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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 없는 신앙이라면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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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없는 신앙이라면 (눅 13:6~9)

세계 3대 피자 회사하면<피자헛>,<도미노>,<리틀 시저스>를 꼽습니다. 왜 이 세 회사가 유명한지는 저마다 내세우고 있는 독특한 판매 전략 때문입니다.<피자헛>은<다양한 메뉴>를 판매 전략으로 내세웁니다.<도미노>는<남보다 빠른 배달>에 전략 둡니다. <리틀 시저스>는<싼 가격>을 판매 전략으로 내세워서 유명해 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피자회사가 두각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어디인지 아십니까?<파파존스>라고 하는 회사입니다. [슈네트]라는 30대 젊은 사장이 경영하는데 매출이 매년 배 이상 오르고 있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파파존스가 기존 3대 피자 회사를 앞지를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그 이유를<파파존스>가 내거는 판매 전략에 둡니다. 그 판매 전략은 피자의 본질로 승부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피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맛입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최고의 맛을 내겠다는 전략입니다. 사실이지 이 보다 족한 전략은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본질에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본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이 건강하면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에 맺어지는 열매가 많습니다. 음식의 본질은 맛입니다. 맛있는 음식점은 소문이 나고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게 마련입니다. 흔히 이런 경우를 봅니다. 다 찌그러져 가는 오두막집에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손님이 미어터지니까 건물을 짓고 크게 확장해서 신장개업했는데 갑자기 망하는 식당들을 봅니다. 이걸 보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습니다. 외형이 아니라 음식 맛, 즉 본질이 변한 겁니다. 이건 문제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여러분, 이렇게 중요한 것이 본질인데 신앙생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예배, 기도, 봉사, 헌금.....그렇습니다. 만약에 이런 본질들이 건강하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게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신앙의 열매입니다. 그것도 건강한 열매가 많이 맺혀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무화과나무의 본질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본질이 있고 그 본질에 따르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존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귀하다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희생도, 수고도 할 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최종 목적이 분명치 않은 그것을 위해 수고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허무한 짓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본질과 그에 따르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주인이 왜 무화과나무를 심었겠습니까? 나무마다 각기 목적이 달리 쓰이겠지만 무화과나무는 관상수로도, 재목으로도 심지어는 꽃나무로도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대부분의 나무가 꽃이 핀 다음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아예 꽃이 없이 바로 열매를 맺기 때문에<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이 무화과나무에게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열매 맺는 일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존재의 본질적인 목적은 그것뿐입니다. 

이렇듯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존재목적의 본질이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 목적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비록 늙어서 무슨 할 일이 있겠나 싶지만 이 시간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고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하나의 사건,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열매, 즉 목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인간됨의 본질입니다. 여기에는 무슨 변명도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바라는 주인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 하는 데는 많은 요구가 따릅니다. 예배하라, 기도하라, 봉사하라, 전도하라 할 때에 우리는 얼마나 그 요구에 따릅니까? 그때 그 때마다 변명하며 핑계하느라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말하기를“사람은 외부적인 요구에 대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몇 가지의 보호 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첫째가 변명입니다. 자기 양심도 분명히 수긍하는 일에도 변명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공격입니다. 누가 자기를 비판하면 즉각적으로 공격합니다.'너도 그랬지'혹은 '너 때문이다.'라고 공격하는 심리가 있답니다. 

