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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 (창 37:18~24) -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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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이루어지기 까지 (창 37:18~24)


약 100년 전 이집트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이라가 나왔고, 그 옆에 꽃병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그만 어떤 사람이 실수로 떨어뜨려 깨졌습니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곁이 쭈글쭈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에 새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3천 년간 침묵을 지킨 생명이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씨앗은 적당한 습도와 온도만 조성되면 3천년이 되었어도 싹이 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꿈 즉 소망이 이와 같습니다. 때와 여건이 되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 꿈입니다. 오늘 분문은 극한 고난을 믿음과 소망으로 해쳐나간 인간승리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꿈꾸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요셉입니다. 성경은 꿈이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잠언 29:18). 방자히 행한다는 것은,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뜻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될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적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에 활력이 있습니다. 생기가 있고 왕성한 삶의 의욕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삶은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꿈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꿈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3:13에 말씀하시기를“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한시도 없으면 안 되는 삶의 3요소를 밝히신 것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소망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소망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8~9에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절대 소망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꿈은 반드시 꿈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코카콜라 사장인 우드러프는 비전을 선포하기를“내 꿈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코카콜라를 한 잔이라도 맛보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비전을 통해 전 세계 시장을 점유해 나갔습니다. 현재 유엔 가입 국가는 184개국인데 코카콜라가 들어간 나라는 197개국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말하기를“돈을 잃은 것은 가벼운 손실이다. 명예를 일은 것은 중대한 손실이다. 소망과 용기를 잃은 것은 보상받을 수 없는 손실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소망 즉 꿈을 잃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이 멋있고 보람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꿈은 목표입니다. 꿈이 있어야 그 꿈대로 성취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전 먼저 믿음과 꿈을 주시고 그 꿈대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백세 때에 아들 이삭을 생산케 하셨습니다. 아들을 주시기 전 하나님은“밤하늘의 별을 보라, 바닷가의 모래를 보라, 네게서 날 후손들이 저와 같으리라!”하시면서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먼저 입으로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백세의 나이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아브람”을“아브라함”즉“열국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아내 사라의 나이 89세, 자식을 생산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꿈대로 그가 시인한 입술의 말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꿈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발전해 왔습니다. 새처럼 날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비행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달리는 말보다 더 빨리 달리려는 꿈의 사람들로 인해 자동차가 만들어 졌습니다. 촛불보다 더 밝은 빛으로 어둠을 밝히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전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꿈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꿈은 그 꿈이 이루기까지 거쳐야할 과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一. 꿈의 사람 요셉은 깊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1. 참된 믿음은 죄악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요셉의 삶에는 흠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흠이 있습니다. 다윗도 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삶은 깨끗했습니다. 범죄의 유혹이 있었지만 그는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므로 깨끗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20~21에“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깨끗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고 지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1:18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처럼 죄악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은 찾지 않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예레미야 5:25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 참된 믿음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13년간 억울함과 고난이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요셉의 신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특성가운데 한 가지는 불변성(不變性)입니다. 그러므로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을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24에 말씀하시기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콜론의 지하실에는“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이 있음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사랑이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라고 쓴 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어떤 전쟁 포로가 장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글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험한 광야를 지나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그 땅을 점령하기 전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땅을 40일간 탐지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 판이하게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했고, 열명은 도저히 얻을 수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생각과 그들이 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가나안 땅을 차지했으나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같은 땅을 같은 기간에 탐지하고 돌아 왔는데 왜 이렇게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자기 자신의 힘과 가나안에 정착하고 있는 적들과 비교했습니다. 자신들은 광야의 긴 여행에 지친 민족인 반면 적들은 성벽을 튼튼히 쌓고 잘 무장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신장은 장대했습니다. 그들에 비해 자신들의 모습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민수기 13:33에 열 정탐꾼은 말하기를“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들과 이 말을 듣고 믿은 사람들은 모두 낙심했습니다. 불안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냈습니다.

그러나 또한 부류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여 적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비교했습니다.“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가 누구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저들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다.”이러한 생각을 했을 때 소망과 용기가 넘쳐났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수기14:7-9)고 했습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여 적과 비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라 했는데,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 믿음으로 적을 바라본 사람들은 적을 향하여“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힘을 의지한 사람들은 자신이 적의 밥으로 보였으나,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 사람은 적들이 자기의 밥으로 보였습니다. 결과는 각자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색안경이 있습니다. 어떠한 색깔이든 안경의 색깔대로 세상은 그렇게 보인다. 풍파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힘만 바라본다면 그는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우셔서 이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믿음대로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 믿음대로 되라”(마태복음 9:29)하셨습니다. 


3. 참된 믿음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기도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만사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되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1-2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6:1,9에 말씀하시기를“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지만 인간의 기도를 넘어서는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절대자 하나님은 이 세상에 관한 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심으로써 하나님 스스로를 제한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일하시되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로 내려오는 통로가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기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신 결정은 인간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로 내려오는 통로가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4:2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6-8 말씀에“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4. 참된 믿음은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특징은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9~10에“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민수기 14:28 말씀에“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말을 다 듣고 계시면서 그 말대로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14:36-38의 말씀에“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며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시고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가나안땅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 그리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만 들어갔습니다.“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며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민수기 14:36)라고 했습니다. 

