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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때를 선용하라 (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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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때를 선용하라 (전 3:1)
 

지혜자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을 위한 적합한 시기 곧 제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농부는 각종 작물을 시기를 놓치지 않고 파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는 농사뿐 아니라, 인생사 전반에 걸쳐서 적용이 됩니다. 공자는 15세 때 배움에 뜻을 세웠다고 했는데, 이는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현대는 사회 및 경제의 구조가 과거와 달라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시기와 때를 포착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저는 농사나 개인이나 기업을 위해서 적절한 때를 활용하는 방법에 관해서가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영원한 삶과 관련하여 인생의 때를 선용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주님을 믿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딤전 2:4),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대한민국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지천에 널려 있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더라도 예배당의 십자가를 볼 수 있고, 기독교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라디오나 티비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복음을 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처럼 환경이 잘 구비되어 있다고 해서 불신 이웃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가거나 복음을 전하는 방송을 듣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믿을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음 전파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들이나 북한과 같은 나라와는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은 복 받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좋은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내세우는 변명은 ‘지금은 너무 바빠서 믿을 시간을 낼 수 없으나 나중에 한가해 지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더 시급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바쁜 것은 할 일이 많다는 것인데, 언제쯤이면 할 일이 줄어들어 한가해 질 수 있을까요? 전도서 9장 10절에 보면,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할 일이 없는 곳은 ‘음부’ 곧 무덤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무덤에서는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 바빠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지위를 영생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보배보다도 더 귀한 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고 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재물이나 명예나 지위와 바꾸려 하다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느냐, 영원한 파멸을 당하느냐가 달린 중대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5)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그 때 가서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세상 재미를 포기해야 되기 때문에 선뜻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인이 된다고 욕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 하나의 핑계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믿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늦지 않도록 하세요” 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잠언 27장 1절 말씀과 같이, 사람은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 세관의 세리장 곧 세관장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듣기는 했으나 만나 뵌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무렵에, 그는 예수님께서 여리고 거리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삭개오는 미루지 않고 곧장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채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을 미리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의 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니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 다가오신 예수님께서 우러러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급히 내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자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그 날 예수님을 만나러 나오지 않았더라면 영영 예수님을 만나 뵙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12장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가장 좋은 기회는 지금입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고, 내일은 나의 시간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밖에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기왕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진실하게 믿고, 열심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열 처녀의 비유’는 진실한 신앙인과 형식적인 신앙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는데, 그 중 다섯은 슬기롭고 다섯은 미련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갔으나,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보라 신랑이 오니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에 처녀들은 모두 깨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겼습니다. 그제야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다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 것을 나누어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고 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이 잠겼습니다. 그 얼마 후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신랑은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고 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미련한 처녀들은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거절을 당하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원은 우리가 입으로만 “주여, 믿습니다”라고 하면 언제라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잘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잘 믿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이 복된 기회를 허비하지 말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주님을 섬김으로 인생의 때를 선용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전도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용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우리만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복음의 증인으로 삼아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의 직무도 고귀하지만, 영원한 지옥 형벌을 당할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을 위한 위대한 일에 우리를 일군으로 불러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인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믿게 하시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만일 하나님께서 전도하러 천사를 보내신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영광스럽고 위엄찬 천사가 나타나서 “아무개야,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라” 말해 준다면, 감히 거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경우를 보세요. 그에게 천사가 나타났으나 복음을 전해 준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사람의 전도를 통해서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그의 시대에 복음의 일군으로 헌신하였고, 오늘 이 시대에는 우리가 복음의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목회자만 복음의 일군인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복음의 일군입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 3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8)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이 말씀과 같이, 성도들에게는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곧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경고해 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게 전도했어도 고집을 부리고 믿지 않아 멸망했다면 그 책임은 복음을 믿지 않은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전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멸망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멸망당한 것이나 우리는 그를 죽도록 방임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내키면 전하고 내키지 않으면 입을 다물 것이 아니라, 디모데후서 4장 2절 말씀과 같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때로는 무시도 당하고 욕도 먹고 핍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신 영혼이 우리의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보는 기쁨과 보람을 생각할 때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장차 강림하실 주님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별과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기회가 주어질 때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해 줄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가 믿지 않는 것이 전하는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전도의 결실이 없다고 해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자기의 친구 다섯 명에게 전도하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5년 후에 한 명이 구원을 받았고, 10년 후에 나머지 2명이 구원을 받았으며, 25년 후에 네 번째 친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고 나서 몇 달 후에 마지막 친구가 구원을 받았는데, 이는 죠지 뮬러가 전도와 기도를 시작한지 52년만에 거둔 결실이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또는 기회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전도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령의 결실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은혜 받을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받고 싶다고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혜를 베푸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힘과 방법으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릴 때 빗물을 받으려면 우리 편에서 그릇을 준비해야 하듯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실 때 우리는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6장에 보니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풍성함을 은혜가 너무 흔한 것으로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어느 것 하나 무가치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귀한 다이아몬드나 진주처럼 항상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 받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쇠털같이 많이 남아 있는데, 오늘 못 받으면 내일 받으면 되지, 그러면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우리는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밤새껏 천사와 씨름하면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던 것처럼, 은혜 받을 기회를 포착해서 선용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상점을 하는 집사님 부부가 있었는데 부흥회 기간에 가게 문을 닫고 시간 마다 참석해서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이야 나중에라도 벌면 되지만 은혜는 지금 받아야지 나중으로 미루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집사님 부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신 대로, 은혜는 항상 현재가 중요합니다. 간혹 과거에 받은 은혜를 사골 우려먹듯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과거에 받은 은혜는 과거에 소용이 된 것이고, 현재는 또 새로운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마다 그 날의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일까요? 

