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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사헌신예배] 선생의 길 (약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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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길 (약 3:1~2)


어느 시골의 총각 선생님이 출근길에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징검다리를 잘못 밟아 신발과 바지가 물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서울에서 올라오신 어머니께서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가 어머니에게 되돌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은 바로 놓았느냐?”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선생이 되겠다고 그러느냐? 얼른 가서 돌을 바로 놓고 오너라. 그리고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 야속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백 번 생각해도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얼른 가서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돌을 바로 놓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돌을 바로 놓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고 다른 사람도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스승 주일을 맞아 며칠 전 스승의 날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선생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선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다 보니 그만 스승의 날에 학교 문을 닫고 쉬는 학교가 많았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냐고 물었더니 단 15%만이 그렇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무엇이 이렇게 스승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습니까? 결국 스승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스승으로 하여금 이런 비애와 고통을 감수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는 어떻습니까? 우리만 보더라도 어린이 교회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부장 선생님 외에는 한 분도 없는 현실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선생되지 않으려 합니까? 

그러나 이러한 삶의 환경과 상황 중에도 한 신앙인의 다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3년 간이나 그 선생님께 배웠다. 우리와 우리 반을 향한 그 분의 믿음과 성실성은 실로 놀라운 복으로 보답되었다. 그 반 학생들 가운데서 변호사와 판사가 각 각 한 명씩 나왔고. 목사님이 세 명이나 배출되었던 것이다.”
먼저 기억할 것은 가르치는 자가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야고보서 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아무나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선생은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는 모두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라고 2절에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결국 실수가 많은 사람이 가르치는 자가 되면 그를 보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그래서 심지어는 생명을 잃어버리게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넘어지게 만드는 것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져짐만 못하다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듯 한 생명을 귀히 여기시며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까지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이신데 어찌 함부로 선생이 되어서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생명들로 시험에 들게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여기서 야고보가 이런 부탁을 하는 참된 뜻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르치는 분들은 마땅히 실수가 없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지혜와 은사로 가르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하고 선생으로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울러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31절로 32절에서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겠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네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 너는 뉘우치고 돌아온 후에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듯 제자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면 가르치는 자들이 마땅히 배우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되 그들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날마다 기도할 필요가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르치는 분들은 먼저 지혜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능력과 내 지혜와 내 힘으로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 쉽게 지치고 마는 것입니다. 

한 생명을 가르쳐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키워내는 일이야말로 정말 중요할 뿐 아니라 엄청난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잘 아는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르치는 자들이 지쳐 쓰러지게 만들려고 기를 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자들이 먼저 영적으로 무장되어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는 곧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이 되기에 그만큼 가르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분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더 큰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온전히 살아가며 맡은 바 사명을 다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장군이 훈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는 무명의 용사들입니다. 교육학자들은 보통 학문의 업적을 자랑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무명의 교사들입니다. 선생님은 갈채도 없고 금메달도 없습니다. 단지 내일의 소망인 학생들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혀줄 뿐입니다.
 
지혜로운 교사는 학생들의 미래를 사랑의 망원경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둔한 교사는 학생들의 행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실수만을 찾아냅니다. 사랑과 격려가 최선의 교육입니다.
 
교사는 연을 날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연이 땅에 떨어지려고 할 때마다 적당히 줄을 잡아당겨 하늘로 향하도록 조절합니다. 그리고 한시도 연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연이 푸른 창공에 날아오를 때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교사의 마음입니다. 스승이 존경을 받아야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랍니다. 자녀 앞에서 스승을 비난하면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그 자녀입니다. 
 
너희가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선생의 직무를 조심성 없이 하지 말 것입니다. 아울러 내가 선생이 되어 너희에게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이같이 하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처럼 모든 일에 본이 되어야 하고 끈기를 가지고 돌아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을 것을 함께 하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꼭 배우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가르치며 수고하는 분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수고에 아름다운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치열한 영적 전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기도로 저들을 후원하지 않으면 또한 안될 줄 압니다. 모든 가르치는 분들은 정말 부끄러움이 없이 수고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시고 모든 성도들은 가르치는 분들의 수고를 격려하며 감사하며 위하여 기도하는 귀한 역사가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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