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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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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2) 
 

플로렌스 채드윅(Florence Chadwick)은 미국의 수영선수로 영국해협 20마일을 가로질러 프랑스에서 영국을 수영으로 횡단한 최초의 여성입니다. 1952년 그녀는 36세의 나이로 L.A 근방 카타리나 섬에서 캘리포니아 서부해안까지 21마일을 수영으로 건너가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녀는 16시간 동안 수영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안개를 헤치고 사력을 다해 나갔지만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수온을 견디지 못하고 기권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구조선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목적지가 포기한 곳으로부터 불과 500미터도 안되는 거리였음을 알고 심히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실패한 이유는 추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피곤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안개 때문입니다. 안개로 목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두 달 후 그녀는 카탈리나 섬과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새로운 기록을 내며 수영으로 횡단하는 데 성공을 합니다. 같은 섬, 같은 해안, 같은 거리,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목표를 볼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였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집니다. 악한 것만 바라보면 악한 사람이 되지만 선한 것을 바라보면 선한 사람이 됩니다. 성도는 과연 누구입니까? 예수를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예수 안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가 목표인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에 있든지, 누구와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떠한 상황에도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관망하거나 구경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눈팔지 말고 응시해야 합니다. 

본서를 기록한 히브리 기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으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10장을 통해 구약의 인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바라볼 대상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 믿음으로 고난과 어려움을 이긴 선진들을 소개하며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의 뜻은 선진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고통과 고난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를 찬양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안식주리라". 믿음의 선진들처럼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첫째로 고난을 이깁니다

릭 워렌(Rick Warren)은 새들백(Saddleback)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특이한 병이 있었습니다. '뇌하수체기능 부전증' 입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때 이상반응을 보이는 병입니다. 증세는 현기증이 일어나고 시력이 떨어져 앞에 있는 것조차 안보입니다. 머리는 쑤시고 급기야 실신하게 되는 병입니다. 그러나 워렌 목사는 목회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증세가 나타나면 마치 손가락 하나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임합니다". 설교를 하다 증세가 나타나면 전혀 교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18년 동안 새들백교회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로 성장시켰습니다. 워렌 목사는 설교하기 전에 중보기도팀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설교를 하면서도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소서. 이 약한 그릇을 사용해 주소서. 나의 약함에서 당신만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이 자리에서 쓰러지면 안됩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여기서 인내를 의미하는 원어는 '휘포모네' 로 뒤로 물러서는 자세가 아닙니다. 주저 앉아있는 자세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예수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나가는 자세입니다. 신앙의 선진들은 믿는다는 이유로 극심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바라보며 인내로 승리하였습니다. 

혹 질병과 아픔, 상처가 있습니까? 남모르는 고민이나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습니까?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예수께서 극복하게 하십니다.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약하고 고난이 크다 해도 예수를 바라보면 이기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바라봄으로 항상 고난을 이겨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온전케 됩니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은 마렝고(Marengo)전투에서 적군이 강한 것을 보고는 돌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을 치는 병사에게 퇴진하는 북소리를 울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북을 치는 병사는 전진하는 북소리를 울렸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의 군대는 북소리에 맞춰 용감하게 전진하여 불리한 전투에서 오히려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전투 후 나폴레옹은 북치는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퇴진하라는 북소리를 울리라고 했는데 전진하라는 북소리를 울렸는가?" 북을 치는 병사가 대답합니다. "각하, 저는 각하를 10여년간 따라 다니며 전투에 임했지만 한번도 후퇴하라는 북소리를 울리라는 명령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퇴하라는 북소리를 울릴 줄 몰라 전진하는 북소리를 울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의 삶은 결코 멈추거나 후퇴하는 삶이 아닙니다. 계속 앞으로 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주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하도록 만들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의 '온전케 하시는 이' 의 헬라어 '텔레이오텐' 은 '완전자'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존재입니다. 구원자로서 믿음을 온전히 성취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조금의 실수와 죄도 없으십니다. 그는 온전하시기에 온전치 못한 인간을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바라볼 대상입니다. 예수를 바라볼 때 부족함이 채워집니다. 예수를 바라볼 때 넘치는 삶이 됩니다. 예수를 바라볼 때 온전한 삶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는 모든 일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께서 함께 하시면 안 되던 일도 됩니다. 막힌 일이 뚫어집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했어도 풀려집니다. 전진할 수 없던 일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는 만사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항상 바라보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1950년 노벨위원회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며 외교관인 랠프 존슨 번치(Ralph Johnson Bunche)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하였습니다. 흑인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번치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어릴 때 어머니까지 여읜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할머니 나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고 신뢰하신다. 하나님께서 너를 신뢰하듯 너도 자신을 신뢰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웃도 신뢰하고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뢰하듯이 너도 그들을 신뢰해야 한다". 번치는 잃은 것도 많았지만 할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얻었습니다. 번치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제국주의와 인종 문제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깔려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948년 유엔에서 중재 업무를 맡았을 당시 중동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중재에 임하여 휴전의 성과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로 노벨 평화상을 얻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어려웠지만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신뢰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통해 언제나 즐거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떠한 사람을 만나든지, 어떠한 문제에 부딪치든지 즐거움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번치 박사는 흑인이요, 고아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즐거움의 전부라고 믿고 언제나 주를 바라보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인들이 당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부끄러움과 고통도 참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장차 누릴 구원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이 즐거움을 맛 본 자들입니다. 이 즐거움이 있기에 충성합니다. 이 즐거움이 있기에 희생합니다. 이 즐거움이 있기에 헌신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즐거움이 충만합니다. 힘들어도 예수를 바라봄으로 즐거움을 얻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한 소년과 어머니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자는 5미터 간격으로 나무토막이 쌓인 기둥에 묶여졌습니다. 사형집행관이 불을 지피기 전에 말합니다. "마지막 기회다. 예수를 안 믿겠다면 살려 주겠다." 그러나 모자는 신앙을 지키겠노라 대답합니다. 집행관은 저주를 하며 불을 지폈습니다. 연기가 자욱해지자 소년이 소리 지릅니다. "어머니, 연기 때문에 어머니 얼굴이 잘 안보여요." 그때 어머니는 말합니다. "아들아, 내 얼굴을 보지말고 주님을 바라보아라." 그들은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담대히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온전하게 하십니다. 즐거움이 있게 하십니다. 부디 예수를 바라보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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