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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언약 (눅 22: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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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 (눅 22:14~23)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신 일을 전하는 복음서들의 기록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두 말씀에 주목합니다. 하나는 19절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20절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20절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신 말씀의 뜻을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이라 하셨습니다. “새 언약”이라는 말은 옛 언약 또는 본래의 언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맺으신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고 말씀하시며 여러 가지 율례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로 돌아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말씀과 율례를 전했고 그들은 한 소리로 응답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겠다고 했습니다(출24:2-3). 이에 모세는 제단을 쌓고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는 그 피를 가지고 제단에도 뿌리고 백성에게도 뿌리며 말하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4-8) 했던 것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어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며 그곳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약속의 땅에 들어온 백성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나라를 잃고 이방나라의 지배하에 신음하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의 파기에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으로 대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이 아닌 모든 민족으로 새 언약의 대상을 삼으셨고 당신의 아들로 새로운 화목제물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온 세상 사람을 위하여 뿌리게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유월절의 희생양이 되시기로 하신 주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잔을 나누시며 그 잔을 마지막으로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고 그 십자가에서 당신이 피를 흘리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새로 언약을 세우시는 일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예수님의 다른 말씀은 19절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하신 이 말씀은 특히 종교개혁 당시 로마천주교와 개혁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조차도 심한 해석차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말씀입니다. 로마천주교에서는 “이것은 내 몸이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성찬식에서의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되어 더 이상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루터 같은 개혁자는 떡과 포도주가 모양과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실제로 들어있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장로교회의 전통적 성찬론은 “이것은 내 몸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 하셨지만 예수님이 실제로 포도나무이시고 우리가 실제로 포도나무가지가 아니듯이 떡을 가지시고 “이것은 내 몸이라.” 하신 말씀도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시고 “이것은 내 몸이라. 이것은 내 피라.” 하신 것은 곧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흘리실 당신의 살과 피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일입니다.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뀌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지만 그 속에 예수님의 실제 살과 피가 떡과 포도주 속에 숨어서 함께 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떡과 포도주는 여전히 떡과 포도주일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적으로 떡과 포도주 속에 들어있게 되는 것은 아니나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주님께서 신비스럽게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며 우리와 연합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따라서 성찬을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이 구원을 좌우하는 것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즉 성찬식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떡과 포도주를 받는 행위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떡과 포도주나 성찬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고 우리의 구원사건은 그 십자가의 죽음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이지 성찬식에서 이루어지고 떡과 포도주를 받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말씀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구원사역을 기념하고 회상하며 감사하고 그 은혜에 바른 믿음으로 응답하기를 다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성찬에 관한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이제 우리는 성찬예식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성찬예식에 임할 때 우리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고백하며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찬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53:5) 합니다.

   둘째,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회복되며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확신과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고 성찬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9-20) 했습니다. 예수님은 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6:54) 하셨다고 요한은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결한 삶의 다짐과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성찬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7-8)

   넷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한 몸이라는 인식과 하나 되고자 힘쓰는 자세로 성찬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6-17) 했습니다.

   다섯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한 이 놀랍고 귀하고 복된 구원의 진리를 증언해야할 전도의 사명을 다짐하며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하셨다고 쓰고 있습니다.

   성만찬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자세를 가지고 오늘 성찬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의 성찬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빕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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