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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성만으론 안됩니다 (삼상 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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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만으론 안됩니다 (삼상 4:5~11)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한 전쟁 기사를 보여줍니다. 하반기를 시작하는 오늘, 이 말씀을 나누는 것은 우리의 삶이 전쟁과도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반기 동안 우리 모두가 승리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본문의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맞선 적은 블레셋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들을 괴롭힌 대표적인 적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주전 12세기에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시킨, 일명 바다의 백성이라고 불렸던 사람들로서, 일찍부터 철기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블레셋이 강했던 반면에 이스라엘은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들은 왕도 없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사사들이 나타나 백성을 이끌곤 했습니다. 본문의 전쟁이 있던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엘리>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종교지도자였지만, 사사도 겸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가 군대를 인솔해야 했지만, 당시 엘리는 98세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두 아들인 <홈니>와 <비느하스>가 백성을 인솔했습니다.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첫 번 접전에서 무려 4천명의 군사를 잃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황했고, 머리를 맞대고 전략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때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은 언약궤를 전쟁터로 모셔오자는 것이었습니다. 4장 3절을 보면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언약궤가 무엇입니까? 언약궤는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싼 하나의 상자로서 하나님을 상징하던 성물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만나가 담긴 항아리, 아론이 사용하던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궤를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지성소에 모시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언약궤가 <실로>라는 곳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어떻게 언약궤를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이 기발한 의견에 동의했을까요? 아마 언약궤를 모셔오자고 말한 사람이 상당한 권위가 있는 전문가요, 리더였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의견을 모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백성들의 리더였습니다. 그들이 의견을 제시했고, 사람들은 동조하게 된 것입니다.

또 언약궤를 모셔 오게 된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은 한 가지 역사적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리고성 전투입니다. 여호수아서 6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성은 가나안 땅에서도 가장 강한 성이었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첫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을 어떻게 점령했습니까? 그 때도 언약궤가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행진을 했습니다. 백성들은 궤와 함께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돈 후 큰 소리로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광경을 여호수아 6장 20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아마 백성들은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때도 언약궤를 모셔왔다. 그리고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랬더니 성이 무너졌다. 우리도 언약궤를 모셔 오자. 그리고 땅이 흔들릴 정도로 함성을 지르자. 그러면 블레셋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언약궤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자, 그러면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이 기대하던 승리를 얻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대패했습니다. 그 날 3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홈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언약궤까지 적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가 전해졌을 때, 엘리마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들은 왜 패배했습니까? 언약궤도 모셔왔고, 땅이 흔들릴 정도로 함성도 질렀는데, 왜 패배했습니까?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처럼 했는데, 왜 패전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모방이 때로는 유익할 때도 있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가 시원치 않은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 그 학생이 우등생 학생을 무조건 따라 하기만 하면 공부를 잘 하게 될까요? 볼펜도 같은 종류를 쓰고, 같은 책을 사서 보고, 같은 학원에 따라 다니면 공부를 잘 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방한다고 해서 결과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신학교 다닐 때 설교 실습 시간이 있었습니다. 교수님과 동료들 앞에서 짧은 설교 한 편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학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설교 실습 시간에 재미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동료들 중에는 당시 유명한 목사님들을 쏙 빼 닮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닮으려고 설교 테이프를 틀어놓고 따라서 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설교가 능력을 가지게 될까요? 그 목회가 능력이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해도 뭔가가 빠진 것입니다. 

