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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신 1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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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신 16:9~15)

오늘은 맥추감사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이라고도 불립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을 기념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둘째는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기억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하신 것을 감사드리며, 그 첫 열매를 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 첫 열매로 보리와 밀을 수확하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셋째는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을 기념하고, 한 해 동안 결실을 맺어 추수한 것을 감사드리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드시 이 3대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셨습니다.  
출34장 23절 말씀입니다.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찌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날 성도들이 절기를 지키는 것이 힘들고 무거운 짐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오늘 말씀에도 기록된 것처럼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자원하는 예물, 그 힘대로 드리라는 말씀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절기의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부모님들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을 때 절기 헌금은 아주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힘대로 헌금을 준비하여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에는 용돈의 전부를 드렸고 맥추감사절에는 용돈의 절반을 드렸습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도 용돈의 10의 1을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용돈은 용돈이라기 보다는 헌금이었고 그 외에 용돈은 심부름을 하거나 명절에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절기 헌금을 드릴 때 최선을 다합니다. 담임목사로서 제일 많이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합니다. 힘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절기 때 마다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만간에 성도들에게 그 자리를 추격을 당하여 더욱 힘대로 드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힘대로 드려야 한다.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라.” 그러니 절기의 감사가 기쁨의 감사보다는 부담스러운 감사의 절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절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절기를 지키는 것이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요? 진정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더 많은 예물을 받으시기 위함일까요? 우리들에게 많은 부담을 지우시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드려야 채워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고 모든 만물의 이치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세우시기도 하시며 세운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심으시기도 하시며 뽑으시기도 하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와 에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의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희가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디서 즐거워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교회에서 즐거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절기는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입니다. 즐거워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절기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 즐거움은 결코 세상적인 즐거움이 아닐 것입니다. 그저 마음만 편안해지는 값없는 즐거움이 아닐 것입니다. 

왜 즐거워합니까?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원하는 예물을 그 힘대로 드리면서도 즐거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가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고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의 이스라엘은 고통과 죽음의 나날들이었습니다. 고통의 울부짖음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강제 노역장에서 힘겨운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어린 남자 아이거든 강물에 던지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바로의 명령 앞에서 수많은 남자 아이들이 강물에 던져져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지옥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고통 속에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세우시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주시고 해방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고통의 땅 죽음의 땅에서 구원받아 젖과 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출애굽했습니다.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고통 속에 울부짖은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며 기적과 이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애굽의 마병들의 추격을 불기둥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홍해의 길을 열어주시고 애굽의 마병들은 홍해의 물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물 없는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뱀과 전갈이 있고 추위와 더위로 인해 지치게 하는 광야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풍족하지도 못합니다. 쌓아놓을 것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가난한 광야였습니다. 어디에도 안식할 자리 없이 떠도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은 그들은 모두 애굽의 속박과 고통과 죽음의 땅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광야의 척박함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의 땅, 가나안의 복지를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스라엘이 진정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입니다. 

편안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이 풍요롭기 때문도 아닙니다. 척박합니다. 힘겹습니다. 아직도 고난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낮의 해가 상치 못하고 밤의 달이해치 못하게 하시는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그 광야의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는 줄 압니다. 고유가 시대에 물가가 상승하고 심리적인 위축은 물론 경제적인 위축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상황을 보면 척박한 광야의 땅입니다. 넉넉하지 못하고 궁핍한 광야의 삶입니다. 사실 현실은 즐겁지 못합니다. 짜증이 나고 한숨이 나고 불평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생명과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여러분들과 함께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비록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도 언제나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고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왜 우리가 즐거워해야 하는가?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복 주신 것을 인하여가 아닙니다.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입니다. 복이 과거가 아닙니다. 물론 현재도 아닙니다. 복이 미래입니다. 주실 복입니다. 
과거의 복 받은 일로 즐거워하라는 말씀도 아니요. 현재 받은 복을 인하여도 아닙니다. 앞으로 복을 받을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참 재밌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그것도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고 네 힘대로 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받은 복도 아닙니다. 지금 주신 복도 아닙니다. 앞으로 받게 될 복을 인하여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것이 즐거워 할 이유가 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말하면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설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온전히 즐거워한다는 것은 정말 제대로 가식 없이 즐거워하라는 표현입니다. 형식만 갖추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체면을 생각하는 즐거움도 아닙니다. 어떤 가식적인 것이나 체면도 없이 순순히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하겠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확신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마침내 복 주실 것을 온전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오늘의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복 주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온전히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히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멘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신 복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주실 복을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가 늘 실천하고 있는 감사가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의 감사는 먼저 감사이기를 원하기에 하나님께 주실 복을 인하여 매주 감사를 고백하고 헌금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감사하고 즐거워할 일들이 많아지고 또 그렇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온전히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죄와 사망의 굴레에 묶였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풀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은총을 받았기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둘째는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해야 합니다. 반드시 복 주실 것입니다.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실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맥추감사절에는 첫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모든 첫 것이 하나님의 것임으로 고백함으로 드렸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후의 모든 열매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황충이 틈타지 못하게 하시며 온전한 결실을 이루도록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첫 열매의 감사는 곧 온전히 즐거워하는 감사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온전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구원의 기쁨으로 감사하고 하나님의 주실 복을 인하여 감사하고 온전히 즐거워하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온전히 즐거워하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주님의 성찬에 초청합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움으로 성찬을 받을 때 마땅히 주님의 평화와 긍휼과 자비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와 평안을 얻고 병든 이들이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고 구원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므로 온전히 즐거워하는 성도들로 세워지는 역사가 성찬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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