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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스러운 제자 (막 3:13~19) - 교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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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제자 (막 3:13~19)


제가 목회를 그만두는 날이 언제일까요? 중간에 별일이 없으면 나이 들어 은퇴할 때까지 가겠지요. 그러려면 우선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한결같이 성실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늙으면 설교할 때 말이 느려지고 어눌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피차 괴롭습니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조기 은퇴를 하겠습니다. 또 여러분도 저를 실망시키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저는 힘을 잃게 됩니다. 교회는 교인들과 목회자가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우리는 우리교회 후임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어떤 분을 우리 교회 2 대 목사님을 모시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7가지 목회 원칙을 좋게 여기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교회 목회 원칙들은 모두 개혁적입니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 소그룹 운동, 살아있는 예배, 탁월한 문화, 헌금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 사람 앞에 자랑하지 않는 것, 투명한 재정 운영, 청지기로서의 삶, 지역사회에 개방된 교회. 이런 목회 원칙들은 한국교회를 개혁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후임자가 만약 이 목회원칙에 하나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그 분은 다른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 것입니다. 원칙이라는 것은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을 규칙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들을 바꾸면 한 동안 교회는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작부터 후임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제자 뽑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란 예수님의 뒤를 이어 하나님 나라를 세울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언제까지나 세상에 계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쓸 만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후계자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를 뽑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제자 12명을 고르기 위해 밤을 새셨습니다. 

누가복음 6:12-13을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했습니다. 그 때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12 명을 골랐습니다. 사람은 고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제자를 뽑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철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적임자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뽑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아리송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가문이나 사회적 신분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그들을 뽑으셨을까요? 이 기준은 오늘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제자를 뽑는 기준을 잘 새겨듣고 준비합니다.

일반적으로 제자의 직무는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중 같은 사역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35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첫째는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교육입니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선교입니다. 셋째는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치유입니다. 치유는 두 가지입니다. 병을 고치는 것과 귀신을 쫓는 것입니다. 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 귀신들림으로 병든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럴 때 귀신을 쫓음으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워서 이런 일들을 따라 하게 했습니다. 제자들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들 뽑는 기준이 복음을 잘 전하고, 병자를 잘 고칠 사람이었을까요? 물론 전도와 치유를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4절에 있습니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제자의 제 일의 사명은 바로 주님과 함께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뽑은 제 일의 목적이 당신과 함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이 싫었다는 뜻입니다. 전도하려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닐 때 길동무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 혼자 먹기 싫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혼자 지내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을 도울 배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시고 둘이 하나가 되어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간을 지으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까닭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독처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은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도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세 분이 연합하며 지내십니다. 세 분은 사랑으로 언제나 하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언제나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 이름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가르쳐 준 이름입니다. 마리아가 잉태하였을 때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이 때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그 이름을 일러 주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임마누엘’ 이 단어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두렵지 않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단지 공간적으로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 위해 진실로 임마누엘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제일 먼저 무엇을 하셨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고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낮고 천한 땅에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한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르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너무도 위대한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온갖 능멸을 견딘 자리입니다. 극심한 고난을 견딘 자리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버림받는 느낌이 강렬했던 자리입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냐고 울부짖은 곳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우리에게 함께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피차에 요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곁에는 실제로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뽑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예수님의 곁을 지켜드리는 것이 제 일의 임무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깨우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요한은 진정 주님과 함께 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쓰면서 자기 이야기를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3:23에는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고 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먹는 식사 자리였습니다. 이 만찬은 유월절 식사를 재현할 때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크게 두 가지 자세로 먹었습니다. 

하나는 서서 허리를 동이고 급하게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는 이유는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이 있던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긴장 속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집안의 장자를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가정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랐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이 피를 보고 그 집은 그냥 넘어 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란 말이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자세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천천히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식사법입니다. 아까는 쓴 나물을 먹고, 쓴 소스를 찍어 먹었지만, 이때는 달콤한 소스에 빵을 찍어서 먹습니다. 포도주를 곁들입니다. 그런데 이 식사법은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내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자연히 벽이나 옆 사람 무릎에 기대게 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의지했다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해 누울 정도로 예수님을 친밀하게 느꼈습니다. 또 요한은 제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요한은 십대 후반에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요한의 이런 어리광을 받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 식사 장면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권위를 따지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위와 위엄을 지키기보다 친밀하게 가깝게 지내는 것을 더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 주신 장면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구워 조반상을 차리셨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느라 시장한 제자들을 위해 손수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밥상을 차려주시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무릎을 베개로 내놓으시면 염치없지만 그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함께 하려면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려면 우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거스리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진정 우리의 임마누엘의 주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진정 함께 하려면 이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을 향해 사랑과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선 주님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르치고, 전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사역은 그 다음입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제자의 사역은 잠잠히 주님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주님과 함께 하는 법을 생략한 채 사역에만 치중하다가 실패합니다. 바쁘고 분주하게 무언가 일하고 있지만 이 제자의 기본을 놓치면 탈진합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순전히 자기 힘과 능력으로 하게 됩니다. 그 힘과 능력은 이내 한계에 다다르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잠잠히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 업무 보고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주님과 회의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이 기도는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요즘 군대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 큰 아들이 지금 군복무 중입니다. 주말이면 전화가 옵니다. 이쪽에서 부대에 전화를 걸 수는 없습니다. 아들이 전화를 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전화가 오면 반갑지만 막상 할 이야기도 별로 없습니다. 잘 있냐? 아픈 데는 없냐? 하고 몇 마디 물어보면 소재가 궁해집니다.
그래도 전화가 안 오면 궁금하고, 오면 무척 반갑습니다. 어제도 운전 조심해라. 어느 부대에서 탱크가 논두렁에 뒤집혀서 두 명이 죽고, 두 명이 다쳤다고 하더라. 운전할 때 긴장하고, 방어 운전해라. 기도하고 일과를 시작해라. 주일 예배 교회 가서 꼭 드려라. 이런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아들도 교회 소식들을 꿰뚫고 있습니다. 교회 걱정을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냥 한 주일 동안 지낸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토론 같은 것 하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화를 통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이런 것입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이 우연이 아니고, 주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십시오. 그것들이 얼마나 은혜로웠는지, 얼마나 감사했는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어떤 분인지 고백하십시오. 그 고백들은 그대로 주님을 향한 찬양이 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찬양과 고백들을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은혜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면 그 은혜들을 남김없이 베푸십니다. 그 베푸신 은혜들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또 그것들이 은혜였음을 깨닫고 감사 고백하면 하나님은 더 크게 기뻐하십니다.

친밀한 것이 무엇입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알고 있으면 친밀해집니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면 친하게 느껴집니다. 그 비밀 공유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주님과 함께 하려면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나하고만 교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상대는 언제나 공동체입니다. 즉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여러분 만약 교회를 다니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찌 됩니까? 본인이 아무리 장담해도 그런 신앙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메마른 심령이 되고 맙니다. 혼자 예수 믿고 혼자 구원받는 것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언제나 공동체에서 하십시오. 예배는 공동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배에 임재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공동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꼬이면 참으로 힘들어집니다. 함께 지내려면 서로 맞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내 감정보다 크다는 것을 생각하세요. 주님은 내 감정보다 교회를 아끼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핏 값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즐겨 찾으세요. 그것이 주님과 함께 지내는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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