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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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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는 신앙 (살전 5:18)


솜씨는 뛰어나지만 인색하기로 소문난 어느 의원이 있었습니다. 점점 유명해지면서 본래적인 의사의 마음은 사라지고 베풀 줄 모르고 욕심만 늘어갔습니다. 어느 날 그리 중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찾아와서 고마워하면서 예쁜 비단주머니를 선물로 주었습니다."선생인, 이것은 제가 손수 만든 겁니다. 하찮은 것이어서 죄송하지만 받아주세요."그것을 보고 이 인색한 의원은 머리를 크게 가로저으면서 대답합니다.
"나는 사례를 물건으로 받지 않습니다. 현금으로 주시오."

어찌나 정색하면서 말을 하는지 머쓱해진 어머니는 내밀었던 주머니를 도로 집으면서 물었습니다.
"그럼 치료비는 얼마나 되나요?",
"다섯 냥입니다. 한 푼도 깎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잠자코 의사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그 비단 주머니를 열고 열 냥짜리 돈을 꺼내어 의원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거스름돈은 주세요."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기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처음마음이 변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별은 없을 것이고, 처음 다짐이 변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 변하지 않는 인격,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이 처음입니다. 처음 먹은 마음이 중요하고, 처음 사랑의 간절함이 중요하고, 처음의 순수함이 중요합니다. 가난할 때는 마음도 가난했는데 부요해지니까 마음도 부자가 되어갑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채우기 위해 무언가에 욕심을 내고 그 욕심이 과하여 처음 마음이 변질되어간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요즘 텔레비전 광고 중에 재밌는 광고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아버지가 한국에 있는 7살짜리 아들에게 화상 전화를 걸어서"아들 커서 뭐가 되고 싶어?"하고 물으면 사탕을 입에 물고 빨면서 아들이 대답합니다."대통령이요"합니다. 이 대답에 아버지는 옆에 있는 동료들한테 자랑스러운 듯 알려줍니다. 그리고 기특한 마음과 흥분된 기분으로"그럼 대통령이 되면 아빠는 뭐 시켜줄래?"하고 묻는데 이 질문에 아들의 대답이 압권입니다."음~탕수육"그럽니다. 아버지의 동료들이 한 바탕 웃다가"그럼 아저씨들은?"하고 묻자"같이 드세요"라는 천진난만한 아들의 대답으로 광고는 끝이 납니다. 때로는 이런 순수함이 절실히 고파지는 때도 있습니다. 너무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더 커지려고 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만 하다가 보면 마음에 순수가 없고 이 순수함이 사라지면 감사도 없어집니다. 

사람이란 마음이 가난해야합니다. 이 말은 지나친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자면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줄 아는 순수한 마음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나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처럼 믿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감사를 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출판사 편집장이며 베스트셀러 여성작가인[M.J.라이언]이 쓴<감사(Thanks)>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친절과 감사, 관용을 주제로 강연을 자주하며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인생을 긍정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만족을 찾으려고 하면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고, 돈을 행복의 잣대로 삼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며, 있는 그대로를 감사해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인생을 긍정적인 생각과 올바른 자세로 바라보고, 현실에서 부딪치는 고난과 갈등 속에서 절망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갈등마저도 긍정적으로 맞아들이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 좀 더 성숙한 인생을 가꾸도록 도와줍니다. 사람이란 평소 그 생각이 무엇이냐, 철학이 무엇이냐, 신앙관이 어떠냐에 따라 인생전체가 달라지고 마지막까지 아름다울 수도 있고 비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틀>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에 맞추어서 하는 골격이나 판을 틀이라고 합니다. 이 틀에 맞추어서 같은 물건이 여러 개 만들어지고 그것이 곧 규격이 되어서 대량생산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건을 만들 때에 사용하는 틀도 있지만 또 하나의 경우에 틀이라는 말이 사용 되는 것은 형식이라는 말의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무슨 일을 진행할 때 틀에 맞춰서 진행해야 하는 형식이 있습니다. 때로는"틀에도 맞지 않게 제 마음대로 한다."는 비판이나 혹은 그 반대로"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스러워서 좋다."는 긍정적인 호응을 얻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틀>이라는 것에 알게 모르게 얽매여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데 그래서 중요한 것이 어떤 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 마음의 틀이라고 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이것은 크게는 마음의 구조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고 적게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가령 같은 새소리를 들으면서도 동양 사람들은"새가 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새가 노래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음의 상태로 보면 이렇습니다. 한참 달콤한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들리는 새소리에는'아, 저 새도 사랑을 속삭이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쩌다가 사랑이 깨져버렸습니다. 그때 들리는 새소리에는'저 새도 임을 잃고 밤새도록 슬피 우는구나!'합니다. 

