장실에서 가방을 주웠는데 가방 임자가 맞느냐는 것이었다. 노 집사는 그제야 가방을 화장실에 두고온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전화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가방을 주운 사람은 불신자였으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감사헌금 봉투를 보고 이 사람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노 집사는 사례를 하였고 결국 그 분을 전도했다. 평소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해 구원코자 애쓰던 노 집사는 잃은 가방을 통해 또 하나의 잃은 영혼을 찾은 셈이다.

불교국가인 동남아의 B국에 파송되었던 선교사님 한 분이 선교활동을 하다가 그만 발각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최근에 형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추방되어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하고 묻자 "아닙니다. 오히려 날마다 하나님이 주신 감사꺼리 들을 세어보면서 지내느라 하루가 짧을 지경이었답니다. 어두운 감옥 안에 하루에 한번씩 창문을 통하여 밝은 빛을 주셨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샤워를 할 시간도 있었고, 가끔가다가 멸치가 든 반찬도 먹을 수 있었고, 밤에는 생쥐를 보내 주셔서 말벗을 하게 해 주셨고, 눈감을 때마다 주님은 나에게 찾아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뿐인줄 아세요? 감옥의 벽돌 틈 사이에 이름 모를 작은 풀이 나게 하셔서 저는 그걸 보며 얼마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찬양했는지요." 하면서 감격에 겨워하는 선교사님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옛날 어느 시어머니가 아들을 장가들여 며느리를 얻었는데 어떻게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키던지 며느리들이 제대로 붙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사람이 그의 며느리로 들어갔다가 그만 못살고 나와버렸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 존경받는 유명한 스승이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그 승께 찾아가서 자기 집에 오는 며느리들이 끝까지 못 버티고 나가버리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 스승은 여기서 몇 천리 밖에 섬나라가 있는데 그곳에 사는 여자가 유순하니 거기서 얻으면 오래 버티고 살 것이라고 재혼을 주선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섬나라에서 온 이 며느리는 말을 몰라 아무리 시어머니가 조석으로 야단을 쳐도 별다른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시어머니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할 수없이 시어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섬에서 온 며느리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꼬집었습니다. 심지어는 머리털까지 뽑았습니다. 이에 참다못한 외국인인 며느리가 결국 결혼을 주선해준 스승께 찾아가 왜 하필이면 이런 나쁜 데로 결혼을 주선해주었냐고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더 이상 참고 살수가 없으니 시어머니께 달려들어 말대꾸라도 해야겠다며 제발 말이라도 한가지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말은 다름 아닌 "감사합니다."였습니다. 

그 며느리는 그날로 집에 가서 스승이 가르쳐준대로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때려도 "감사합니다." 살을 꼬집어도 "감사합니다." 잔소리를 해도 무조건 "감사합니다."라고만 했습니다. 며느리가 이렇게 스승을 만나고 온뒤부터 무조건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자,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시키면서도 괜히 면목이 없고 염치가 없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할 수없이 시어머니는 마음을 고쳐먹고 며느리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도 갖다주고 일도 도와주며 나중에는 애쓴다고 껴안아 위로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시어머니도 며느리처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고부간에 서로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도 또한 보기가 좋아 한마디 더 거들어 "고부간에 감사하니 집안이 다 화평합니다. 두분께 감사합니다. "하며 더욱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호와로 감사합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합니다.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 연로하신 한 권사님의 이야기라 합니다. 그분의 네 아들은 하나같이 미국에서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되어 교회와 이웃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권사님은 29세 때 남편을 여의셨다합니다. 당시 남편은 숨을 거두면서 권사님을 불렀습니다. "여보,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미안하지만 이제 한가지만 약속해 주오. 우리 네 아들을 꼭 책임지고 키워 주오." 권사님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약속할께요."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밖에 없는 젊은 과부는 갖은 고생을 하며 어린 네 아들을 키웠다. 밥상에 먹을 것이 있을 때는 "주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식들을 앉혀놓고 "주님, 오늘은 금식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습니다. 양식이 있건 없건 감사를 드리면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참으로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혼자서 네 명의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믿음과 감사로 아들들을 키웠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어머니와 네 아들을 크게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바라본 권사님을 하나님은 그냥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던 것이라 합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며, 모습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공로도 없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그분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 같은 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하나님! 나와 같은 자에게 은혜를 허락하시어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가요? 우리에게 감사의 조건이 있건 없건 감사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의 근원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가 작곡가인 웬델 라브레스는 64세 된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16년 동안 온 몸에 통증이 있고,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마비되었어도, 오른쪽 엄지 손가락만은 아직 쓸 수 있다는 엄청난 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 손은 완전히 굳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오른쪽 엄지 손가락으로는 막대기에 매어 놓은 끝이 두 갈래 난 포크를 사용해 안경을 쓸 수 있었고,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있었으며, 빨대를 사용해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성경 책장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 엄지 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함으로써 할머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을 위로하러 온 한 방문자에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의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거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러자 그 방문자는 의아해 하면서 때로는 낙심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서 지켜 주시는 한, 이곳에 누워 만족할 뿐입니다. 또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지은이의 이름도 없는 무명의 시가 걸려있다 합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통제 개발 등 의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심프슨 교수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그가 강의 중 한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그 많은 의학 발견 중에 생애 최고의 발명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심프슨 교수는 잠시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 앞에 마땅히 죽어야 할 영원한 죄인이라는 사실이고,둘째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이 내 생애 최대 발견입니다. 학생도 나처럼 예수님을 발견하시고 그분을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로 감사해야 할 요건입니다. 우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심지어 병들어 누워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 프리머스 항에는 102명의 청교도들이 타고 왔던 메이플라워호가 전시돼 있습니다. 또 1620년 그들이 지어놓은 우람한 예배당도 보존돼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찾아서 그 곳에 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예배당부터 지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하나,둘 죽어감에도 기어코 예배당을 완공했으며 1년 동안 농사를 하고 그 추수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추수감사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뿌린 감사와 희생의 씨로 말미암아 그들의 후손은 오늘의 최대 강국인 미국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유럽인들 가운데 황금을 찾아 남미로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다지를 찾았고 황금 덩어리를 캐냈습니다. 당시 북미로 갔던 청교도인들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손은 지금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았고 눈물의 씨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 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이 창대하며 강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에 여호와께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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