1) 은혜 받는 자리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모여 기도할 때 동참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하신 대로,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 주님께서 임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낼 때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셔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즉시 나가 열심히 장사해서 갑절의 이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돈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나중에 주인 앞에 가져왔습니다. 그 때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먾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하였고,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노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면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고 했습니다. 주인이 앞의 두 종을 칭찬한 것은 그들이 갑절의 이문을 남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들의 본분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한 것 역시 그가 게을러 본분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생활에 게으른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게으르고 나태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3) 은혜 받으려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주고 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로 받는 것이지 무슨 값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은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열심을 내고, 은혜 받는데 따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합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수천 리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예물로 드릴 진귀한 보배를 가득 가지고 왔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듣기 위해서도 이처럼 비싼 값을 치렀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편히 앉아서 아무 수고도 없이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이 교만한 마음을 품고 인구조사를 실시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그 징벌로 전염병이 돌아 수많은 백성이 죽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눈물로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선견자 갓을 보내셔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다윗이 그 장소에 가니 아리우나가 나와서 절하며 “왕이여, 어떤 일로 오셨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자, 아라우나가 말하기를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십시오. 번제에 쓸 소도 있고 땔감으로 쓸 제구와 소의 멍에도 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할 때 온전히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4) 은혜를 받으려면 봉사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섬김의 삶을 살 때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기회를 가지십시오. 한 해라도 더 젊을 때, 아직 힘이 있을 때, 봉사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봉사하고 싶어도 힘이 달려서 할 수 없습니다. 

경제 활동을 할 때 하나님의 일에 물질로 봉사하십시오. 은퇴하고 나면 수입이 떨어져서 하나님께 바치고 싶어도 없어서 바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 때 자기가 종업원을 몇 백 명이나 거느린 회사의 사장이었다고 하면서, 그때 좋은 일을 했더라면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만 IMF 금융위기를 만나 회사가 부도나고 망하고 나니까 잘 살 때 선한 일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그 기쁨을 압니다. 또한 드리는 사람은 감사를 압니다. 인색한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드리지 못합니다. 드리는 기쁨과 감사를 알기에 생활의 모든 것을 아끼면서 주의 일을 위해 물질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할 때 순전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를 본 어떤 사람들이 분을 내면서 서로 말하기를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보시고 이르시기를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 마리아와 오히려 그의 헌신을 비난하고 꾸짖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녀를 비난하는 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그가 힘을 다해 헌신한 결과, 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도 주님께 헌신할 기회가 주어질 때 이를 놓치지 말고 선용함으로 큰 은혜를 받아누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낮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언젠가 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젊음이 있을 때, 건강할 때, 총명이 있을 때, 경제적인 능력이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포착하여 힘써 행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이 시간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는 성도님들의 심령 속에 성령께서 믿음과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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