교회 부흥도 그렇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세워진 후에 매주 목요일마다 <온누리 목요 찬양 집회>가 열렸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연예인교회를 목회했으므로, 많은 연예인들이 찬양집회에 봉사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많은 교회들이 목요 찬양집회를 따라했습니다. 악기를 구입했습니다. 찬양팀을 세웠습니다. 매주 찬양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교회들이 다 부흥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악기 산다고 예산만 낭비하거나, 그 문제로 교회만 시끄러워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요즘도 이렇게 따라 배우는 것은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하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부흥되는 게 아닙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복을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교회에 이름만 올리면 구원을 받나요? 무조건 성경책을 사고, 따라 다니면 다 잘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흥부는 다리를 다친 제비를 치료해 주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놀부도 그렇게 했습니다. 놀부가 흥부처럼 제비 다리 고쳐준다고 다 같은 결과가 있습니까? 흥부와 놀부는 그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입니다. 놀부는 일부러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린 후에 치료를 해 줍니다. 그 속이 시커멓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겉모습은 다 따라서 했는데, 속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여리고성 전투 때처럼 언약궤를 모셔오고, 함성을 질렀지만, 그들의 속은 딴판이었고, 결과도 딴판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도대체 여리고성 당시와 본문의 전쟁은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우선 그들의 성결함이 달랐습니다.   

여리고성의 전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성결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향해 나가는 백성들에게 성결을 요구했습니다. 여호수아 3장 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고 했습니다.여호수아는 알았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려면, 놀라운 기적을 보길 원한다면 성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 백성은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고, 기적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넜습니다.

반면에 본문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이 때 이스라엘은 말할 수없이 타락해 있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었습니다. 홈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 좋은 것을 제사도 드리기 전에 먼저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성막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간음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반기에 하나님의 복을 받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죄악을 멀리하시고,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거룩해야 복을 받습니다. 창세기 2장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복과 거룩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거룩해야 복을 받습니다. 

또 사무엘상 2장 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거룩한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신실하고 진실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참 놀랍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한 곳이 어디입니까? 4장 2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라고 했습니다. 그 곳은 <에벤에셀> 평원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패배했습니다. 그 때 에벤에셀은 패배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7장을 보세요. 거기서는 에벤에셀이 승리의 들판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가 죽고 사무엘이 사사가 된 후 블레셋이 침공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약했지만, 기적적인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사사가 된 후 백성들을 성결케 했습니다. 우선 우상을 버리게 했습니다. 사무엘상 7장 3절 이하에 보면 이렇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또 온 백성을 미스바 들판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7장 5절 이하를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보십시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적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대패했고, 한 번은 대승을 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부패했을 때는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미스바 들판에서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승리하였습니다. 

비결은 이것입니다. 거룩하게 사십시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말씀대로 순종하면 거룩하게 됩니다. 또 순간순간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시는 성령님께 순종하십시오. <안 돼>라고 말씀하시거든 하지 마십시오. <하라>고 충고하시거든 하십시오. 이 하반기 우리 개인의 영혼도, 가정도, 교회도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복을 크게 얻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의 차이였습니다.   

여리고성에서 승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에서 물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가나안 정복이 쉽지 않음을 알았지만, 철저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는 어떠했나요? 그들은 처음 엿 새 동안에는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았습니다. 그 때 그들은 온갖 이상한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성을 무너뜨리려면 구체적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성만 돌고 있으니, 이 무슨 이상한 짓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한 사나흘 지나자 짜증도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성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신호에 맞추어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러분, 그들의 함성은 허공만 진동시키는 함성이 아니었습니다. 그 함성에는 믿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신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강력한 믿음의 함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제사장부터가 제물을 빼돌리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찌 하나님께 믿음이 있었다고 하겠습니까? 또 언약궤를 가져온 것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언약궤가 자신들을 건질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언약궤는 또 하나의 우상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신뢰하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믿어야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언약궤를 가져오면 이긴다>고 말하는 소위 전문가에 속지 마십시오. 전문가가 상황을 타개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구원합니다. 사단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사단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이 하반기에 믿음으로 굳게 서십시오. 이사야서 7장 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믿어야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우리의 의가 될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 무수한 전쟁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시편 18편 29절을 보면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의 전쟁터를 누비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승리케 하실 줄 믿습니다.

또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신앙을 가지십시오. 다니엘의 친구들은 불에 태워 죽이겠다는 당대 천하의 권력자인 느브갓네살의 위협 앞에서 굴하지 않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인생은 전쟁과도 같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님들이 모두 승리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거룩하게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고 함성을 지르십시오. <하나님, 날 도우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 모두 거룩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승리할 줄 믿습니다. 크고 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지키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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