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맥추감사절] 감사의 힘 (합 3:16~19)

  • 잡초 잡초
  • 217
  • 0

첨부 1


감사의 힘 (합 3:16~19)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한 여인이 켈리포니아 사막 근처에서 훈련하고 있는 남편을 따라가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불평과 한탄을 담은 편지입니다. 

  "지금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제브 사막 근처의 육군 훈련소에 배속되어 있어요. 저도 여기에 있는데 비참하기 짝이 없어요. 선인장 그늘에서도 화씨 125도의 뜨거운 더위가 몰아닥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음식물은 물론이고 숨 쉬는 공기도 모래투성이지요. 여기선 도저히 살 수 없어요.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을 것 같아요."

  딸에게 답장한 아버지의 편지는 단 두 줄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그 편지를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얘야, 교도소에서 두 사나이가 창밖을 보았단다. 한 사람은 창살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별을 보았지. 너는 지금 뭘 보고 있느냐?" 

  축복과 감사는 절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오직 내가 축복을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받은 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도 못하는 축복은 사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좋은 것을 받았다 해도 당사자에게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축복과 감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축복 없는 감사도 없고 감사 없는 축복도 없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하박국이라는 선지자의 감사찬양입니다. 하박국은 처음부터 감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박국의 서두는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 내가 이처럼 부르짖어도 왜 듣지 않으십니까?  왜 나를 강포로부터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왜 악인을 방치하여 정의가 실종되게 하십니까?  이처럼 처음에는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찼던 하박국이 끝부분에서는 찬양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찼던 하박국이 이제는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기는 것같은 부끄러운 모습을 벗어버리고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뛰어다니는 당당함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바로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의 힘은 우리로 아름답게 변화시켜 줍니다.  감사의 힘은 우리로 높은 곳을 뛰어다니게끔 끌어 올려줍니다.  감사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게 만들어줍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박국처럼 감사신앙을 소유함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의 힘은 우리로 환란날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줍니다.(16)

  하박국은 전쟁이 엄습할 상활, 그것도 당시 가장 강한 나라 바벨론이 유대 나라를 침력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중에 극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16)  하박국의 마음은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창자가 흔들리고, 뼈가 썩는 것같은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두려움이 목소리와 온몸이 떨렸습니다. 이제 곧 나라는 전쟁에 휘말려 쑥대밭이 되고 성전도 파괴되어 폐허로 변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게 될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주여, 왜 이처럼 엄청난 환란을 당해야 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부르짖어 보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니까 원망과 탄식이 감사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나무는 가뭄에 뿌리가 깊어지고 겨울의 찬바람에 단단해집니다. 여름의 불볕 더위를 잘 견뎌야만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집니다. 부부는 함께 환난과 시련을 겪어야 더 일체감을 누리게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하박국은 환란을 통하여 감사의 노래를 배우게 되고, 심지가 견고한 감사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고난과 아픔만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 길을 묻고 물어 마침내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가 살고 있다는 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 속 오두막집 앞에서 한 천사가 앉아서 무언가를 산 아래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던지고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것 말인가? 이건 행복이라는 것이네."

  그 사람은 다가가, 크기가 각기 다른 동그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과는 달리 그 동그란 것에는 각각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 고난, 아픔, 시련이지 않습니까?"

  천사는 웃으면서 '고난'이라고 적힌 것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껍데기를 벗겨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가? 겉에는 '고난'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의 이름은 '행복'이라는 것이네. 행복은 양파 같은 것일세. 우리는 인간에게 그냥 통째로 행복을 주는 경우는 없네. 겉보기에는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혀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지."

   "나는 요즘 심히 걱정되는 일이 있네. 인간들은 내가 던지는 행복을 겉모습만 보고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믿어. 이걸 보지도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다는 것이네. 신은 왜 내게 행복은 주지 않느냐고, 이런 것만 주냐고 불평만 해대는 것일세. 참 한심한 일 아닌가?"

  깨달음을 얻은 그가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천사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 마디 하였습니다.
"잊지 말게. 고난, 아픔, 시련과 행복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행복'의 겉에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어서 주는 이유는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임을…."
  
요즘은 우리는 근래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려움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되면 어려운 시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련도 위기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복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환란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감사의 힘은 우리로 궁핍한 때에도 행복하게 살게 합니다.(17)

  17절을 보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의 반복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도 없는 극한적인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전쟁의 위험, 의식주의 궁핍,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신앙적으로 위기의 연속입니다. 당연히 절망적 분위기속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포도, 무화과, 감람류는 이스라엘의 특산물이고, 우양은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삶의 터전인데, 이런 것들이 흉작일지라도, 빼앗겼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겠다고 하박국은 외치고 있습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평, 원망, 의심을 다 털어버리고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하박국은 궁핍속에서 오히려 크게 성숙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풍족할 때만 아니라 부족할 때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할 때만 아니라 패배할때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육신의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생명만 아니라 죽음도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신시내티에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 사장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직원의 실수로 기계 작동 시간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불량품 비누가 생산되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부서 책임자는 담당 직원을 심하게 질책했고 그 직원은 회사를 곤경으로 몰아간데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프록터 사장은 큰 손실을 입게 된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침착하게 문제를 수습하고자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불량품 비누가 너무나 가벼워서 물에 뜨는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비누가 물에 뜨면 목욕할 때 더 편리하지 않을까?'  그래서 프록터 사장은 그 불량비누가 만들어진 과정을 연구하여 신상품을 개발 시장에 출시하였습니다. 그 비누가 아이보리 비누입니다.  물론 아이보리 비누는 대히트를 쳤고, 회사는 세계적인 비누회사로 발전했으며 프록터 사장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만약 프록터 사장이 곤경에서 실수한 직원에게 크게 화를 내고 하나님을 원망했더라면 아이보리비누는 만들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무언가를 잃은 것으로 인하여 섭섭하고 마음이 아픕니까?  눈을 들어 조금만 멀리보면 잃은 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덜 좋은 것은 가져가십니다. 그러므로 잃었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주실 최선의 것에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힘은 하나님을 통해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합니다.(18)

  뭘 받아야 감사하고 뭘 누려야 하는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고, 얻은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러러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되고 더욱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의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즐겁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한없이 기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감사의 제목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모든 사건을 초월하여 감사드릴때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복잡했지만 가정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근심과 걱정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었고, 술을 마셔야 잠시라도 걱정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잭슨 아주머니는 언제나 편안하고 명랑했고,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의 집 일을 하면서 사는데도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뭐요?"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리 염려가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명예가 없은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도 없어요. 또 이미 병들어 죽을 뻔한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이유도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으며 달리 크게 바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벌었다는 것이 근심을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구나.' 
  
  불평도 습관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이 인격 그 자체입니다. 불평의 습관에 사로잡히면 본인만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불평인생으로 살게 만들고 불행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감사를 습관화하면 감사가 훌륭한 인격을 만들어주고 행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얼굴빛을 밝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겟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내려다 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하다가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메뚜기처럼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위기마다 함께하시며 건져내 주셨건만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데 날마다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만나를 받아 먹으면서도 불평했고, 길을 가면서 길이 나쁘다고 원망했고, 고기가 없다고 불평했고, 지도자 모세가 잘못 인도했다고 원망했습니다.  불평과 원망만 일삼다가 인생이 불행하게 끝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늘 읽으며 이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았던 불행한 민족을 보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정신차리고 지금 당장 불평을 던져버리고 감사하는 습관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불평제조업자가 되지 말고 감사제조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