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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영광, 주님의 사랑 (요 13: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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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 주님의 사랑 (요 13:31~38)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유난히 많이 반복된 단어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영광”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우선 31-32절을 봅니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영광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또 34-35절을 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서는 사랑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광과 사랑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주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31절에서는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하셨고, 32절에서는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사이에서 사랑과 신뢰가 넘치는 가운데 속삭이듯 하시며 주고받으심을 확인하신 그 영광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영광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주목할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31절의 앞부분인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에서의 “지금”이고, 다른 하나는 32절의 뒷부분인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에서의 “곧”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받으신 영광은 무엇이며 “곧” 받으실 영광은 또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영광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그때가 어떤 때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이 있었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천한 종들이나 할 일을 하신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일이고 체신 머리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영광스러운 일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으로부터 발씻어주심을 받은 제자들은 머지않아 다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날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제자라 하던 베드로조차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인 유다는 아예 곧 나가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돈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줄 것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는 것은 제자교육의 완전한 실패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지 결코 영광이라고 말할 수 없을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하나님께서 곧 영광을 주실 것이라 하셨는데 곧 이어서 예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붙잡히셔서 심문과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일입니다. 조롱과 채찍질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채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형틀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신 끝에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리시고 창에 옆구리를 뚫리시며 비참한 죽음을 당하시는 일입니다. 아무도 영광이라고 여기지 않을 일을 겪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불명예와 치욕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면서 곧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아들이 그런 수모와 불행을 당하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영광이라 하고 아들과 함께 그 영광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놀라운 은혜의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르신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사람들을 향하신 당신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유일하신 아들을 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종의 모습으로 자기의 십자가 지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것을 아들의 영광으로 여기시고 또한 자신의 영광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바로 우리 자신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임을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 이렇게 밝혀놓으셨습니다. 

사53:4-12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분을 모르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요13: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당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모르셔서 그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제자와 같았던 베드로조차 그날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할 줄 다 알고 계셨습니다(본문 38절). 

예수님께서는 설마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당신을 배신하고 돈을 받고 팔아넘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셔서 붙잡히신 것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팔 자가 누구인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요13:11, 21). 그것을 알고 계셨기에 심령이 괴로우셨습니다(요13:21). 

그러나 그 괴로운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그 유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까지 하셨습니다(요13:27).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팔 자가 바로 가룟인 유다인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요13:28). 

이에 따라 유다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떠나 밖으로 나가자 오늘 본문 첫 절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루시기 위하여 못하실 일이 아무 것도 없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철저하게 사랑으로 나타나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영광이 아닙니다.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영광입니다. 그것도 종이 주인을 위하여, 제자가 선생을 위하여 하는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주인이 종을 위하여, 선생이 제자를 위하여 하는 헌신과 희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헌신과 희생을 하시고는 그것을 당신의 영광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랑의 완전한 실현자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 놀라운 사랑의 수혜자들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랑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루신 그 사랑을 받은 우리이기에 우리에게는 그 사랑을 실천해야할 도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입니다. 본문 34-35절을 다시 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도 그런 사랑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새 계명을 주신다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로 이루어지는 새 이스라엘이라는 새 공동체는 기존의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질서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스스로 본을 보이신 대로 주종의 관계가 뒤집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그 행동을 통해 모범을 보이시며 새로 도입하신 사랑의 질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13:13-17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교회라는 공동체는 세상의 공동체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신분과 지위와 하는 일이 다 다를지 몰라도 신앙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누가 누구의 발을 씻어야 하는지 통속적 기준이 사라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의 예의범절이 폐기되지 않고 존중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의 윤리규범이 지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서로가 상대방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 하는 이인지 다 알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발을 기꺼이 씻어줄 수 있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의 발을 먼저 씻으시던 예수님께서 베드로 앞에 오시자 베드로가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13:7)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6절에서 보듯이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여쭈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하셨습니다. 또 베드로가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본문 37절) 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본문 38절)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약점과 결함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부족함과 함께 그들의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본도 우리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서로 오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가능성을 믿고 감싸주며 아껴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참된 주의 제자들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본문 34-35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까지 어떤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어떤 사랑을 실천했는지를 물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이 우리가 추구하는 영광이 되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가 본받는 사랑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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