어디 들리는 소리만 그렇겠습니까? 보이는 시각도 그렇고, 느끼는 감정도 그렇습니다. 어떠한 마음의 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도 다릅니다. 같은 사명을 가지고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짜증과 불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전도하라>는 사명 앞에'되지도 않는 전도는 왜 하는 거야, 사람이 와야지 전도를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니까 해야지 전하는 것은 내 할 일이고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근본 마음의 틀이 다른 것입니다. 

또 같은 사건을 놓고서도 거저 감사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탄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마음의 틀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틀이 근본적으로 감사라는 틀이라면 모든 것이 감사로 만들어져 나옵니다. 아무리 섭섭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일지라도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감사로 만들어져 나옵니다. 그 틀이 감사거든요. 다른 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그 근본 틀이 원망이나 불평인 사람은 아무리 감사한 일이 그 마음에 들어가도 곧 바로 원망이 만들어져 나와 버립니다. 희한하게도 불평하는 데는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마치 준비 되어 있는 것처럼 원망과 불평은 곧바로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소 근본 틀이 그것이거든요. 다른 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쁜 일, 좋은 일, 즐거운 일이 그 마음에 들어가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곧 원망과 불평이 만들어져버립니다. 

감사와 염려라는 것이 아주 가까이서 엇갈릴 때가 많습니다. 한쪽으로 생각하면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세상사가 그렇습니다. 영어에서 생각한다는<띵크(Think)>와 감사라는<땡크(Thank)>의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이 말은 생각한다는 것과 감사한다는 것은 그 뿌리가 같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먼저 생각하느냐 하는 것과 어느 각도에서 생각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감사가 없는 이 환경이 달라진다고 감사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달라져야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감사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감사하게 되는 것이요. 겸손한 사람이 감사할 수 있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고 여건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기를 한평생 기다려도 마음의 틀이 감사의 틀이 아니면 그 사람의 입에서는 감사라는 말이 절대로 없습니다. 

겨울이 되면 붕어빵 장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붕어빵 틀을 보면 교훈이 있습니다. 붕어빵 틀에서는 정확하게 붕어빵이 나옵니다. 메기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나오지 않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부어도 붕어빵이요, 녹두반죽을 부어도 붕어가 나옵니다. 도토리전분을 부어도 붕어 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재료가 들어가도 나오는 것은 오직 붕어 하나입니다. 

좀 고급스럽게 생각해봅시다. 대답하십시오. 붕어빵 틀에 금물을 갖다 부으면? 금붕어가 나오고 은물을 갖다 부으면? 은 붕어가 나옵니다. 유리를 녹여 부으면? 유리붕어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틀이 붕어 틀이니까요. 그렇습니다. 틀이 문제입니다. 그 근본 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아무리 다른 재료가 들어가도 붕어만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다시 한 번 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바가 있는데 그것이 곧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감사의 틀>을 그 근본으로 만들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감사의 틀이 우리 속에 만들어지면 무엇이 들어가도 감사가 되어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미움이 들어가더니 나올 때는 감사가 되어 나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순간 솟구쳐 오르는 원망과 걷잡을 수 없는 불평이 물밀듯 밀려들어 왔는데 그것이 밖으로 나올 때는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되어서 나오더란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게 놀라운 일 아닙니까? 

살다보면 분명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혹은 현실에서 인간적인 고민이나 아픔이나 슬픔, 미움, 시기, 질투...하여간 볼일 안 볼일 겪을 일 겪지 말아야할 일 모두를 보고 겪는데 그래서 당연히 더 큰 불평이 되어서 나와야 되고, 더 많은 원망이 되어서 쏟아져야할 텐데 그게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무엇이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감사가 되어서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감사의 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그렇습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런 현상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감사의 틀이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감사의 틀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예수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감사의 틀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게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조건이 없는 감사를 말합니다. 주셔야 감사하겠고 좋아져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보니 모든 게 얻은 것이고 감사하고 보니 더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현실에 대한 만족을 의미합니다. 평안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고 감사하다하니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부자여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보니 내가 부자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과 감사 속에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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