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한밤중의 찬양 (행 16:19~34) - 감사

  • 잡초 잡초
  • 320
  • 0

첨부 1


한밤중의 찬양 (행 16:19~34)


어느 목사님이 쓴 글을 읽어보니까 요즘 자신의 시골 고향에는 청둥오리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몇 십 마리씩 오리를 기르는데, 낮에는 연못가에 내놓아서 고기를 잡아먹게 합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헤엄치며 놀다가 저녁이 되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혹 러시아에서 날아온 청둥오리들이 상공을 지나가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지나가다가 저 아래에 청둥오리 친구들이 놀고 있으니까 좀 쉬어가려고 연못가에 내려서 같이 고기를 잡아먹고 놀다가 보면 이 마을의 오리들이 러시아에서 온 오리에게 권한답니다. 

"야 그렇게 힘들게 멀리 갈 거 있냐? 우리 집에 같이 가자. 우리 집에 가면 먹이도 있고, 보호도 해 주고, 재밌게 놀 수 있단다." 

이래서 러시아에서 온 청둥오리들이 이 마을 오리들을 따라서 몇 십 마리씩 들어올 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의 문을 내리고 주인은 나와서 러시아에서 온 청둥오리들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러시아에서 온 오리들이 날아가고 싶어도 바람이 세기 때문에 날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마을 오리들과 함께 놀다보면 살이 피둥피둥 찝니다. 때가 되면 잡아서 손님 밥상에 올라가는 아주 맛있는 청둥오리요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왔던 오리는 러시아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때가 되면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를 잊어버리고 이 땅에만 발을 디디고, 여기에만 관심을 쓰고 여기에 안주하는 삶을 살다가 고향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들은 하늘백성의 기쁨마저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 땅의 백성들과 똑같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슬퍼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갔던 몇 명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바울과 실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제2차 선교여행을 출발했는데, 그들이 도착한 첫 섬이 유럽의 빌립보였습니다.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루디아라고 하는 자주색 옷감 장사를 하는 여자 사업가를 만나서 그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처소로 기도하러 가다가 길에서 한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이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은 그녀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좀 용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와서 물으면 이 귀신 들린 여종이 곧잘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재미에 와서 돈을 내고 자신들의 인생을 물었고, 주인은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여종이 사도바울을 보는 순간 알아보는 것입니다. '저 위대한 사람들을 보라'고, '저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귀신들린 여종이 참 귀찮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선교하는데도 방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어쫒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떠나갈지어다!" 명령했더니 그 여종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나니까 이 여인은 영 좀 멍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누가 와서 물어도 아무 것도 모릅니다. 주인은 실망하였습니다. 이제는 돈을 벌 수 없으니까.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사실 고마워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악의적인 마음으로 고소를 합니다. 

"이들이 와 가지고 이 온 성을 소란케 했습니다. 우리 로마사람들이 받아들이면 안 되는 풍습을 전하고 다니는 아주 나쁜 자들입니다." 