그런가하면 거리를 두며 자기를 보호하려고 합니다.'좀 더 있다가 하자.''아직은 이르다. 회개를 해도 죽기 전에 해야지. 예수님 옆에 있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도 직전에 회개했는데....'하는 마음으로 자꾸 미뤄나가는 마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구에 대해 아예 배제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예 문제 삼지를 않습니다. '나만 죄인이냐? 남들도 안하는 예배, 봉사, 기도, 전도 나만 할 필요가 있나 신경 쓰지 말고 아예 생각을 하지말자'하고 배제해 버리는 이러한 심리입니다. 본질과 목적 자체를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은 정말이지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무화과나무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심어 놓은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화과나무의 존재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무화과나무가 바로 이런 처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열매가 없다고 당장 찍어버린 것이 아니라 3년을 기다려 주었다가 그래도 열매가 없자"찍어 버리라"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은 더 이상 무슨 변명도 불평도 있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려주십니다. 참아주십니다. 더 감사한 것은 무작정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가꾸면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열매 맺도록, 즉 깨달으며, 행동하며, 부지런하며, 진실하며, 겸손하도록 그리하여 마침내 열매 맺도록 적극적으로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그 기간을 나의 편안함과 안락과 내 명예 내 세우는 데와, 내 체면 유지하는 데와, 남의 험담하는 데와, 잔소리하는 데와, 다른 사람을 은근슬쩍 밟아 누르는 데와, 괜스레 트집 잡아 남 걸고 넘어가는 데와,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제고집만 부리는 데와, 거짓말하는 데와, 게으른 습관을 나타내는 데와, 그 외에 신앙적이지 못한 악한 마음을 살찌우는데 사용했으니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말도 변명도 불평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무화과나무가 잊지 말아야 할 은혜가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자기를 포도원에다 심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보통은혜가 아닙니다. 포도밭에는 당연히 포도가 심어져야하는 자리 아닙니까? 그 자리에다가 포도나무를 심었으면 얼마나 많은 포도를 수확할 텐데 쓸데없이 자리나 차지하는 무화과나무를 그 귀한 땅 포도원에 심었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쓸모없는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 외에는 더 설명 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은혜는 아직도 무화과나무가 잘리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일 년 건너 한 해라도 열매를 맺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 무화과나무는 자기의 본질을 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이 이 무화과나무만 못했습니까? 포도원주인이 무화과나무에 쏟아 부은 정성에 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울인 정성은 아마 견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질 없는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형식적이고, 마지못해 흉내나 내는 그런 생활 속에 열매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파리 한 마리가 그만 실수해서 하루살이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루살이들은 말합니다. "하루로 끝이니 잘 먹고 잘살자." 그리고 죽습니다. 파리는 자기도 하루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삶을 하루로 잡고 준비하고 살면서 다른 하루살이들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하루살이들은 너무 짧은 인생이기에 남 생각은 전혀 안 했습니다. 오직 제 몸만 아꼈습니다. 그것을 보고 파리도 그들처럼 했습니다. 

그 하루 동안에 가진 모든 것을 다 먹었습니다. 입을 옷도 가진 돈도 다 썼습니다. 저녁이 가까울수록 그는 더 열심히 가진 것을 탕진했습니다. 해가 넘어가더니 드디어 밤이 되었습니다. 하루살이들은 신음하며 쓰러졌습니다. 그도 피곤했습니다. 졸음이 왔습니다. 그는 다른 하루살이들처럼 누웠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았다" 생각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파리는 깨어났습니다. 두리번거리던 파리는 옆에 죽어있는 하루살이들을 보았습니다. 그제 서야 자기가 속은 줄을 알고 후회합니다. "속았구나. 나는 죽지 않았어. 나는 이제 거지야." 그는 자기의 생이 하루 이상인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가진 것을 다 낭비해 버렸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의 에피소드입니다. 전투 중에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막사를 순시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막사 옆을 지나가는데 병사들이 나폴레옹을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가 막혀서 막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당황한 병사들이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사연인즉슨 나폴레옹이라는 또 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 하나가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골탕을 먹고 있어서 그 나폴레옹을 욕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나폴레옹은 그 병사를 당장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호통을 쳤습니다."자네, 당장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행실을 바꾸게!" 

여러분, 우리도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이름을 달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그리스도인>이라는 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임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이고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하나님의 자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자녀로서 아름다운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 희생, 내 수고, 내 기도로 인하여 무슨 열매가 있습니까? 본질을 잃어버린 신앙으로, 열매가 없는 신앙으로 살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나에겐 무엇 때문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하루하루의 유예기간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 이상의 유예기간이 없이 바로 집행의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본질로 돌아가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인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목적을 발견하여 그 안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가치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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