열 정탐꾼은 말하기를“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수기 13:33)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메뚜기처럼 아무 힘없이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잠언 6:2의 말씀에“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8:20-21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하셨습니다.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짓듯,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로 행복의 집도 짓고, 불행의 집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약하다. 나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려는 유혹만큼 우리를 쉽게 넘어뜨리는 것은 없습니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인 하드필드가 이러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가 밝힌 실험의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정신적 암시가 육체의 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남자에게 보통의 상태에서 힘껏 압력계를 쥐게 했을 때 그들의 평균 압력은 101파운드였는데 그들에게“당신은 참으로 약하다.”고 암시를 준 후 다시 재보았더니 겨우 29파운드로 평상시 힘의 1/3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 재보았더니 무려 142파운드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나는 강하다는 적극적인 정신이 충만해지자, 체력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을 때보다 무려 5배나 증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말은 행동을 지배하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혼돈스럽고 어두울 때, 긍정적이고 복된 말을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빛나게 되고 나아가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언 6:2)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0-21)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10-11에“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하셨습니다. 좋은 날을 보려면 입술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 대로 되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二. 꿈의 사람 요셉은 고난에 인내했습니다.

꿈의 사람 요셉은 그의 꿈대로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7:6~9에 기록하기를“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장차 형들을 다스릴 높은 권세와 영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착한 요셉은 이 꿈 때문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모진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으나 아버지 덕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형들이 열 명이나 있었지만 그 형들은 도리어 자신을 시기하고 미원하며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형제 덕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이웃 덕도 보지 못했습니다. 믿고 충성하며 섬겼던 주인의 음해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흔히 사람은 인복(人福)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에는 인복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느 곳 하나 의지할 언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가지가지의 연단의 시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의 좌우명이 히브리어로“코람데오”즉“하나님 면전에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다 아시니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므로 진실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삶이 곧“코람데오”였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하여 고난이 없기를 기대하거나 기도해서는 아니 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 가운데“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시험이 없게 하옵시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것은 고난과 역경에 넘어져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은인인 맥아더 장군이 자기 자녀를 위한 기도문가운데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 “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라고 했습니다. 

만사형통케 하시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금은 반드시 용광로를 거친 후 순금이 됩니다. 운동선수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승리의 영광 뒤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그 연습이란 곧 연단이요 고난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 말하기를“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했습니다. 이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은 고난을 연단의 기회로 삼습니다. 군인이 전쟁에 이기려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를 깨우치고 훈련시키시는 기회로 알아야 합니다. 

꿈을 지닌 사람은 어려움에 인내해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낙심하여 방황하면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꿈을 바라보며 고난에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꿈대로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12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5:7~8에는“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모든 꿈은 고난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농부의 가슴에 품은 풍년의 꿈은 뜨거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린 뒤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초고속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식탁에는 인스턴트식품이 75%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살고 있기에 목사의 설교도 20분 이내에 끝내야 좋은 목사로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한 시간 안에 예배를 끝내지 못하는 목사는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영적생활의 필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다리기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며 100년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을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20년을 기다렸습니다. 본문의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꿈을 안고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기다리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고 이룰 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한과 때에 대하여 전도서 3:1~8에 말씀하시기를“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꿈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고보서 5:7~8에 말씀하시기를“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망의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의 어떤 힘이나, 자신의 능력에 두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시편 125:1에“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33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三. 꿈을 이루는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꿈을 갖되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이러한 꿈은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의 삶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든 무엇이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앞에서 자식의 도리에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고관 보디발의 집안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종으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주인의 총애를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노예의 신분이 변하여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또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에도 신세한탄만 한 것이 아니라 죄수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감옥내의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감옥에서의 요셉의 삶을 창세기 39:22~23에 기록하시기를“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이러한 요셉을 들어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총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하여 공무에 임했습니다. 창세기 43:16, 25 말씀을 통해 성실한 요셉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그들이 여기서 먹겠다 함을 들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정에 오기를 기다리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후 20년이 넘은 때였습니다. 그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각 나라마다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애굽에는 지혜로운 총리 요셉이 미리미리 양식을 준비했으므로 양식이 풍성했습니다. 애굽에 양식이 많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의 형들도 양식을 구하고자 애굽으로 내려왔습니다. 열명의 형들은 요셉의 배다른 형제로서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원수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막내 동생인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었습니다. 어머니 라헬이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사람들이라면 어머니 없는 어린동생 베냐민을 얼마나 박대했겠습니까? 또한 요셉의 마음속에 그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동생이 지금 자기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형 요셉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려가서“내가 너 형 요셉이다.”라고 말하며 그를 반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정을 억제하고 정오에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공무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을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공과 사가 분명합니까? 

몇 년 전 미국의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기사에 이러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한국인의 1인당 연간 근로 시간은 미국, 일본보다 많지만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62%, 일본보다는 45%나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신문은 국제노동기구의 자료를 인용,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이 2474시간, 미국이 1979시간, 일본이 1859시간이며, 시간당 생산성은 미국이 31.97달러, 캐나다가 25.73달러, 일본이 20,81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11.78달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와 관련해서 이 신문은“한국인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10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평일 근무시간에 자고, 먹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며, 인터넷 쇼핑이나 주식 거래, 카드 게임을 하는 일이 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요셉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꿈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결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그 꿈을 그리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고난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꿈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그 꿈을 성취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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