재판장에 섰는데 재판관은 이들이 유대인인고로 뭐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그들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모진 매를 때렸습니다. 서른아홉대의 채찍질을 당하게 됩니다. 온 몸이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깨어보니 지하 감옥이었습니다. 그들의 온 몸은 꽁꽁 묶여 있습니다. 발은 착고에 매여 있습니다. 온 몸은 아픕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24~2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모진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그런 신세입니다. 한밤중에 정신이 깨어서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더라" 그런데 그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그 찬양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찬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니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해야 합니다. 아니 저주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죄를 지어서 고난을 당하면 할 말이 없지만, 선을 행하다가 이 고난을 당하고 보니 원망과 불평을 터뜨릴 만도 한데, 성경에는 어디에도 그들이 원망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 찬양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 감옥에 있는 죄수들은 아마 굉장히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을 봤기 때문입니다. "저분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저렇게 매를 맞고 피범벅이 되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다니, 저들이 믿는 하나님이 진짜인가보다." "저들이 믿는 예수가 헛것이 아니구나."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적을 똑같이 경험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발에 매인 착고만 풀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발에 매인 착고까지 다 풀렸습니다. 그들의 옥문까지 다 열려버렸습니다. 동일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불신자들은 좀 불쌍하게 보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 찬송 들고 교회 가는 사람들, 그리고 무슨 절기때나, 총동원인지 되면 교회 가자고 와서 끈질기게 사정하고 조르는 사람들 정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안타깝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아니 인생의 깊은 고난의 한밤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바울과 실라에 비하면 좋은 환경, 좋은 옷, 좋은 침대에서 생활하지만 우리의 입에서는 불평과 원망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내 생에 감사가 많았는가, 불평이 많았는가. 찬양이 많았는가, 원망이 많았는가. 어떤 분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원망이 끊이지 않습니다. 짜증나는 삶입니다. 참 불행한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의 찬양 소리, 여러분의 감사 소리를 매일 들으며 생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의 직장 동료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울과 실라는 발은 착고에 매여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늘에 있었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진정 하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우리 권사님 한분이 암 투병에 있기 때문에 부목사님과 함께 심방을 갔는데 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암이 심해져서 음식도 잘 못 드시고, 온 몸이 다 야위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거동을 못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진통제를 먹는데, 진통제라는 것이 효과가 한두 시간밖에 안 갑니다. 밤이고 낮이고 아프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권사님은 진통이 올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구세주를 아는 이들 찬송하고 찬송하세!"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진통이 오니까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가 너무 좋다고 하십니다. 또 힘들 때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 찬양을 부릅니다. 그리고 벽에다가 시편 23편을 크게 적어놓고 그 시를 읽으면서 진통과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그런 고통이 온다면 어떨까요? 내가 일평생 예수님을 믿었는데 내게 이런 고통을 주냐고 불평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 권사님은 원망대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깊은 인생의 고난의 밤 속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권사님을 보고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권사님 건강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했더니 "아멘 아멘" 하시면서 예배 끝나고 나오는데 "목사님이 기도해 줬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거동도 오랫동안 못하신 분이 기어가지고 마루까지 나오시면서 '내 주를 가까이' 찬양을 부르십니다. 참 놀라웠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고 '이게 바울과 실라의 찬양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어둠의 밤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유할 때만, 건강할 때만, 그리고 사업에 성공할 때만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 가난해도, 병들어도, 가정에 갈등이 와도,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찬양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고난의 깊은 밤 속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 성경에 나오는 몇 가지 조건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그들의 마음속에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중 두 번째 희락, 기쁨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 마음 속에 기쁨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과 실라가 느끼는 기쁨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에 120문도가 모여서 기도할 때 거기에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이 담대함을 얻고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데,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를 맞아도 기뻐합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고 증거합니다. 그들이 복음 전하다가 걸려가지고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난당한 것을 오히려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 오늘 이런 기쁨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종종 여러분에게 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황해도 어느 마을에 6.25 전에 교회를 열심히 나가지만 남편에게 늘 핍박받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교회에만 갔다 오면 남편이 그저 머리채를 끄들고, 때리고, 욕을 하고, 핍박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부인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건넌방에 건너가서 찬송을 하는데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그 찬양을 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내가 더 미웠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전쟁이 났습니다. 남편은 인민군으로 징용되어서 전쟁터에 나갔다가 전쟁포로가 되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이제 북에 가봐야 먹고 살 것도 없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온 가족이 다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남한에 남아야 하는데, 인민군이 남한에 남으려면 조건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도 예수 믿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앞에 섰습니다. 그랬더니 조건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외워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걸 외울 재주가 있나.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건 잘 모르고 찬송은 부를 줄 안다고" 그럼 찬송을 불러보라고 했더니 이 사람이 부인에게 매질하면서 들은 찬송이 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이 찬송을 불러서 합격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부인을 얼마나 학대하고 핍박했는데 부인이 자기에게 매 맞을 때마다 불렀던 찬송을 불러서 남한에 남을 수 있었고, 그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한 부인은 힘들고 어렵고 핍박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그것이 남편을 위기에서 건져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이 깊은 절망에 밤에 찬양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발은 착고에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천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발매질을 당합니다.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기도하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환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절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그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발은 이 땅에 딛고 있었지만 그 마음은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비록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우리 영원한 고향인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장차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 곳을 생각하면 오늘의 이 현실에서 아픔과 고통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주는 평안, 하늘이 주는 기쁨, 하늘의 소망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랬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이 땅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늘 근심하며 탄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고통 많은 이 세상 속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리차드 범부란트라는 루마니아의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루마니아에서 복음을 을 전하다가 공산당에게 붙들려서 13년 동안 지하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도 2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고, 그가 남긴 유명한 책이 <하나님의 지하운동>입니다. 그는 서문에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보낸 햇수가 저에게는 너무 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홀로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믿음이나 사랑을 넘어선 어떤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기쁨, 하늘이 주는 그 기쁨, 장차 돌아갈 영원한 천국에 대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거했던 그 지하 감옥도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에 하늘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돌아갈 고향,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과 실라가 이 인생의 깊은 고독의 밤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선교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들은 이 유럽에 넘어와서 빌립보 첫 성에 와서, 루디아라는 한 여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첫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기쁨이 아직도 마음에 충만히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했다는 기쁨이 있을 때 그들은 고난마저도 기쁨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그들을 다 파송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70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전도하고 돌아오는 70명의 제자들이 기쁨이 충만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교할 때 기쁨이 있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기쁨이 없으십니까? 선교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선교지에 가보셔야 합니다. 아니면 전도라도 하셔야 합니다. 교회에도 늘 이렇게 말씀하는 분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습니다. 예배드려도 기쁨이 없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찬송을 해도 감격이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교하는 사람이 기쁨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만나보면 정말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낯설고, 물 다르고, 음식 다른 곳에 가서,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는데 어디 기쁨이 있겠습니까? 한 영혼을 구원했다는 기쁨! 그것이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기쁨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한다는 것, 내가 오늘도 복음을 증거하고 선교에 동참한다는 그 당당함 속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은 이 선교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이 어떻게 회복되느냐고요? 간단합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면 성령이 내 안에서 기쁨의 열매를 맺어주십니다. 여러분! 이 땅에 것에만 관심을 갖지 마시고 하늘의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둔다면 하늘의 기쁨을 누리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선교하십시오.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그러면 내 마음 속에 나도 모르는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맞이할 때 정말 바울과 실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다 잃어버리고 재산을 다 빼앗겨버리고 건강마저 잃어버리지만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진정한 감사가 이런 것입니다. 부유하고 건강해서가 아닙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오직 여호와는 영광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이것이 욥의 감사입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비록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밭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나는 즐거워하리로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감사요, 위대한 감사입니다. 신앙생활을 평생해도 이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면 그는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은 받겠지만 신앙생활에 재미는 없습니다. 늘 짜증이요 늘 불평이요, 봉사하며 불평하고, 충성하며 원망합니다. 이것이 맞지 않습니다. 성령의 기쁨, 하늘의 부유함, 그리고 선교의 기쁨을 여러분이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해도 감사할 조건이 있습니다. 조용기목사님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얼마 전에 은퇴하셨습니다. 그분이 쓰신 책에 자기는 세 가지가 감사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어렸을 때 너무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답니다.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안답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부유하게만 살아왔었다면 세계적인 교회를 이룰 수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교회가 되니까 부유한 사람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강남에 큰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등포에 세계적인 교회가 있는 것은 그가 바로 가난한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감사는 폐병 때문에 병치례를 많이 했답니다. 각종 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병이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병을 위해서 기도하다보니까 하나님이 치유의 은사를 주시고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방끈이 짧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분은 고등학교도 정식으로 못나왔습니다. 대학도 정식으로 못 나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늘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개인교습도 받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늘 일생을 배우려고 노력했던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감사합니까? 가난해도, 병들어도, 많이 배우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가 진정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세상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 환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기쁨 때문에, 하늘에서 주시는 부유함과 소망 때문에, 선교의 기쁨 때문에 오늘도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